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중 칼 마르크스 알레 한가운데서 여우를 만났다. 가늘고 몸통과 꼬리가 긴 갈회색의 그는 경계석을 따라 잠시 방황하는 듯하더니 귀를 세우고 차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종종걸음으로 대로를 건넜다. 폭스파크 쪽으로 가는 것일까? 넓은 길을 홀로 걷고 있던 중 한 쌍의 남녀가 귀신처럼 갑자기 공기 중에서 튀어나와 이십 미터쯤 앞에서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고 그 슬렁대는 꼴이 보기 싫어 그보다 더 더딘 속도로 한 블록 가량 땅만 보며 걸었다. 모자이크와 판석들을 살펴보니 얼마 전 도로 조경도를 그리며 상상했던 것처럼 쌈박하지가 않다. 아직까지도 내게는 현실감이 이토록 부재하지 않은가. 다시 고개를 드니 거리는 비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