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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Jun 13. 2023

2023. 6. 11 일

토요일 밤에 베를린에서 레이오버가 있다고 미겔에게 연락이 왔다. 오고 싶으면 집으로 오라니까 새벽에 공항 가는 기차가 있는지 바보 같은 질문을 한다.

요 근래 집이 좋다는 소리를 몇 번 들었다. 집에 처음 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볼 사람들은 아니다.

나도 이 집이 좋다. 자주는 아니지만 누구든 오면 전망과 콘크리트 마감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 콘크리트 마감이라는 말은 사실 드라이월을 제외하고 마감이 없다는 말이다. 이 집의 팔 할은 전망과 통풍이다. 왕복 육 차선 사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수많은 유선들과 갈지자들이 교차하는 모습을, 혹은 일요일 아침의 그 부재를 넋 놓고 관망하게 된다. 그러면 곧 보들레르가 항구에서 느꼈던 귀족적인 여유로움과 비슷한 것을 느낀다.


금요일 저녁 시작한 청소를 끝내고 빨래를 돌린 뒤 카페로 가 일주일 치 이런저런 일과 생각들을 복기한다. 독일어도 좀 쓸 겸. 그러나 써보면 대부분 하찮다. 집에 오는 길에 장을 보고 열시 쯤 저녁을 먹은 뒤 샤워를 한다. 소파에 누워 책을 펴놓고 졸고 있는데 랜딩했는데 기차가 없다는 연락이 온다. 공항 호텔이 낫지 않냐고 하니 우버를 탄 모양이다.

거의 한시가 다 되어 문 앞에 승무원 유니폼을 입은 미겔이 캐리어 옆에 서 있다. “2년이나 지났는데 집은 하나도 안 변했네”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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