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한 기다림의 시간. 아침에 타냐의 남편 한스가 왔다. 그는 앞으로 그의 집에서 살게 될 중국인 유학생을 위해 매트리스를 챙겨갔다. 일부러 늦게 부엌에 들어갔을 때 둘은 이미 식사 중이었다. 한스는 내가 그의 양배추 고기쌈을 조금 덜어가도록 강요하다시피 했다. 나는 졸지에 통성명도 하지 않은 상태로 그의 지시에 따라 고기쌈에서 작은 부분을 도려냈다. 피터 페티그루처럼 땅딸막한 그에게서는 유럽인들 특유의 쉰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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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 Möbelstück bittet um eine Distanz, eine einvernehmliche Anerkennung zwischen ihm und den anderen, um beim Gebrauch endlich vervollständigt zu werden. Wenn der Maßstab dieses Ökosystems der Möbel oder der Funktionen sich erweitert, wird es zu einem Gebäude, denke ich. Ein Architekt bräuchte ein genaues Verständnis über sogenanntes Pathos der Distanz, um eine Umgebung ganzheitlich und harmonisch zu fertigen. Es geht um das Spüren von der Gegenwart der Dinge.
일종의 후유증일까? 가끔 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삶을 소설처럼 끄적이고 있는 듯한 우스꽝스러운 기분이 든다.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글쓰기에 대해 했던 말을 신조로 삼아야 한다. 수상록의 어딘가에서 몽테뉴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이 글쓰기의 정체성에 의구심이 든다. 어쨌든 이것에 유일하게 빛을 던질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