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문득 생각이 든,

'왕년에 잘 나갔던 다음 카페' (2022-01-01 13:29:28)

by 속선

1. 장미 가족의 태그교실


전성기 때, 다음 카페 회원수 항상 압도적 1 위, 다음 계정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가입했을 법 한 카페.

단순히 인터넷 태그 열풍이 불어서라기 보다는, 어찌저찌 하다 보니까 회원수가 늘어서, 그냥 별 생각없이 사람 많으니까 가입자가 늘어 난 경우인 듯 보인다.

그러다가 네이버의 급부상으로 다음 자체가 시들해 지니, 덩달아 쭉 하락세를 이어 가다 사라 졌다.

네이버도 영향이었지만, 많은 회원수에 눈이 멀어, 운영진의 비리 사태가 멸망의 불씨를 당긴 듯 하다.


2. 엽기, 혹은 진실


2000 년대 초반에 '엽기'라는 트렌드가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덩달아 엽기적인 사진, 기이하면서도 흥미를 끌어 들일 만 한 컨텐츠 카페가 '엽혹진'이었다.

장미 가족의 태그 교실 같은 경우, 불필요한 회원수의 거품이 심해서 하락세가 컸던 반면, 엽혹진은 그래도 그보단 덜 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꾸준한 컨텐츠와 커뮤니티 활동으로 롱 런한 카페.


3. 임요환님의 드랍쉽이닷-_-


마찬가지로, 2000 년대 초반에는 다음의 많은 카페들이 많이 흥했었다.

그 중에 신종 스포츠이자 직업군으로 자리 잡은 프로 게임도 큰 열풍이었고, 이제는 정식 스포츠 컨텐츠로 자리 잡았다.

신출귀몰하면서도, 상대가 예상치 못 한 급소를 찌르는 현란한 드랍쉽 플레이로 '황제'의 칭호까지 칭송받은 임요환.

내 기억으로는 회원수가 60만을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더 넘었을 수도.

물론, 진짜 임요환 선수의 개인 팬도 적지 않았겠지만, 임요환 선수가 가진 프로 게임의 상징성과 압도적인 회원수 인프라로 인해, 프로 게임이 좋은 모든 수요층들이 회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에도 몇 가지 카페들이 더 있었겠지만, 그냥 생각 나는 대로 적어 봤다.

네이버가 현재 인터넷 인프라를 장악하기 전, 다음은 야후를 대체하는 토종 포털 사이트였다.

나 역시도, 네이버를 메인으로 쓰기 전에 다음 밖에 몰랐고, 그 당시 다음 메일과 카페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JSA를 배경으로 한, "다음에서 만나자.", 광고는 아직도 회자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30 대라면 모두 공감할 듯.


내 얘기를 잠깐 하자면, 나는 천리안이나 하이텔이 아닌, 야후부터 접한 세대였다.

그 당시 야후를 떠 올리자면, 그냥 검색하면 웹사이트나 페이지 말고는 아무런 것도 없었다 해도 틀리지 않다.

지금처럼 카페는 커녕, 지식인, 백과사전, 동영상, 블로그는 어림 없었다.

SNS라고는 '다모임'이 유일했었다.

제대로 된 SNS 사이트라 보기는 무리가 있지만, 지금도 당시 동창들이 어찌 지내는 지는 종종 궁금하긴 하다.

다모임 다음에 싸이월드가 흥했는데, 사회성이 좋지 않은 나는 싸이월드를 거의 이용하지 않았다.

어쨌건, 그 당시에 싸이월드는 연예인부터 정계 인사, 유명 인사들은 다 싸이월드를 이용했으니까.

대단한 인기였다.

얼마나 도토리를 많이 투자해서 꾸미느냐, 얼마나 많은 방문자 수를 늘리느냐에 정신이 팔린 이들이 종종 있었다.


예전 내가 가입한 다음 카페 중에 생각나는 것 하나를 떠 올리자면, '이명박 탄핵 투쟁 연대'이다.

그 때 당시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엄청나게 욕을 많이 먹고 있을 때였고, 이명박은 '경제 대통령'이란 그럴 싸 한 구호로 압도적인 지지를 얻고 있었다.

내가 이명박에 대해 반감을 갖고, 정치에 조금이나마 눈을 돌리게 된 계기도 이 때였다.

그 중, 나의 아버지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이명박은 나쁜 인간이란 관념을 갖게 되었다.


"당신은 왜 이명박이 싫어?"


"비리가 너무 많아."


그랬다, 생긴 것도 비리 좋아 하게 생겼고, 영 간신배같았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던 겨울 날, 아버지는 평소에 안 드시던 술을 많이 드시고 집에 들어 오셨다.

그런 인간이 대통령이 되는 게 너무 속상하시단다.

어떻게 하면 저런 인간을 타도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이명박이 당선 되는 즉시 탄생된 카페, '이명박 탄핵 투쟁 연대'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그 때는 정치 노선이 어쩌구, 이념과 진영 논리가 어쩌구, 그런 건 전혀 모를 때였다.

그 때, 그 카페 주인장이 직접 음성 라이브 방송도 하고, 앞으로 카페 방향이나 정치 노선, 카페 운영진 선출에 대한 것을 논의하는 것도 들었다.

지금은 하나도 기억 안 나는군.

나는 그 때, 운영진은 아니더라도 집필하는 담당을 지원하기도 했는데, 그냥 글 좀 쓸 줄 알고, 이명박이 싫어서 그랬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그들 또한 지독한 좌파 집단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냥 저냥 이명박 퇴임 즈음에서 카페 명도 바뀌고, 회원수도 많이 빠졌다.


요즘에 다음은, 포털은 거의 네이버에 내 주다 시피 하고, 카카오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업으로 발을 넓히는 모양이다.

네이버의 독주가 염려되므로, 카카오가 어느 정도 선방을 해 주길 바라는 생각이 없지는 않지만, 이미 점유율로 압도하는 네이버를 뒤집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그래도, 이 두 회사로 인해 우리 나라 인터넷 인프라는 어느 선진국보다 발달되었다.


이글루스는 각성하라.

매거진의 이전글나중 해 9 성탄일, 드디어 첫 손님이 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