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거지를 혼내다 1

2020-12-29 22:12:24

by 속선

모처럼 서울에 나들이를 갔다.

명동 롯데백화점은 서울에 갈 때마다 자주 가는 곳이었다.

비싼 물건을 사지는 못 해도, 지하의 슈퍼에서 음료수를 마신다.

사치스런 명품을 파는 곳이지만 또, 돈이 없어도 신기한 수입품이나 이런저런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북적이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과 내국인들.

나는 용건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를 고민 중이라, 롯데백화점 정문 앞의 벤치에 잠시 앉았다.

다음은 어디를 갈까, 저녁은 어디서 뭘 먹을까를 잠시 스마트폰으로 찾던 중, 어떤 노파가 내게 말을 걸어 왔다.

딱 봐도 노숙자 걸인이었다.

배가 고프다며 내게 천 원을 구걸하였다.

저런 자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지만,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작심하고 되물으면서 훈계조로 대응했다.

나이 많은 어른에게 그래서는 안 되는 상당한 무례지만, 작정하고 그러기로 했다.


“배가 고프면, 돈을 벌어서 밥을 먹어야지, 왜 엄한 자들한테 돈을 달라고 하세요?”, 그랬더니, 옹색한 변명을 하면서 재차 천 원만 달라는 것이었다.

한 술 더 떠서 혼을 내기 시작했다.

“여기 다른 자들 봐요. 다들 열심히 돈 벌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비싼 것도 사고 하잖아요. 아줌마는 왜 일도 안 하면서 거저 돈 달라고 그래요?”,

“아, 일 해요. 있다 일 해요. 그러니까, 천 원만 줘요!”,

“아줌마, 내가 천 원 주면 다음부터는 일 안 하고 계속 이러고 다닐 거잖아?”,

“아, 일 한다니까요. 다른 사람들은 불쌍하다 그러면서 다 돈 주는데, 주기 싫으면 마요!”,

그러면서도 내 곁을 떠나지를 않는다.

행여나 줄까, 하는 작은 미련이 떠나지를 않는다.


그랬다. 이 것이 거지의 상식적인 관념이었다.

아까 그 할머니의 대답 중에 진실이 툭 나온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불쌍하다고 다 그러는데.”, 겉보기에도 알 수 있지만, 저런 생활을 오랫 동안 해 왔으며, 그 원동력에는 구걸하는 행위와, 구걸에 응해서 돈을 주는 행위가 양립되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 번 따져 보자.

저 할머니가 처음부터 어미 뱃 속에 나올 때부터 거지였고, 커서도 거지가 될 팔자라고 누가 장담하고 보장했나?

사연 없는 거지는 단 한 명도 없다.

어찌 살다 보니 추락해서 이 지경까지 끌려 내려간 것이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세상은 나를 환영해 주지도 않고, 내가 분발해야 할 동기도 찾지 못 하고.

그렇다고 죽을 용기도 안 나고.

살기는 해야겠는데, 배는 고프고.

그래서 구걸을 하게 된 것일 게다.

궁핍하게 살지만, 한 편으로는 편하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간섭하지도 않고, 나에게 상처주는 이도, 내 걸 뺏아갈 이도 없다.

어차피, 뺏길 것도 없으니 말이다. 치열하게 살 필요도, 내 걸 지키고 상대 걸 빼았기 위해서 골치 아플 부담도 없다.

적당히 골라 잡은 내 자리만 잘 지키면서 화장실은 지하철 공용을 이용하면 되고, 하루하루 먹을 것만 잘 구하면 된다.

이따금 사람들이 남긴 것을 먹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없을 때는 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구걸을 하는 것이다.

내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지만, 소용없는 소리였다.

아무리 바보, 거지도 돈을 벌어 먹고 사는 것을 모르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상식 중의 가장 보편적인 상식이다.

가능하다면, 하다 못 해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라도 안정적인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삶을 마다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가 있다면 몰라도, 사지육신이 건재해도 거부하는 거지들도 많을 것이다. 왜일까?


이미 의지 자체를 상실해 버렸다.

부지런하게 사는 고단함보다는, 그냥 자포자기로 사는 것이 편하고 쉬운 선택이 돼 버렸다.

직장을 갖는다. 그 것은 너무 큰 도전이다.

나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

대인관계를 잘 유지할 자신도 없고, 정기적으로 출퇴근해서 윗 사람 눈치보면서 잘 일할 수 있을 수도 없다.

누구도 나를 진정 도울 수 없고, 나도 도움을 원치 않는다.

답은 오로지, 현재 코 앞의 내 몸만 챙기면 된다.

아무런 부담도 없고, 세상에 행해야 할 의무를 위해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이렇게 살면서 내 수명이 다 할 때까지 시간만 때우다 이 고통스런 세상을 떠나면 된다.

이 게 그나마 내가 가능한 유일한 활동이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는가.

손해볼 것이 없는 장사다.

나는, 점점 죽음이라는 탈출구를 향해 나아 간다.

모두가 답을 찾지 못 하고 있다.

나 또한 여러 생각을 해 본 끝에 혼이라도 내 보자는 시도를 한 것이지만, 해결할 수 없었다.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 했다.

또, 그렇게 다른 이에게 빌붙어서 살아갈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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