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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Jul 12. 2023

음악과 정신 탐구 5: 명상, 힐링, 치유 음악

2020-12-31 11:21:31

현 시대에는 인류에게 가장 기초적인 문제, 의식주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어느 정도란 표현은, 아직 그렇지 못 한 곳이 있기에 모두라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건, 의식주의 걱정은 없는 다수의 인류에 국한해서 이 주제를 다뤄 보고자 한다. 


  

인류는 극심한 배고픔과 기아를 극복하고, 이제는 미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수십 년 전, 혼분식으로 장려하던 라면은, 이제 기호로 즐기거나, 간편한 조리법의 장점으로, 쉽사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간편식품으로 변모했다. 


의복은, 기후와 활동의 능률성이라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신분과 자신의 개성, 멋을 나타 내는 미적 수단이 되었다. 


주거의 모습은 어떠한가. 


세찬 기후로부터 보호를 받고, 삶을 영위하는 중요한 터전이자, 가정의 보금자리를 형성하는 건축물이었으나, 전망이 좋은 집, 학군이 좋은 집, 교통의 용이성을 가리게 되었다. 


이만큼 인류가 발전한 것이다. 


이렇게 인류가 발전하면서 눈높이는 자연스레 문화, 철학, 종교, 명상 등, 보다 고차원 적인 컨텐츠로 향하였다. 


이 중에서 명상, 종교 음악을 다뤄 본다. 




이 음악군은 뚜렷한 장르를 형성하기엔 모호하게 구성돼 있다. 


해당 음악을 뚜렷히 규정하는 장르, 아티스트가 없다. 


하나의 트렌드로 형성은 했으나, 자리를 잡지는 못 했다. 


이제 다뤄 보면서 하나하나씩 파헤쳐 지겠지만, 당연한 결과이다. 


뼈대가 없는 음악이기 때문에 그렇다. 




유튜브에 명상 음악이라고 가장 단순하게 검색해 보자. 


짧게는 수십 분대부터, 길게는 3, 4시간 짜리 영상들이 즐비하다. 


작곡 아티스트도 없고, 돌고 도는 형이상학적인 이미지의 섬네일들이다. 


그럼 3, 4시간 짜리 음악을 들어 보면 어떤가. 


그러면 그렇지, 몇십 분 곡의 계속된 반복이다. 


이런 영상 만들기는 우습지도 않다. 


생각해 보라. 작곡가도 누군지 모호하고, 그럴싸한 자연 풍광이나 만트라 이미지를 나열해 놓으면 된다. 


간단한 영상 편집만으로 곡조를 반복하기도 쉽다. 


저작권 위배로 제재를 받을 일도 없고, 간단하다. 


마구잡이 식으로, 비 전문가 누구나 올릴 수 있다. 


그 업로더들은 그들 스스로가 무슨 음악인 줄도, 자신들이 무슨 행위를 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음악성, 재미도 없다. 




물론, 이 것은 주관적이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리라고 본다. 


음악의 기초적인 형식에서 아티스트는 막연한 분위기를 자아 내지만, 무얼 말하고자 하는 지, 심지, 핵심이 없다. 


편한 친구와의 실컷 수다를 떨고 난 뒤의 느낌이 어떤가? 


뭔가 신나게 대화를 하기는 했지만, 가슴에 남는 묵직한, 진실한 말 한 마디 기억나지 않는다. 이와 같다.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음악성과는 무관하다. 


현대 사회인들이 치열하고 각박한 생활 속에서, 부드럽고 푹신한 쇼파에 누우면 당연히 편안한 느낌이 들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 걸 예술이나 미적가치가 있다고 고평가 하는가? 


지칠 때 푹신한 침대와 쇼파가 안락한 건 당연한 것이다. 


그 걸 명상이 된다고, 뭔가 고차원 적인 체험이라고, 힐링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명상이란, 이완을 기초로 한다. 


명상이란, 뭔가 자신이 산만하고 어수선한 정신 상태를 정리해서 명료해 지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자신이 뭘 해야 할 지를 가닥이 잡히고, 내 앞으로의 삶이 더욱 체계적으로 정돈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완, 즉 편안해야 한다. 


그런 방편으로 명상 음악을 틀어 놓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뭔가 명상을 색다른 것을 느끼고, 특별한 체험이라고 여겨서, 그 걸 느끼기 위해 듣는 거라면, 당신은 상당히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무의미한 곡조 속에 빠져 들면서 당신은 아무 것도 건지지 못 한 채, 멀쩡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명심해라. 당신이 느끼고자 하는 체험, 특별한 무언가, 그 건 거기에 없다. 


당신이 현실 속에서 재미와 충만함을 느끼지 못 하니까, 다른 돌파구로 그런 컨텐츠로 시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명상은 나를 찾는 것이다. 


산만함 속에 덮혀 진 내 자신의 명료함. 


뭔가를 기대하고 느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정말 명상을 하고자 한다면, 유튜브에서 이완, 명상 음악을 틀어 놓고 어느 정도 편안해 졌다면, 이제는 그 음악을 끄던가, 줄이던가 해라. 


처음에는 들으면서 이완이 되다가, 이완에 접어 들면 끄라는 것이다. 


이완 다음에는 내 자신을 돌아 보는 것이다. 


내가 얼마 간에 살면서 막히고, 정돈되지 않는 상황이나 대화, 그 것을 편안한 상태에서 다시 돌이켜 보는 것이다. 


답을 정해 놓는 것이 아니고, 순수하고 객관적으로. 


내 자신과 교감하는 데에 어떻게 음악을 틀어 놓고, 음악과 교감을 한다는 말인가. 


이런 용도로 올바르게 쓴다면, 그 것은 유용한 것이다. 




명상의 개념부터 잡아야 명상 음악을 바르게 쓸 수가 있는 것이다. 


비단, 명상 음악이란 카테고리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당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그냥 들어라. 장르를 구분하지 말고, 그냥 그 순간에 듣고 싶은 것을 실컷 듣고, 정적인 상태에서 내 명상을 할 수도 있고, 발라드나, 클래식을 틀어 놓고 할 수도 있다. 


요란한 록이든, 유행하는 팝이든, 당신이 즐겨야 이완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 아티스트가 누군 지 알지도 못 하는 돌고 도는 정체불명 소리 파일을 명상 음악이랍시고 듣고 있는가? 


그리고, 명상은 음악 없이도 가능하고,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적막 또한 자연이 연주하는 음악이다. 


그러한 것은 명상의 촉매제인 것인 지, 그 자체와 교감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대상과 교감하는 것은 유희, 예술적 행위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명상은 매개체와의 교감이 아닌, 내 정신의 정리정돈이라는 작업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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