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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Aug 16. 2022

2022. 8. 15 월

천둥 번개가 치면서  시간째 비가 쏟아지고 있다.  매트리스 때문에 창문을 전부 열어뒀는데 계속 맞바람이 부딪히며 쌓여있던 종이들을 흐트러트렸고  냄새와 소리가 달라졌다. 공기가 무거워지는 냄새, 작은  분자들이 서로 계속해서 달라붙으며 동글동글 커지는 소리. 짙은 녹색 나무들이 마치 물속의 해초처럼 움직였다. 그러고는  사방에서 땅으로 땅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금세 세상이 시원하지만 눅눅해졌다. 이렇게 먼지들이 얌전하고 촉촉해졌을  재빨리 해야만 하는 일은 보송보송한 천을 붙인 밀대로 바닥을 구석구석 미는 것이다. 이제 바닥의 윤기는 번쩍거리는 번개가 비칠 정도이고 미국식처럼 높이가 다소 우스꽝스럽게 높아진 침대는 탄탄하고 하얗다.


집에서 혼자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은 오랜만이다. 주말에는 K와 영화를 봤고 거의 아홉 달 만에 아네도 만났다. 카페에 좀 일찍 나가 오전을 생산적으로 보내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중간에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머리 뒤 창문을 여니 바람이 간간이 들어와 약간 산만하던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사진을 찍는 안경 낀 남자가 있었고 가로로 긴 반질거리는 재질의 노트에 띄엄띄엄 만년필로 뭔가를 쓰는 트랜스 여자도 있었다. 그녀는 카페 음악에 맞춰 머리를 까딱거렸다. 아네는 자전거를 타고 왔고 지나간 길 옆에 당나귀가 있었다. 우리는 강가 쪽으로 걸어내려가 비빔밥을 먹었다. 사실은 그냥 유자청을 넣은 막걸리인 ‘칵테일’을 시켰는데 아네가 좋아했다. 그녀는 미니밴의 가구들을 새로 짜 넣고 세계를 돌아다닐 구상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비슷한 맥락에서 내 사진집에 대해 얘기했다. 비슷한 맥락이라고 쓴 이유는 요즘 내게 그것은 가장 큰 여행이기 때문이다. 아네는 나한테 유 알 뷰티풀!이라고 했다.


덧붙여 회사 일이 아주 만족스럽게 이어지고 있음을 적어둬야 한다. 정말로 뭔가 이뤄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종종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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