BSW는 정보 장악력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도록 하는 흥미로운 숙제였다. 완공된 건물은 파사드에 스물다섯 종류의 다른 색깔과 여섯 종류의 다른 높이로 된 곧거나 휜 이만 칠천사백육 개의 세라믹 타일을 붙이고 있는데 건축주는 유지 보수에 대비해 일정량의 타일을 따로 보관해두고자 하니 무슨 타일을 몇 개나 추가로 주문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판단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생산비 절감을 위해서는 타일의 종류를 줄여야 하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또 어떤 변수들을 어떤 조합으로 고려할 것인가? 다비드가 너무 풀기 싫어서 반년을 묵혀둔 이 수수께끼 덕분에 엑셀의 매력과 요긴한 트릭을 몇 가지 알게 됐다. 재단한 표를 넘기고 슬슬 다음 일을 시작해 볼까 한다고 했더니 다비드가 미안하다며 그새 또 계획이 변경됐다고 한다. 운영 회의 도중 시빌레가 엉엉 우는 바람에 마티아스가 나와 계획했던 스터디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시빌레와 프로젝트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보안 문제가 무시무시했다. 다비드는 농담조로 그들은 한국에 계시는 네 조부모한테까지 전화를 걸 거라고 했는데 얘기를 듣고 보니 농담이 아닌 것 같았다. 무슨 무슨 서류들에 서명을 해야 하고 비밀 사용 인가만 육 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지금 BEA 팀은 흰 종이를 붙여 가린 공간에 숨어서 일하고 있는데 4월 이후에는 따로 임대한 로프트로 이주할 계획이며 조만간 암호화 노트북을 공수해 재택근무 때 쓸 수 있도록 할 거라고 한다. 다비드가 귀띔해 준 것과 시빌레의 말을 들어보면 디자인 전반에 있어서 중추적인 브레인이 없어 각자 한 일들이 취합되는 데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았다. 팀원들을 보니 아는 사람은 HFS를 도와줬던 루 살로메뿐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Z는 들어가서 문제 해결할 생각을 하지 말고 주어진 일이나 잘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