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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Jun 27. 2022

2022. 6. 26 일

드레스덴부터 몇 주간 소홀했다.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적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한다면 덜 인위적으로 기록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러려면 그 기록할 만한 에피소드와 연관되는 어떠한 생각이 있어 그 주변으로 내가 쓰고 싶은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유기체처럼 달라붙어야 한다. 그런 결속된 것을 매일같이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신날까. 대부분 일기를 쓰지 못하는 경우는 쓸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달라붙을 생각이 없어서다.


월요일에 아빠가 왔고 집은 확실히 북적거리고 있다. 다행히 매트리스가 아빠 허리에 불편하지 않아 둘이   침대를 쓰고 나는 사둔 토퍼를 바닥에 깔고 잔다. 금요일까지는 어차피 다들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금요일부터 주말 사흘 동안 이것저것 했다. 지난  혼자 시간을 즐길 틈이 있었을  뉘른베르크의 미술관에서 엄마가 사준 울프의 책을   읽었는데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충동적이고 대단히 기대되는 어떤 일로 이어졌다) 어제 게멜데갤러리에서 내내  생각을 했다. 색들로 가득  방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정말로 온몸이 눈인 태초의 곤충이 되는  같다. 그런 하나의 강력한 기관인 상태로 나는 드레스덴에서 느꼈던 홀바인에 대한 감탄을 다시금 느꼈다. 아빠는 재밌게도 얼굴보다는 물건들이 인상 깊다고 한다. 울프와 그녀의 영국인 친구들은 초상화의 얼굴에 대해 언뜻 상투적이지만 곰곰 생각해  만한 언급을 했기 때문에 나는 그와 비슷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홀바인이 그린 여러 얼굴들에 집중하여 유심히 살펴보았다.  순간 눈이었던  이마와 입과   몸의 여러 기관들이  사람들의 인생을 그림 속에서 꿰뚫어 보았다고 말하기는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우아한 색감과 사실적이면서도 어딘가 시적인 사물들에 매료되었다고는 말할  있다. 기관이라는 단어 속에는 같은 맥락에서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조성진의 손도 있다. 그날은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었다. 피아노를 치는 조성진은  순간 온몸이 손인 곤충과 다름없고 이런 상상은 쇼팽이 흘러나오는  광경을 어떤 진기한 것으로 만든다. 슈만의 고독한 꽃은 얼마나 고독하고 아름다웠던가!  나는  꽃의 내음을 떨리는 하나의 거대한 귀로 맡았던 당시를 회상하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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