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나중해 8, 1월 1일의 기록

2021-03-21 23:02:45

by 속선

어떤 명목으로 갔는 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따로 텍스트를 작성해 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걸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텍스트에 없는, 그 텍스트를 갖고 오른 외적인 배경을 기록에 남기고자 함이다.

더 기억이 흐릿해 지기 전에 말이다.


시기적으로 의미를 담아 둔 것은 있다.

정확하게 의미를 안 것은 아니지만, 그저 그렇다라고 하니까.

사흘 전에 미리 제단에 오를 것을 고하고, 준비를 했다.

이 때만큼은 음주를 삼가고, 신체적으로 잘 오를 수 있도록 몸을 준비했다.


지금도 기억 나는 것이, 나는 분명히 수월한 서 쪽 코스로 오르기로 작정했는데, 공교롭게도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오를 수 없었다.

6 시가 안 되는 다소 이른 시각에 미리 시내에서 식사를 하고, 그대로 버스로 초입에 진입해서 수월하게 오르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왜 버스를 놓쳤느냐 하면, 나는 분명히 제 시각에 맞춰서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었음에도, 날이 일찍 저물어서, 버스는 내가 정류장에 있는 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친 것이다.

그 때 허탈한 심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계획 자체가 무산된 것은 아니다.

다만, 가파른 길이 예정돼 있을 뿐.


허탈한 심정으로 집에 도착해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든든하게 먹어 둬야 했기에, 적당히 기운낼 수 있는 음식이 선지국이었다.

그 걸 먹고 배낭에 스마트폰 후레쉬를 테이프로 달고 나왔다.

이미 완연한 어둠이 깔린 저녁이 되었다.

그 때가 아마 8 시 전후 즈음이 되었을 것이다.

내 계산은, 이런저런 시간을 감안했을 적에 여유롭게 11 시 반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글쎄, 오를 때의 기억은 그저 무거운 짐을 짊어 지고, 어둠을 뚫고 헤쳐 나가는 것 말고는 없다.

아무래도 내가 있는 가운데 코스는 3 분의 1 기점 전까지의 가파른 경사가 가장 힘들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차라리 초반에 힘 있을 때 올라 버리는 것이 나은 것이랄 수 있겠다.

그래도, 볏짚을 깔아서 오르기 좋게 만든 길이다.

기점까지의 중간 지점에 쉴 수 있는 데크가 있다.

그 또한 볏짚을 깔 적에 만든 지 얼마 안 된 것이다.

거기에 그대로 누워서 지켜 본 이 백두대간 한 가운데의 밤하늘과 별.

나는 그 공한한 곳에서도 무언가를 찾아 보려 했던 것일까.

감상의 여지는 없었다.

원망의 대상도, 동경의 대상도 아니었던 듯 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당시 아직 눈이 녹지 않은 산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산길을 무거운 등짐을 매고 오르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그 산을 오르면서 외쳐 댔다.

날 보라고, 나는 한다면 한다고.


정상에는 비구니들이 기거하는 사찰과 유명한 약수터가 있다.

아마, 얼어서 물을 못 떴던가, 그랬을 것이다.

정상에 펼쳐진 공활한 밤의 허공과 별빛, 좍 쳘쳐진 산하가 가히 장관 중의 장관이다.

이대로 우주 공간에 놓여진 기분의 아름다움이었다.


산 정상에는 소원을 빌기 위해 마련해 놓은 돌제단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곳에서 서약을 하지 않았다.

그 곳은 내가 몸을 들일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입구서 간단히 읍만 하고 그대로 나왔다.

그 곳에서 능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 가는 길이 있고, 거기에도 제단이 있다.

그 곳은, 신분이 낮은 이들이 의식을 하던 곳이었는데, 내가 서약할 곳이 그 곳이었다.


가까운 수풀 속에서 짐을 풀고 준비해 온 의복으로 갈아 입었다.

다행히도 그 날은 한 겨울 날씨 속에서도 눈에 띄게 푸근한 날이어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산을 오르면서 거의 탈진하기 일보 직전의 체력 저하에 시달렸다.

오를 때는 열이 나서 잘 못 느꼈는데, 땀이 식으면서 추위를 느끼고, 옷을 벗을 때 잠시지만 맹추위와 강풍으로 저 체온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느릿한 동작으로 얇은 복장과 양말도 신지 않은 차림으로 정해진 의식을 강행했다.

모름지기, 내가 큰 서약을 할 정도면, 이 따위 작은 어려움 정도는 간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각오도 없었다면, 그 야밤의 설산을 헤쳐 올 이유가 없었다.


준비해 온 것들을 들고 제단을 차리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었느냐면, 산을 타느라 후들거리는 다리, 그보다 맨발이었기 때문에 발이 그대로 얼어 버려서 발에 감각이 없어서 걷기가 매우 쉽지 않았다.

불과 몇 발자국 안 되는 거리를, 나는 대찬 바람을 그대로 맞아 가면서 엉거주춤 걸어 갔다.

얇은 옷차림으로 추운 것은 이루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내가 의식에 걸맞는 복장으로 내 뜻을 표하는 것이었고, 그나마 그 때는 그래도 복장 적으로 다소 타협을 본 것이었다.


제단에 상을 펴고, 그 위에 흰 사발을 놓고, 물을 따랐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 것은 경기도 양평에서 떠 놓은 묵은 물이었다.

그 것은, 내가 그 곳에서 이 곳으로 옮을 표하는 것이었고, 그 목적과 의미까지 표명하는 발로였다.

사실, 용의주도하게 준비한 것은 아니고, 그저 양평 물을 오랫 동안 버리지 않고 두고 있던 것을, 그냥 이 번 기회에 활용하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제단에 정해진 순서대로 절을 하고 경문을 읊고, 무릎을 꿇고 서약서를 읊기 시작했다.

지친 상태에서 저 체온증까지 느끼니까 정신이 약간 흐릿한 상태였다.

돌 바닥은 무척 딱딱해서 무릎, 정강이의 고통은 이루 말이 안 될 정도였고, 이따금 부는 바람이 속까지 사무쳤다.

서약서는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요행식으로 읊조리는 것에 가까웠다.

너무 괴롭고 추워서, 빨리 헤치우고 내려 가지는 식의.

그 서약서를 읊을 때 내 몸이 떨린 것이, 내 의사와 무관하게 떨린 것도 있었고, 나 역시도 몸을 떨어야 견딜 것만 같았다.

발버둥이나 다름 없었다.


겨우 의식을 마치고 짐이 있는 곳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발에 완전히 감각이 없어서 내 뜻대로 거의 통제가 안 되었다.

춥고 괴롭지만, 서둘러서 사고를 자초하지 말고, 조심히 하나씩 발을 펴서 일어 나려고 했다.

몸은 탈진에다, 정신의 포커스가 흐릿한 상태였고, 내가 그 때 이대로 정신의 초점을 잃으면 자칫 정말 꼼짝없이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정신만 잃지 말고 잘 몸을 다독여서 가자고 내려 가자는 생각 뿐이었다.

오죽하면, 그 때 스마트폰 배터리와 시각을 확인하면서, 이대로 내가 구조 요청을 했을 시에 과연 구조 대원이 올 수 있을 지, 그 동안에 내가 과연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지까지도 염려가 들 정도였다.


내 발같지 않은 발을 이끌고, 겨우 어렵사리 짐이 있는 수풀로 돌아 왔다.

나는 핫팩을 준비해 오긴 했으나, 이 것이 그 때 그렇게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 줄 것이라곤 생각치 못 했다.

그냥 여분의 남는 것을 갖고 올라 가도 나쁠 것이 없으리라고만 생각했던 핫 팩이었다.

그 걸 흔들어서 열이 나는 것을 발가락에 대고 녹이는데, 겨우 발의 감각이 돌아 와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제단에서 짐이 있는 수풀까지 불과 얼마 안 되는 거리임에도 나는 사력을 다 해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서 걸어 왔다.

이제, 원래 따뜻한 복장으로 갈아 입고, 짐을 챙겨 내려 오기만 하면 된다.


내려 올 때는 올라 올 때보다 더욱 하산이 쉽지 않았다.

녹지 않은 눈으로 인해, 나는 수십 번을 넘어져 가며 내려 왔다.

그래도 미리 준비해 둔 장갑이 있어, 로프를 잡으면서 내려 오니 수월했다.

그 장갑은 사실, 비싸게 산 외출용 가죽장갑이었는데, 스크래치로 헤진 것이 속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내려 올 수 있음에 썩 아깝진 않았다.

기점을 지난 후부터는 다리에 힘조차도 낼 수 없어서, 한 발자국 씩 내딛 듯이 걸었던 기억도 난다.


어렵사리 도착했을 때가 아마 2 시 반을 넘겼을 것이다.

3 시를 넘겼는 지 기억은 안 난다.

아무튼, 힘들게 의식을 마쳤다는 도전심과 성취감은 있었지만, 바보 같은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게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께 내 의지와 진정성을 보여 줌이지, 호기를 부리고자 함은 아니잖은가.

글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깊숙히 파고 들면 아닐 지도 모른다.


이제 그런 의식을 앞으로 또 갈 일이 있을런 지는 모르겠다.

현재 생각으로, 앞으로 갈 일은 없거나, 또 요원해 보인다.

형식은 마쳤지만, 이 것이 정녕 바르게 한 지에 대한 의문은 지금도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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