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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Feb 27. 2023

2023. 2. 25 토

육체적 욕구를 해소한 뒤 카페에서 높은 건물들과 인공 호수 쪽을 바라보고 앉아있으면서 평온함과 행복을 느꼈다. 나는 지하철 시간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에 유의하고 있었지만 또한 유의하고 있지 않았다. 얼마 만의 혼자인가. 하늘이 광택 없는 흑진주 색으로 변하면서 높은 천장에 걸려있는 램프들이 서서히 밝아졌고 가장 일상적인 그 순간의 기쁨과 만족감에 충만해진 나는 책에 집중한다기보다 계속 창밖의 수은 빛 건물들을, 은은한 등의 해파리 같은 부피를, 유리잔 속 초콜릿의 달콤한 냄새를, 폭이 좁고 끝이 둥근 대리석 테이블의 패턴을 번갈아 힐끗거리며 그 아무것도 아니면서 전부인 모든 것들의 인상을 더욱 뚜렷하게 남기고자 했다. 그것들을 한 장소로 모아주고 있는 것은 매력적으로 형이상학적인 독서라는 개념이었고 나는 ‘그것이 내게 말할 수도 있었던 모든 것을 고양이를 쓰다듬듯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렇게 잠시나마 도시의 일부가 되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내면적인 모순으로 인해 나는 그런 삶을 동경하면서도 그 가운데서 (특히 서울의) 끝없는 인파 속으로 끌려들어 가길 극도로 꺼린다. 그러나 얇은 아크릴판 사이에 건설된 개미들의 왕국을 탐구하는 거대한 눈처럼 멀리서 그 때때로 자극적이고 속물적인 유기체를 관조하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 대단한 단조로움 속에서 평범함의 특이성을 발견하길 기다리면서.

진저리 나는 개미들의 그물에 포획되지 않는 도시의 유령이 되는 유용한 방법  하나는 밤에 박물관으로 가는 것이다. 나와 처지가 비슷한 고독한 유령들이 매주  ,  9시까지 그것도 무상으로 도피할  있는 국립박물관을 세운  도시의 아량에 다시 한번 놀란다. 신이 잠든 신전처럼 웅장한 정적으로  있는 그곳을 자유와 특권의 기분으로 활보하며 나는 정말로 흙과 오래된 종이와 먼지 같은 역사의 냄새를 맡음으로써 자양분을 얻는 유령이   느낀다. 그리고  유령은 마침내 고대하던 반가사유상 앞에 서서 이슬처럼 이마의 궁륭을 따라 방울져 내리는 침묵을 본다.  대도시의 침묵 전부가 여기에 모여 있다. 오래전 피카르트를 읽고 나는 그런 침묵을 다만 불완전하게 상상해  따름이었다... 반가사유상을 처음 보기 전까지는. 이제  앞으로 돌아올 때마다 나는  섬세하고 정제된 곡선들을 따라 정말로  세기 동안 농축된 침묵의 방울들이 흘러내리는 것을 본다.  선들은 길들이며  길들이 얼마나 이상적으로 설계되었는지는 매번 심오한 경외심을 일으킨다. 그리고  길들이 모아지는 세계-인자한 인간의 형상으로 주조된 작은 행성- 언제나 무심하고도 고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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