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나중해 8, 12월 10일

2021-01-22 22:53:42

by 속선

엊그저께 몸이 많이 아팠다.

그 아픔은, 내가 이마트에 장을 보고 나서 앓은 그 몸살이었다.

내가 그 때 한 사흘을 아무 것도 못 하고 눈 뜬 채로 사경을 헤매다 시피 했다.

그 때의 괴로움은 정말 평생 잊지 못 할 아픔인데, 통증도 통증이었지만, 거의 누워 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죽 괴로웠으면 내가 살려달라고 절규했을까.


며칠 전에 겪은 고통은, 그 것에 버금가는 아픔이었다.

잠을 자도 또 누워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러면서도 또 잠이 오고, 머리는 계속 두통과 멍한 상태였다.

온 몸과 사지가 쑤시고, 저리는 통증에, 아무튼 맥을 추지 못 했다.

그래도 이틀로 끝났고, 다행히 살려 달라는 소리까지 나오지 않은 걸 보니, 그래도 현저히 덜 아픈 축에 속한 것 아니겠는가.

아마 월요일이었을 것이다.

이마트 갔다 온 후의 고통은, 그 때는 정말 악몽이었다.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일단은 그 간에 축적된 피로와 과식, 음주로 몸이 축난 것이 한 방에 터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야식으로 먹던 너구리 작은 컵도, 늘상 먹던 것이고, 매운 축에도 못 끼는 작은 라면인데, 그 라면을 먹고 난 직후부터 새벽에 깰 정도로 배탈을 앓았다.

그 때부터 시작이었지.


나는 아직도 종잡지 못 한다.

그 무렵에 무리를 좀 하기는 했는데, 그 게 터질 줄이야.

나도 몸살을 자주 겪어 봐서 아는데, 징조를 감지하고 몸조리를 들어 가면 될 줄 알았다.

조심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으나, 큰 몸살을 당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 했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누워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고, 누워서 거의 아무 것도 못 하고 아파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흘려 보내야 한다는 것.

아픈 것은 내가 달게 받겠지만, 그 안에서 뭐라도 건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래도 많이 회복되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다.

당분간 무리였던 몸 수련의 난이도를 자중하련다.

수련할 때는 몰랐는데, 몸에는 무리가 축적되나 보다.

나는 내 몸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럴 때는 참 종잡질 못 한다.


무엇부터 꼬였던 것일까.

다시는 그렇게 아프고 싶지는 않다.

단순히 통증도 통증이지만, 꿈인 듯 하면서도 꿈이 아닌 듯 한 그 혼란스러움 속으로 다시 빠지고 싶지 않다.

무력함.

그 걸 알 때까지 또 그냥 겪으련다.

모르면 모르면서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어쩌면, 이 것은 내가 커 가기 위한 필연의 과정인 지도 모른다.


그와 더불어 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의 접근을 하지 못 한 것이 더욱 답답하다.

아픈 것은 그냥 아프다 말지만, 내가 이 답답함을 풀지 못 한다는 것이 더욱 괴롭고, 점점 시간이 흐른다는 조바심, 그리고 이 것이 언제 끝날 지 모른다는 것.

만일 안다면, 그 것이 나에게 예정돼 있다면, 나는 내 자리를 지키면서 담담히 기다릴 수 있을 텐데.

어찌 살다가 이렇게 흘러 왔는 지.

차라리 몰랐다면 나에게 면죄부가 될 수도 있었는데.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흘러 가는 시간이라도 금쪽처럼 써 보자는 것이다.

그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정말 내가 아는 것이 제대로 알고 행하는 것이라면, 분명히 답은 나오게 돼 있다.

그 때를 기다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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