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9 22:19:32
시내 어느 중식당에서 있었던 일화이다.
여느 때처럼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중식당에 들렀다.
자주 가는 곳은 아니었지만, 오랜 만에 들르고 싶었다.
돌림병이 한창 돌던 때고, 식사 시간을 빗겨 간 때여서 그런 지, 식당엔 손님이 없었다.
주문을 해서 식사를 막 시작하던 중, 50 대 남성이 와서 이것 저것을 묻는다.
“삼선 짜장 됩니까? 얼마에요? 해물이 들어 가나요?”
양복에 점퍼 차림이었고, 현지인 말투는 아니었다.
일 때문에 잠시 이 곳에 들린 듯 보였다.
허나, 음식에 묻는 것이 뭔가 평범치는 않았었다.
삼선 짜장면이란 음식 자체가 해물이 들어 가서 보통 짜장면보다 비싼 음식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음식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묻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조리법과 재료가 아니면 안 될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손님이 앉은 식탁을 정면에 앉아서 식사를 했기에, 말소리, 행동이 잘 보였다.
역시나 그는 먹으면서 불평을 하기 시작한다.
“아니, 이 게 어떻게, 참…”.
해물이 적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나 역시도 손님으로 식사를 하고, 그 식당에서 몇 번 식사를 해서 그 식당의 스타일이 어떤 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 불평할 것이 없었다.
내가 그 음식을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중식당은 다소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기름지지 않은 담백하고 정갈한 맛이었다.
역으로 표현하자면, 평범하면서 다소 심심할 수 있는 맛인 것이다.
중식이 요리의 멋과 화려함을 잘 나타 내는 식인데, 그 집은 기본, 그 이상의 개성있는 맛은 아닌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모든 중식이 그럴 필요는 없는 것이고, 그 것이 그 식당의 개성이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 손님의 불평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는 있었다.
나갈 때도 강하게 불만을 표출하면서 나갔다.
돈을 내네, 안 내네를 운운하며, “이 게, 삼선짜장입니까?”, 이윽고, 카운터의 설왕설래를 듣던 주방의 직원이, 어떤 게 불만이냐며 가세한다.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다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튼 그 식객은 그렇게 화를 내며 나갔다.
잠깐의 생각 끝에, 나는 그 손님의 문제점을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면, 음식을 말로 묻고 말로 답을 듣는 걸로 판단하는 것이 문제였다.
손님이 원하는 음식이 무엇인 지, 또,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이 어떤 맛인 지를 서로 묻고 답하는 것으로 내가 원하는 맛을 식당에서 보장해야 한다?
삼선 짜장면은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찍어낸 공산품이 아니다.
음식의 이름을 삼선 짜장면이라고 명명은 해 놓았지만, 각 식당마다의 조리 방식과 삼선 짜장면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또, 같은 식당이라 하더라도, 조리사의 그때 그때의 사소한 변수와 재료, 조리법이 약간씩은 다르기 때문에, 한 식당의 단골도 편차를 느끼기 마련이다.
이런 다양한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말로 묻고, 말로 들은 답변을 토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삼선 짜장을 기대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식당에서도 그 손님이 원하는 삼선 짜장이 무엇인 지 정확하게 다 알 수는 없다.
내가 식당 주인이라면, 그런 손님은 사전에 안 받았을 것이다.
이런 결과를 초래해서 식당 분위기를 망치기 때문이다.
필시, 그 손님은 그 식당에서 삼선 짜장을 먹기 전에, 다른 식당에서 먹은 삼선 짜장을 기준으로 삼아서 기대한 것이 틀림 없다.
만일에 말이다. 뒤집어 생각해 보자.
그 손님이 다른 데서 삼선 짜장을 먼저 먹지 않고, 그 식당에서 먼저 삼선 짜장을 먹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그 손님은 그렇게 불만을 표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 처음 접하는 삼선 짜장이 원래 그렇게 나오는 거라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고 나서 다른 식당에서 삼선 짜장을 먹는다면, “그 집보다 여기가 훨씬 낫네!”라고 기분 좋게 나왔을 것이다.
그 식당보다 더 잘 하는 곳에서 삼선 짜장면을 먹고, 그 것이 삼선 짜장이다라고 자신이 임의대로 기준을 세운 것이다.
그 기준을 토대로 해서 그 식당의 삼선 짜장이 성에 안 차기 때문에 당연히 화가 난 것이다.
전에 먹었던 음식이 더 나은 음식인 건 본인의 기준이지, 그 것이 모든 삼선 짜장의 기준이 될 수가 없는데, 스스로가 정해서 그 음식이 아니니, 하는 것은 옳지 못 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다양한 식당에서 음식을 먹다 보면, 정말 형편없는 곳, 겉멋만 부린 곳, 돈이 아깝지 않은 곳, 여러 유형을 겪는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나오면서 불평을 해 본 적이 없다.
그 식당은 원래 그런 곳이었고, 나는 그 식당이 어떻게 나오는 지를 알 지를 못 하고 접근했다.
그래서, 내 성에 안 차면 안 차는 대로 나오고 말지, 식당 주인한테 이러쿵 저러쿵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 식당보다 더 잘 하는 곳은 많은데, 앞으로 다른 곳을 가면 될 뿐이다.
그 식당 주인은 누가 와도 똑같이 만들어 내 줄 뿐이다.
이 세상의 모든 식당이 마찬가지라고 본다.
더군다나 요즘은 좋은 시대 아닌가. 인터넷에 온갖 정보가 다 있고, 이제는 스마트폰을 가진 누구나 사진을 찍어서 자발적으로 식당에 대한 경험담을 올린다.
이제는, 내가 가고자 하는 식당의 음식이 어떤 지를 대략적으로라도 파악할 수 있다.
인터넷이 전혀 없어서 주변 지인의 말과 간판만 보고 판단한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은가. 이런 인프라를 활용할 줄 아는 것도, 내가 원하는 소비의 만족도를 높여 줄 것이다.
그 식당에서 설왕설래하는 상황에서 보는 나도 언짢음이 있어서 나무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끼리의 상황이기에 그냥 식사만 하고 나왔다.
내 자신은 식당에서 저런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그 것은 식당에 국한된 것이고, 다른 곳에서 소비를 하면서 나도 저러지는 않았는 지를 돌이켜 보았다.
철없이 한 행동들이 너무 많아 부끄러웠고, 과거의 기억들 속에서 하나 하나 상기해서 다시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이제는, 내 기준으로 상품과 거래에 대해 임의로 판단하는 것은 아닌 지, 나도 저런 꼴불견이 나도 모르게 되는 것은 아닌 지, 경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