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9 22:25:46
시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 식당 여 주인은 아들이 있었는데, 아마 유치원 다닐 나이일 듯 싶었다.
식당에서 “공부하기 싫다.”고 크게 외치면서 자기 엄마한테 반항스럽게 굴었다.
다른 식당 손님들은 조금 시끄럽기는 해도, 애니까 그러려니 하고 조용히 식사를 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늘상 보는 모습들이었고, 아마 많은 이들이 그렇게 자라 왔고, 그렇게 교육을 시킨다는 데에 동감할 듯 하다.
당연히 어미는 아들을 나무랬다.
“공부하기 싫어!”, “나도 너가 이러면 좋은 게 아니야!”, 그 대화를 듣던 한 손님이 피식 웃었고, 나 역시도 조금은 유치한 듯 싶어서 우스웠었다.
대화의 내용인 즉슨, 아이는 공부하기 싫고 놀고 싶은데, 어미는 공부는 멀리 하고 노는 것이 못 마땅한 것이었다.
잠시 생각을 했다.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 것일까.
진정한 학습은 무엇이고,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불현듯 든 생각이, 그냥 아이 하고 싶은 대로 놔 둬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제도권 교육도 중요하다.
이 사회를 살아 가는 데에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동등한 사회인으로 합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떤 부모도 자식이 뒤쳐지는 자식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이가 당장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당분간은 아이의 요구 대로 들어 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아이의 상태에서 공부를 시킨다고 한들, 아이는 지금 놀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주입시키는 공부가 전혀 들어 오지 않는다.
도리어, 더 답답함이 가중될 뿐이다.
한창 놀 때이다.
하고 싶은 걸 실컷 하면서 놔 뒀으면 한다.
놀면서 자신의 기운을 발산해야 비로소 진정이 되고, 쉬고 싶어 진다.
이 때, 휴식을 시키면서 공부를 하면 잘 된다.
더 나아가, 같이 놀아 줘라.
내가 바쁘면, 다른 또래를 붙여 주거나, 같이 놀아 줄 만 한 후견인이 있으면 같이 놀게 붙여 줘라.
부모도 바쁘겠지만 같이 놀아 주거나, 책을 던져 주면서 공부를 시키는 것보다, 가급적이면 같이 공부하는 데에 동참하면 금상첨화이다.
그러면, 아이는 부모를 아주 잘 따르게 된다.
아이가 노는 데 한계가 있다.
그 후에 같이 공부하자고 하면, 아이는 기꺼이 따르면서 공부에 집중할 것이다.
이 생각이 들자, 식당 여 주인에게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냥 담아만 두고 나왔다.
나는 평범한 손님일 뿐이지,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을 가능성은 낮고, 그 식당 단골인 지라, 다음에 오면 다소 불편할 듯 싶어서였다.
나는 미혼자이며,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전무하다.
내가 어찌 생업과 육아에 지친 이들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식당에서의 부모와 아이의 갈등을 보면서, 항상 우리가 접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을 알면서도 진정한 해답을 찾지 못 한 채 외면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나 또한 제도권 교육과 부모의 훈육에 많은 고통을 받고 성장한 인간으로써, 부모보다는 아이의 심정을 더 헤아릴 수 있었다.
내가 한창 하고 싶은 걸 하지 못 하고,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한다는 것은 정말 싫다.
부모는 이해해 주지 못 하고,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고, 누구도 내 편이 되어 주지도 못 하는 현실의 무력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공통된 얘기를 한다.
다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이고, 커서야 비로소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맞는 얘기이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어떤 부모가 자식이 미워서 그렇게 공부로 몰겠는가.
나 역시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지금은 꼭 그 방식만이 해답이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 남은 학생들은 사회에서 활약할 수 있지만, 거기에 뒤쳐진 이들은 사회의 변방에서 소외된 채 낙오자로 살아 간다.
우리는 저마다의 체형과 성질이 다른데, 모두 한 데 같은 크기의 옷을 입혀 놓아서 사회 속에 소속되도록 한다.
견뎌 내는 아이들은 놔 두고, 낙오된 아이들의 아픔과, 그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지를 보자.
이 것이 과연 올바른 교육인가?
과거에 행해진 방식과 어른들, 교육자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우리 사회가 고도로 발달하기 위해서는, 여유 부릴 여건이 없었던 것도 바라 봐야 한다.
오늘 날, 비록 병폐는 많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를 이끄는 주역이 탄생한 것도, 이러한 엄격하고 강압적인 교육 방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참 좋은 시대가 되었다.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 볼 여유가 생겼고, 이 사회의 지치고 힘들게 살아 가는 소외자들을 돌볼 여유가 생겼다.
이제, 새로운 교육 방식이 정립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소수의 우수한, 독단적인 리더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국민 모두가 계몽을 하고 역량을 키우는 시대라고 감히 주장한다.
선착순으로 빨리 도착하는 이는 먼저 쉬게 하고, 뒤쳐진 낙오자들을 다시 뺑뺑이 돌려서 경합하게 하는 것은, 이제는 안 된다.
서로가 존중하는 방법을 배우고, 서로가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해서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협동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부모와 교육자가, 저마다 다른 아이의 소질과 유형을 파악해서, 아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거기에 맞는 교육의 길로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는 교육 방식이 나와야 한다.
우리는 노는 것은 낭비적이고, 공부를 해서 성적을 향상시키는 것이 생산적이라는 사고 방식을 가졌다.
그래서, 아이가 노는 것을 반대한다.
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자.
아이는 한창 공백 상태인 자신을 채우면서 성장한다.
그 공백은 체험과 학습을 통해서 채워 나간다.
그런데, 어째서 학습만이 채우는 것이고, 노는 것은 채우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내가 하고 싶은 진정한 얘기는, 학습과 놀이를 분간하지 말자는 것이다.
즉, 학습과 놀이를 융합해 버리면, 놀지말고 공부하라는 얘기는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이가 노는 것에 주목해 보자.
아이가 게임을 좋아 하면, 게임 속에 학습의 내용을 넣는 것이다.
아이가 축구나 스포츠를 좋아 하면, 그 안에 학습의 내용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고안한다.
그 동안에 게임이나 노는 것이, 단순히 신나게 놀고 그치는 것이라, 부모 눈에 탐탁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유희 속에 학습을 넣어 버리면, 아이는 얼마든지 놀도록 놔 두게 된다.
도리어, 더 놀도록 도와 준다.
재미있어야 뭘 해도 신난다.
기존 교육이 아이가 흥미 없는 딱딱한 교육 내용이었고, 노는 것도 이러한 발전적인 내용물이 없었기 때문에 구분이 되었던 것이다.
부모도 아이를 억압할 필요가 없고, 아이도 억압당하면서 고통 받을 일이 없다.
교육과 유희가 융합되어야 한다.
두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구하면서 새로운 학습 컨텐츠를 내 놓아야 하는 것이 시급하다.
아이가 웃으면서 놀면서도 더 교육이 되는.
그 식당 주인에게 말을 꺼내지 못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 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 일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