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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Mar 29. 2022

2022. 3. 28 월

나의 오랜  톤실리티오스가 금요일  연락도 없이 찾아왔고 삼일  삼일  동안 나는 그에게 내 모든 의식주를 내주었다. 그는 자연이 그에게 하사한 돌발적이고 괴팍한 성질에 따라 옷을 겹겹이 껴입은 채 이불 밖으로는 발끝도 내밀지 않다가도 돌연 나체로 물속에 뛰어들곤 했다. 그의 앙상한 팔과 다리에서는 벌꿀 향이, 입술과 혀끝에서는 코코넛 향이 났다. 그는 히포크라테스가 언젠가 그에게 (실수로) 권했던 생명수만을 고집했기 때문에 우리의 연회상은 럼주를 탄 생명수와 디오니소스에게서 빌려온 환각제만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어둠을 사랑하고 모든 종류의 소음을 저주했지만 — 오 나의 불행한 벗, 허무주의자이자 에피쿠로스의 은밀한 신봉자인 톤실리티오스! — 그것만이 내가 그에게 보장해 줄 수 없었던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내 이웃과 방음처리조차 제대로 안된 싸구려 가벽을 저주한다! 밤마다 톤실리티오스는 완벽한 정적 속에서 이루어지는 고통의 명상을 시도했지만 내 이웃(그의 이름은 아스터다)과 신음 소리가 천박하고 웃음소리는 더욱 천박한 그의 애인은 매일 밤 섹스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톤실리티오스가 그의 명상 속으로 반쯤 미끄러져 들어가려는 찰나 아스터의 사타구니가 그 여자의 엉덩이를 가격하는 둔탁하고 끔찍한 소리는 그가 대단히 힘겹게 완성해가던 심오하고 아름다운 우주적 구상을 갈가리 찢어버렸고 톤실리티오스는 노발대발하며 조그맣고 힘없는 두 주먹으로 가벽을 무너뜨릴 기세로 (물론 그럴 일은 없었지만) 두드려댔다. 그렇게 때때로 불행한 밤을 보냈지만 톤실리티오스는 나에게 어쨌든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동시에 증오했다. 세 번째 아침이 밝았을 때 나는 약간의 개운함을 느끼며 눈을 떴고 내 오랜 벗은 이미 떠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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