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를 혼내다 2

2020-12-29 22:13:08

by 속선

거지는 개인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병폐이다.

우리 사회 속에서, 어느 누군가 힘든 이가 있다면, 그 힘든 이의 고민을 들어 주고, 같이 도와서 해결할 수 있다면, 멀쩡하던 이가 거지로 떨어질 이유는 하등 없는 것이다.

이 것은, 사회 공통 책임이지, 개인의 무능력으로만 돌려서는 결코 안 된다.

생각해 보라. 거지가 되기 전에, 그 주변 지인들도 그 당사자의 어려움을 어찌하지 못 했거나, 알고도 무관심해 버렸다.

이 것을 어떻게 개인 탓으로 돌릴 수가 있겠는가.

물론, 당사자가 주변 지인의 도움을 거부한 것은, 오롯이 개인 탓이 되겠지만 말이다.


나는, 서울에서 강북 지역에 살면서 거지들을 유달리 많이 봐 왔다.

영등포역, 서울역, 시청, 종로 일대는 특히 거지가 많다.

출퇴근 길을 다니면서, 그 거리에서 노숙하는 거지들의 얼굴까지 기억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무심히 지나 쳤고, 안 된 자들이라는 똑같은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서, 동정으로 돈을 주는 것이 아니고, 혼을 냈던 것이다.

혼을 냈다고 하는데, 악감정은 일체 없었고, 안 된 심정이 더 컸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그들이 어둠의 구렁텅이에 살도록 조력하는 일은 할 수 없기에, 나름의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것일 뿐이다.

결과가 이럴 거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했었고, 거지도 여태까지 적선하는 이들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나한테 화를 낼 법도 했다.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만일에 말이다. 우리 모두가 거지가 구걸을 해 온다면, 나처럼 혼을 낸다고 상상해 보자.

현재 우리의 관념으로는 참 너무하다 싶겠지만.

구걸하는 족족, 혼을 내서 쫓아 낸다고 하면, 거지는 어떤 생각이 들까.

처음에는 왜 이리 인간들이 야박하게 구는가, 안 그래도 거지로 사는 것도 서러운데, 이마저도 도와 주지 않는다면, 나는 죽어야 하나, 온갖 고민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소수의 적선과 더 부지런한 구걸로 연명한다면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이고, 설령 정말 굶어 죽는다고 해도, 개인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물론,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생명이라는 관념에 위배되는 것이지만, 개인이 시각에서 봤을 적에 그렇게 아무 발전 없이 살면서 연명하는 것이나, 사회적 관점으로 봤을 적에도, 이 사회의 부담과 아무런 생산성이 없다라고 한다면, 그 구성원은 이 사회에 없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주장한다.

몹시 비정한 얘기를 하는 것임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희망적인 그림도 그려 보자.


적선 대신에 일을 하라고 이구동성으로 한결같이 얘기한다면, 그 거지의 생각도 달라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이제는, 돈을 달라는 구걸이 아니라, 내가 어디서 일하면서 먹고 살지를 알려 달라고 할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많은 이들이 당장 어찌하지는 못 한다 하더라도, 아마 많은 이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자가 있을 것이다.

많지는 않아도 정기적인 봉급을 주며, 끼니 걱정도 없는 일자리를 알선해 줄 수 있는.

대신, 앞으로 깨끗이 목욕하면서 지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일할 의지가 있는 지를 물을 수 있는.

그런 곳에는 그 거지와 같은 출신들이거나, 비슷한 자들이 많으니, 통하는 것도 많고, 외로울 것도 없을 것이다.

거기서 대인 관계를 다지고, 안정감을 찾으면서 다시 이 사회에 덤빌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그런 삶을 그리는 희망. 이 것이 진정한 도움이라고 말하는 바이다.

사회 발전과 지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면, 그에 따른 최소한의 복지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거지의 어려움을 단순히 동정심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평생 거지로 살게끔 돈을 주면서 조력을 할 것이 아니라, 말단이라도 이 사회의 동일한 구성원으로 합류할 수 있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돈을 주고 불쌍히 여기는 것은, 평생 거지로 살면서 죽을 때까지 이 사회의 구정물이 되라는 것과 진배 없다.

돈을 주면, 나는 그 일에 조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깨어 나야 한다.


사실, 돈을 주는 것은 쉽다.

그래 봐야 몇 푼 던져 주면, 고맙다고 고개 숙이면서 물러 간다.

나도 착한 일을 했다는 생각도 들고 얼마나 좋겠는가.

내가 내친 김에 그 노파한테 한 소리 더 했다.

“아줌마, 내가 천 원이 문제가 아니라, 내 만 원도 줄 수 있어. 그런데, 아줌마는 이 돈 받고 일 안 하고, 또 이러고 다닐 거잖아.”, 그 게 핵심이었다.

이 돈을 받고 나서 일을 안 할 거라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 거지의 인생 자체를 뒤흔들지 못 했다.

돈을 줘 버리면, 이 게 먹히는구나 싶어서 더 구걸을 열심히 하고 다니지, 어찌 이 돈으로 취업을 하고자 하는 데에 쓰겠는가.

그 노파는, 말로는 일을 할 것이라고 하는데, 얕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래서, 돈을 주는 편리함보다는, 싸우면서 조금이나마 거지가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혼을 냈던 것이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거지에 대해 다시 바라 볼 수 있는, 그들을 위한 진정한 도움이 무엇인 지,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도우면서 이 사회의 거지 계층을 없앨 수 있는 지에 대한 좋은 계기가 되는 바램으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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