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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Apr 10. 2022

2022. 4. 10 일

열차에 오른 거지가 애 같기도 하고 노파 같기도 한 목소리로 자신은 길에서 구걸하며 살고 있는 처지이고 일 유로 오십 센트에 이 신문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신사가 컵에 동전을 넣으며 말했다. “신문은 됐소.” 거지가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는데 한 여자가 말했다. “원하면 크루아상을 하나 드릴 수 있어요.” 그녀는 바구니를 거지 쪽으로 내밀며 말했다. “다른 빵에는 손이 안 닿게 부탁해요.” 그는 더러운 손을 들어 구부러진 엄지와 검지로 위태롭게 크루아상을 집었다. 나는 이 여자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주의 깊게 지켜본 결과 거지의 손가락이 다른 빵에는 닿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바구니에는 그 외에도 서너 개의 베이글이 들어 있었다. 그녀도 나처럼 속으로는 마음을 졸이고 있었을까? 거지는 약간 어눌하게 감사하다고 말하고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다시 열차가 출발할 때쯤 그가 마스크를 내리고 크루아상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신사가 재밌다는 듯 자신의 일행에게 말했다. “오, 저 자가 바로 저 빵을 먹는군!”


저녁을 먹는 내내 주변 테이블의 남은 음식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지가 안쓰러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보잘것없는 사업 수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 이렇게 손도   샐러드와  이상 남은 감자튀김과 치킨 조각들이 나뒹구는데  불쌍한 자는 애먼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내가  거지였다면 이곳으로 왔을 텐데. 물론 구걸을 하러 오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 쫓겨날 테니까.  더러운 꼴로는 아무 일도   없으니 일주일 정도 동냥한 돈을 모아 먼저 목욕탕에 가겠지. 깨끗이 씻고 옷가지를 단정히    이곳으로  것이다. 그리고 사장에게 말하겠다.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임금도 보험도 필요 없습니다. 다만 손님이 떠난  남은 음식이 있다면 그것들만 먹게  주십시오. 그러나 나는 거지가 아니고 그는 내가 아니다. 그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실행에 옮길  있었다면  역시  이상 거지가 아니었으리라. 나는 남은 치킨  조각을 봉지에 담아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를  만난다면 이걸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없는 거지는 다시 지하철에 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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