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14년 간 키운 고양이를 잃고

2021-05-26 22:55:05

by 속선

이에 대해 쓰자니, 참으로 먹먹하다.


나는 애완 동물에 대해 가족이라는 표현을 쓰길 거부한다.


가족처럼 친숙하다, 애정을 가지고 함께 한다, 이 게 맞는 것이지, 인간이 동물과 동격으로 가족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자연의 한 부분으로써 가까워 질 수는 있으나, 가족은 인간과 인간끼리의 관계 표현이지,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될 수는 없다.




어쨌든, 나와 오랫 동안 같이 하던 고양이가 하루는 집을 나가더니, 이제 돌아 오지 않는 지가 벌써 나흘 째가 되었다.



평상 시에 풀어 놓는다.


시골에 살면서 좋은 점이, 고양이를 풀어 놓아도 마음껏 야생을 뛰어 놀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애완 동물이 자연과 가까이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애완 동물이 일평생을 집이란 공간만 인식하다 죽는 것을 가련하게 생각하던 차에, 고양이가 무성한 풀밭을 거니는 모습이 너무 흐뭇했다.


참 여기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다.


그러다, 제 발로 들어 오고 싶으면 들어 온다.


이따금, 내가 벌레 때문에 문을 닫아 놓았으면, 잠자코 그 앞에서 기다린다거나, 우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사 문을 열어 준다.




그렇게 지내던 중, 집을 나간 고양이가 돌아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꽤 오래 논다고 생각했지만, 날이 저물 때 뭔가 문제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와 비슷하게 다음 날이나 며칠 후에도 돌아 온 적은 있었다.


그 때는 아랫 집에서 키우던 개를 무서워 하여, 고작 몇 발자국 안 되는 거리를 통과하지 못 하고, 서성였던 것이다.


이 번은 그 개도 없고, 고양이도 집 주변의 지리에 익숙해 진 터라, 상황이 많이 다른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고 짐작할 뿐.


그렇게 밤에 잠을 들 때마다 별의 별 생각이 든다.


인근 야생동물, 멧돼지에게 먹힌 것은 아닌 지, 가장 유력한 것은 너무 먼 거리를 놀다가 길을 잃은 것이라고 짐작되지만, 그 고양이가 그래도 제 발로 먼 거리를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누가 예쁘다고 데려 간 것인 지, 산 속의 올무에 발목이 잡힌 것은 아닌 지, 지나 가는 차에 치인 것인 지, 나로써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집에서만 곱게 자란 녀석이라, 야생에 쉽사리 적응할 수 없다.


지금 시기가 그래도 따뜻한 기후라지만, 새벽에는 꽤 춥다.


아마, 산 속에서 길을 잃다 먹을 것을 못 먹거나, 새벽 추위를 견디지 못 해 죽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오랜 기간 애정을 주며 키우던 동물이라, 참으로 안타깝고, 슬프다.


죽었다고 한다면, 차라리 미련갖지 않고 곱게 묻어 주었을 텐데, 생사행방을 모르니, 오만 생각이 들 뿐이다.


녀석의 수명이 다 할 때, 내 손으로 뒷 산에 잘 묻어 주리라 다짐했건만, 이따금 들려 오는 집 안의 진동 소리, 다른 고양이의 울음 소리에, 혹시나 걔가 서성이는 것은 아닌 지, 헛된 희망인 걸 알면서도 둘러 보게 된다.




감히 동물을 키운 것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자식은 키운 부모의 심정은 오죽하랴.


작지만, 이를 통해 부모의 심정도 헤아리는 계기가 되었다.


의미 없지만, 조금 더 기다려 보고 고양이의 용품을 정리하고, 내 갈 길을 다시 가려 한다.




고마웠고, 미안하다.


바보같은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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