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7 17:33:43
2 년 전이었을 것이다.
8 월 하순 즈음, 한 여름인 건 확실하다.
환갑 전후의 남성이었는데, 한 쪽 다리를 살짝 절었다.
그는 내가 낸 지역신문의 광고를 보고 찾아 온, 유일한 내담자였다.
그 전에도 어렵사리 통화를 해서 오겠다고 해 놓고 오지 않아 그냥 단념하고 지내던 차, 드디어 오겠다는 것이었다.
내용인 즉슨, 자신이 공장을 운영하는데, 자신은 전 부인한테 무척 잘 해 줬는데 나를 욕하면서 떠나고,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운영하던 공장도 자금 사정이 좋지 않는 등, 여러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서 나에게 어려움을 토로한 것이다.
내가 되물었다.
"잘 해준 건 잘 해준 건데, 거기에 뭔가 상대방에게 되돌아 오리라는 약속 걸었습니까?"
"그런 건 없죠, 내가 그냥 잘 해준 거죠."
"그냥 조건 없이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잘 해줬다면, 나는 바란 게 없으므로, 전 부인의 행동에 대해 화가 날 이유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뭔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은 재물적으로나, 심적으로 많이 주면서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조건없이 상대가 자발적으로 주니까 고맙게 잘 받기만 했을 뿐, 그 것에 대해 조건을 걸었다면, 나는 그 것을 받지 않거나, 상대가 내 거는 조건에 수긍하는 약속을 성립하고 받았을 것이다.
순수하게 상대가 좋아서 그냥 줬다?
그런데, 오늘 왜 나한테 부인의 행동에 대해 묻는단 말인가.
그는 분명히 바라는 게 있다.
그 게 아니면, 나는 일방적으로 잘 해 줘도, 상대방이 나를 떠난다 해도 그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
잘 해 주면서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그 게 오지 않으니, 화를 내고 탓을 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바란다면,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을 명료하게 밝히고, 자신 또한 상대에게 그마만치 노력을 하겠다는 조건을 분명시했어야 한다.
거기서 타협이 안 될 시에는 내 요구치 대로 관계를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아 하니, 전 부인에게 그런 말도 없이, 자신은 부인에게 요구를 하는 게 있으면서도, 순수하게 상대를 위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글쎄, 당시 전 부인에 대한 감정이 너무 커서 그런 불순물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부인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 밖에.
그 남자가 잘 해 주니까 여태 다른 남자들 제쳐 두고 같이 사는 건데, 이제 와서 청구서로 옆구리를 찌른다.
조건없이 잘 해주니까 자신도 그 남자랑 살고 싶은 심정으로 타협을 본 것인데, 이제 와서 다른 소리를 한다.
그 이면에는 결혼생활 상, 금전적으로나 재물적으로 항상 일정하게 보탬이 되다가, 어느 순간 남편의 수입이 신통치 않게 되자, 부인도 불만이 쌓인 모양이다.
그러니 화를 낼 수 밖에.
부인 시각에서는 남편이 금전적으로 보태 주는 것에 대해 상당한 퍼센테이지를 놓고 본 듯 하다.
만일, 부인 또한 남편에 대해 금전보다 다른 조건, 외모나 정신적 교감 등을 비중있게 여기고 있었다면, 남편 수입이 준다고 해서 이에 불평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도리어, 남편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을 하고, 어떻게 뒷받침을 할 수 있을까를 같이 고민하지.
애초부터 둘은 계약 자체를 어그러 지게 했다.
남편은 부인에게 조건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크고, 부인 또한 착각에 빠져 있는 남편을 표면만 보고서 덥썩 믿고 결혼이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만일, 결혼 전 남편이 부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명확하게 제시를 했다면, 부인은 조건이 맞는 다른 남자를 떠났을 테고, 남편 또한 조건이 맞는 다른 여자를 만나서 훨씬 좋은 결혼 생활을 해서, 오늘 날 나를 찾아 올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혹은, 남편이 제시하는 조건을 여자가 수긍을 해서 결혼을 했다면, 그에 대해 여자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그 노력이 시들했을 때는, 도리어 역으로 남편이 부인을 욕하고 떠났을 것이다.
그 때는, 남편이 아니라, 그 부인이 같은 하소연을 하면서 나를 찾아 왔을 수도.
서로의 과오가 크다.
그의 얘기는 계속 이어 진다.
"그 것 말고도, 전 부인이 너무 겉다르고 속다른 행동을 했어요."
"여태까지 많은 인연들을 만나 왔을 텐데, 다른 자들의 겉다르고 속다른 행동을 간파해서 안 당했네요."
"그럼요, 말 들어 보니까, 앞과 뒤가 다른 게 보일 때는 한 소리 지르고 나왔죠."
"그런데, 왜 부인의 그 앞뒤가 다른 말을 간파를 못 합니까?"
순간 남자의 말문이 막힌다.
"보세요, 제가 너무 혼낸다고만 생각치 마시고, 내 사리분별이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겁니다. 웬만한 사람들의 허와 실은 구분하면서, 정작 나는 부인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그 여자보다 사리분별이 한 수 아래라는 소리 아니겠습니까."
작정하고 쓴 소리를 많이 했는데, 조금 어려운 내용일 법도 하다.
그만큼 틀에 묶인 고정관념이 강했고, 그 걸 깨기 위해서는 '적당히' 갖고는 안 될 것 같았다.
단 시간 안에 깊이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거라,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그의 생각의 틀을 깰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소득을 얻었으리라 본다.
상담 후에 진정으로 본인의 잘못을 찾고 참회하게 된다면, 쭉 인연이 닿았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 한 걸 보니 내 실력이 모자란 것 같다.
지금도 간혹 생각이 난다.
어찌 지내는 지, 무엇보다 내 상담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달라 지고, 그 달라 진 생각대로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는 지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넓게 보면, 어디 저런 자들이 한둘이란 말인가.
우리는 나도 모르고, 상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자기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내가 내 자신을 속이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상대를 속인다.
실타래가 점점 꼬이 듯이, 악연은 그렇게 되어 간다.
과거의 잘못은 누구나 한다.
나 역시도 후회와 실수의 연속의 삶을 살았다고 공언한다.
문제는, 그 잘못으로 상처를 입고 난 후, 그 아픔에 젖어서 인생을 제 자리서 멈추느냐, 그 것을 단도리하고서 다시 내 갈 길을 가느냐, 여기서 성공과 실패가 갈린다.
실패라는 결과물 안에 내 잘못이 무엇이라는 걸 알아야 그 것이 반복이 안 될 테고, 그 걸 알고 나면 자신있게 다시 내 인생을 살아 갈 수 있으며, 상대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내 잘못으로 인하여 상대에게 아픔을 주었으니, 어찌 미안하고 죄송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 걸 모르니, 서로의 탓만 찌르면서 악연으로 살아 가고, 그 후에도 평생 다른 인연들한테 자기 과오는 쏙 빼고, 순전히 그 사람 탓만 뒤집어 씌워서 악담을 해 댄다.
자신의 과오에 직시를 하는 것이 명상이고, 그 오물을 씻어 내는 것이 수행이다.
무언가 대단한 존재가 되는 판타지가 아니라, 내 삶의 정도를 걷는 것, 그 것이 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