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일기를 시작한 지 한 달 째다. 토마스 만은 마의 산 어딘가에서 이 책은 글쓴이가 이 이야기를 쓴 시점과 이야기 속의 주인공의 시점, 그리고 독자가 이 이야기를 읽는 시점이 교차한다는 측면에서 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썼다. 이건 달드리가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영화화하면서 교묘하게 적용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두 일기는 서로에게 어떤 보이지 않는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토마스 만의 책이나 달드리의 영화에서처럼 무엇인가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혼합되는 것일까? 간혹 그 두 날은 한 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서로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19세기 초 초현실주의자들은 작은 종이를 이용해 공동으로 하나의 문장이나 데생을 만드는 놀이를 고안해내 우아한 시체라고 이름 붙였다.
밖에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살짝 열어 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자주색 모슬린 커튼을 부드럽게 움직이게 하고 그 그림자가 내 앞과 옆에서 따라 움직인다. 밖에서는 빗물에 젖은 아스팔트 위를 지나가는 자동차의 바퀴 소리가 들린다. 지난 여름 어느 늦은 저녁 나는 광화문 도로 옆에 앉아 J와 바로 그 소리에 대해 얘기했었다. 어제부터 목감기 기운이 있는 듯한 타냐가 가끔씩 아주 작게 기침을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전체적으로 묶어놓기 위해 나는 재빨리 쓴다. 분위기는 분명 사물들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