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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범 Apr 23. 2024

2024. 4. 20 토

마침 티어가르텐에서 집을 본 아네에게 근처 리터라투어하우스에서 보자고 했다. 가는 길에 토마스 캠피언의 시집을 사 지하철에서 반 정도 읽었다. 카페는 적당히 소란스러우면서도 약간 세련되고(아네는 사람들이 너무 포쉬하다고 한다) 정원과 원터가든 덕분에 교외에 나와 있는 듯한 한가로운 분위기다. 사과슈트루델도 그 분위기와 비슷하게 어딘가 소박한 것 같으면서 정교한 맛이다. 날씨가 좋아 동네를 좀 걷다가 슈바쩨스 카페에서 슈프리츠를 마셨다. 아네는 룸메이트가 슈파겔을 요리 중이라며 저녁을 먹고 가라고 했지만 별로 더 말할 기력이 없었다. 카데베까지 걸어가면서 S가 떠나기 전날 밤 따뜻한 사과슈트루델을 찾아 축축하고 스산한 그 거리를 전전했던 기억이 났다.   


나를 매료시킨 캠피언의 첫 문장은 ‘슬픈 음표들아, 서둘러 그녀의 날아가는 발아래 떨어져라’였지만, 그 대부분이 노래란 사실은 나중에 알프레드 델러가 그중 한 곡을 실제로 부른 것을 듣고서야 깨달았다. 르네상스의 음악가들이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영국 특유의 멜랑콜리가 등장했다고 하지만 이 곡들의 서정성은 가사보다도 독창의 스토익함에서 온다. 델러는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우리를 위해 부르고 있지 않고 부르면서도 돌아오지 않는 응답을 듣고 있는 듯하다. 그런 초연함과 단순한 언어의 힘이 만날 때 우리는 시적 울림을 느낀다.

따라가라, 따라가라...’는 말로 시를 보내는 것은 슬픔이 아닌 슬픈 표정을 짓는 고고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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