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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Jul 22. 2022

2022. 7. 21 목

눈이 슬슬 감겨 길게 쓰지 못하겠다. 엄마 아빠가 가는 동시에 L 왔다. 다시 베를린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아무튼 고생깨나   알고 있다. 고생은 몸보다는 마음고생이었으리라. 상황이 조금 불리하게 됐지만 일단 다음 달까지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영양가 없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처음 슈투트가르트에서 학교 발표를 기다리며 느꼈던 것들, 사무소에 원서를 보내 놓고 하루 종일   없어 조깅을 하던 때의 생각들을 떠오르는 대로 말해줬다. 그러다 이야기의 주제는 일기 쓰는 것이 됐고 L 그때 우리 집에 놀러  내가  것을 읽었던 얘기를  꺼냈다. 그는 내가 도대체 일기를 어떻게 쓰는지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고 나는    피셔슈트라세의 좁은 방에서 그가 ‘이라고 불렀던 것을 앞에 두고 그랬던 것처럼 약간 사이비 교주처럼 열정적으로 설파했다. 사실은  대화가 지금 졸음과 싸우며 쓰는 이유다. 내가 그에게 일기 쓰기를 권고한 이유는 첫째로 그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쓰게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고, 둘째로 지금보다 그에게 있어 그걸 시작하기에 적절한 때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섯 시간이 후루룩 지나갔고 열한  반에 우리는 놀레 앞에서 헤어졌다. 문을 닫기 직전의 두스만에 들어가 L에게  몰스킨 노트를 샀다. 어쨌든 윈스턴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종이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녹색과 하늘색 가죽 노트  권을 겨드랑이에 끼고   크리스마스 같은 서점의 유리 문을 밀고 나오는데 앞에 재즈 연주가가 키보드를 치고 있다. 높은 주랑과 선선한 밤공기 속에서  소리는 더욱 재즈처럼 들린다. 공책을 사고 남은 잔돈을 종이컵 속에 떨어뜨리고 플라이    문이 끝날 때까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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