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클래식 기타 조교 시절

2021-01-06 20:17:50

by 속선

소시 적에 클래식 기타를 배운 적이 있다.

어릴 때라 기억이 가물한데, 일렉트릭 기타를 먼저 배우다가 클래식 기타를 배웠던 것 같다.

그 때는 경기도 부천에 살 때였다.

중동에 작고 오래 된 기타 교습소가 하나 있어서, 거기에 등록하고 배우고 다녔다.

처음에는 여 선생한테서 가장 기초적인 걸 배웠는데, 몇 달 배우다가 자기는 이제 그만 두고, 원장 님이 직접 나오신다는 것이었다.

"칼 같다."는 말에 조금은 겁먹었지만, 어린 나이에 건방지게 "설마 돈내고 배우러 다니는 곳에서 무섭게 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직접 배워 본 원장 님은 다정하면서도 성심성의 껏 잘 가르쳐 주셨다.

유명한 기타리스트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국내 클래식 기타 계에서는 고참급으로, 독주회도 열고, 나도 직접 가서 연주회를 감상하기도 했다.


그 선생님 아래서 제법 배워서, 당시에 수준 있는 빌라 로보스 곡을 덤빌 정도였고, 로망스는 메이저 코드로 넘어 가는 2 절도 칠 줄 알았다.

쳐 본 이들은 알겠지만, 메이저 코드는 개방현이 아니라, 잘 안 쓰는 왼손 운지가 복잡하고, 손을 넓게 벌리는 부분이 있어서, 1 절과 다르게 제법 난이도가 있다.

클래식 기타의 대표적인 선망의 곡이었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도 흉내는 낼 수 있었고, 어쩔 때는 아마추어 치고는 그런 대로 완주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 결과, 그 지역의 작은 공개 연주회의 무대에 선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듀엣 곡으로 제목이 '사랑'이었다.

옛날 가요인 듯 한데, 반주와 멜로디 따로 연주하는 듀엣곡으로, 우리 둘이 가장 호평받은 것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작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 무대 위에서 대중들한테 연주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자 유일하다.


그 후에, 그 원장 님이 건강 악화로 말미암아 자주 못 오니까, 대신 원생을 지도하고, 학원을 관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학원은 서울 종로구 한 복판 중심에 있었다.

어린 나이에, 그 촌뜨기가 고층 빌딩과 대로변 교차로에서 학원이 어딘 지 허둥대던 기억은 지금도 우습다.

종로 도심 한 복판 사거리에 위치한, 자리는 굉장히 좋은 자리였다.

건물이 워낙 낡은데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5 층을 계단으로 올라 가야 하고, 화장실이 낡은 것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 자리가 좋아서 월세가 비쌀 법 한데도, 건물 관리인이 건네 주는 세금계산서에 쓰인 월세 금액이 제법 저렴했었다.

실질적으로 학원 운영의 절반을 내가 관리하다가, 급기야 원장 님은 건강이 너무 나빠 져서, 그 학원을 다른 기타리스트에게 양도하셨다.

그러면서, 내 기타 교습에 대한 것도 부탁을 한 것 같은데, 하루 배우고 그냥 안 나가 버렸다.


첫 째는, 새로운 원장한테 내가 배우는 것은 배우는 건데, 교습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서 내 입장에서는 난감했고, 내가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전업할 의사 또한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록 부천에서 종로까지 학원이 멀어도, 어린 나이에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에 보람과 재미를 느꼈고, 새롭게 접한 거대한 도회가 너무 좋았다.

지금에서야 쓰면서 기억 나는데, 누구한테 더 심화적으로 배우지 못 해서 실력은 계속 정체했고, 겨우 초급자들이나 잘 가르칠 정도였었다.

얼마 후에 그 선생님이 입원한 서울의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는데, 딱 봐도 대수술을 하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또 얼마 안 가 세상을 뜨셨다.


작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한 대목이라, 언젠가 글로 정리하고 남기리라 작정했던 걸 이제야 쓰게 된다.

평상시 온화한 성품이셨고, 넉넉하지 않아 검소하게 지내셨다.

나는, 모두가 떠난 초저녁 교습소에 단 둘이 남아 있던 여느 나날의 그 연주 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 한다.


골방의 작은 교습소.

나는 원생들이 연습하던 곳에 앉아 교본을 보며, 왼손 가락이 거북이 등딱지처럼 딱딱해 지도록 연습을 하고 있었고, 원장 님은 바로 건너 작은 공간에서 홀로 연주를 하고 계셨다.

소르의 마적,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뭐 그 밖에도 내가 제목을 알 수 없는 명곡들을 홀로 연주하셨는데, 연주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연주를 하면서의 그 숨결은 지금도 명료히 기억할 수 있다.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면서 지내는 홀로 만의 시공간, 누군가를 위해 서는 무대도 아니고, 타인의 강요에 의한 것도 아닌, 순수한 음악과의 교감.

그 당시에는 어려서 그런 지, 그 연주 소리와 숨결에 큰 감흥이 없었는데, 나 역시도 시간의 돛단배를 타고 흘러가다 보니, 참으로 순수한 분이셨구나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물론, 요즈음의 댄스나 요란한 음악을 듣고 현란한 춤을 추는 것에 대해 순수하지 못 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즐기는 것은 무엇이든지 예술이 아닐까.

지금은, 내가 소시 적에 배우던 부천, 종로 교습소, 모두 재건축으로 인해 사라 졌지만, 내게 기타 연주와 명곡보다 더 소중한 예술의 숨결과 인생의 선배로서의 배움과 경험이란 보배를 유산으로 남겨 주시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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