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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Aug 18. 2022

2022. 8. 17 수

어떤 일을 실제로 하는 것보다 그것에 대해 읽고 쓰는 것을   낙으로 느끼는 추상적이고 나태한 성격은 나를 그저 그런 수많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고역으로부터 루이지 기리의 책으로 도피하게 했다. 짧은 에세이(대부분  작업들에 대한 소개 글에 해당하는)들을 뒤적거리며 점점  깨닫게  것은 나는 사진의 사실성에 거의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사진을 찍는 기준은 단순한 심미주의다. 편집하는 (이미 사진이라는 매체에 본질적으로 터부라고 느껴지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오로지  결과물의 그림적인 특성, 이차원적인 구성이나 분위기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프레임을 자르거나 미묘하게 색조를 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결과물은 회화적 , 대체로 상상적인 것이다. 나는  사실을 항상 자각하고 있다. 이것이 어쨌든 지금까지 내가 사진 찍기에 취해온 태도이다. 사진을  찍는가 하는 다소 심오한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행위를 업으로 삼았던 이의 사유를 따라가던  보르헤스를 포함해 낯익은 이름들이 눈에 띈다. 세계를 그리고 싶어 거대한 도화지에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전부 그려 넣다 보니  그림이 자기의 얼굴과 같아진 작가의 우화나 인간이 세계에서 발견하는 것은 오로지 그의 내면에 이미 존재해온 것뿐이지만 그가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세계가 필요하다는 (아마 노발리스의 것으로 생각되는) 경구와 같은 것들은 사진기를 들었던 모든 사람이라면 어렴풋이 느꼈을 어떤 의지를 - 표현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라는 이상한 존재와 직결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덧붙여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이 사물들, 그리고 사물들 간의 관계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는 것은 재밌는 사실이다. 그리고 거의 항상 그들은 그것을 새롭게 재발견하고 재구성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사진이 은유와 기호들로 가득 찬 일종의 상형문자라는 믿음은 다소 미신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야심찬 작가가 그런 것을 시도하는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엄밀히 따지면 사진을 찍는 모든 이들이 자의적이기 때문에 전부 그런 시도를 알게 모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후에 사진가는 그것을 잊어버리거나 침묵함으로써 시가 되거나 의식적으로 종용함으로써 사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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