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봉석 씨(혜민스님) 문제

2020-12-29 19:13:52

by 속선

난 이 글의 제목을 적을 때부터 조금 고민을 했다.

나는 그를 '스님'이란 호칭을 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승적에 있을 지언정, 나는 그를 승려라고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보는 승려의 참 면목은, 인생과 세상에 대한 심대한 의문을 품고 출가하는 것에 기인한다.

그 것에 대한 화두를 삼고, 석가모니를 스승으로 삼아, 치열하게 구도하는 것이 참 승려라고 본다.

물론, 개 중에는 직업으로, 또는 속세에 대한 회피로 불가에 입문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내 기준과는 별개로, 어쨌든 직업이든, 속세의 회피든, 중다운 활동을 하는 이들을 그래도 대중들은 승려라고 봐 주고 있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런데 봉석 씨는, 내가 보는 기준에서는 아예 평가 자체가 불가였고, 대중들의 통념에서도 미달되었다.


그가 강연하는 것이나, 방송에 나와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저 인간이 속세 연예인인 지, 날라리 중인 지, 여엉놀자 판 땡중이었다.

그의 강연 내용을 들어 보면, 정통 불교의 가르침과는 다소 벗어 난 것들이 많았다.

물론, 정통 불교 또한 현 시대의 대중들의 어려운 점을 상당수 해결하지 못 하는 것이라, 이 점에 대해 크게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가장 통렬하게 찌르고 싶은 점은, 그는 이 시대를 살아 가는 대중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 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것이 치명적이다.

당신이 새벽같이 일어 나, 만원 지하철, 버스를 구겨 타고, 상사 비위 맞춰 가며 속을 삭이고, 또 만원 지하철, 버스로 퇴근하면서, 겨우 저녁 먹고 잤더니 또 새벽같이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애환과 속을 어찌 아는가.

나도 다 알지 못 한다.

직장인 뿐이랴, 이 시대에 진정한 정답을 찾지 못 해 방황하면서 상처 투성이, 좌충우돌로 살아 가는 이들이 한 명도 없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당신은 그런 속없는 말을 하지 못 한다.

그래 놓고선 방송에 나와서 지친 대중들 상대로 "고요하라.", "눈 감아라.", 신선놀음, 참 한가로운 소리나 해댄다.

모르면 말을 말아야 하는 것이고, 모르면 대중들을 위해 진정으로 어떻게 헌신할까를 화두로 잡아서 정진해야 하는 것이다.


봉석 씨의 이런 이상한 점을 느낀 이들은 나 뿐이 아니고 예전부터 많았을 것이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고가의 주택과 속세인 못지 않은 물질을 탐하는 모습이 표면에 드러 나게 되면서, 대중들의 큰 질타를 받게 된 것이다.

봉석 씨 입장에서 작게 변호를 하자면, 조금은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방송에서 세속적인 모습을 보여 준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을 진데, 왜 이 게 문제가 되는 지를 말이다.

대중들도 봉석 씨와 암묵적으로 타협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승려는 우리 대중과는 거리가 먼 종교인인데, 저렇게 대중들과 어울리면서 대중들과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을 신선하면서도 좋게 받아 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승려라는 엄격한 계율을 지키며 사는 종교인의 선을 살짝 남었으면서도, 호감적이면서도 선한 모습을 더 크게 보고 품어 주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이 계속 되다가, "이 번 방송도 뭐 문제 있겠어? 항상 그래 왔는데.", 하고서 방송을 했으나, "그 정도라면, 너가 속세에 나와서 온갖 것 누리고 사는 일반인과 뭐가 달라?"라는 마지노선을 넘어 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반문을 보았다.

다른 승려나, 성직자 중에도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거나, 중이라고 해서 항상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철칙은 있는 거냐고.

대중들이 분노하는 까닭은 거기에 있지 않다.

그가 평상 시에 보여 준 모습은, 대중들과 친화적이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의 본분은 승려이다.

승려는 계를 목숨처럼 여기면서 불법을 공부하며, 대중들 삶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인재가 되어야 한다.

그 게 아니라면, 이 사회에 불교 조직이 존재할 이유가 뭐가 있는가.

시주나 축내는 애물단지일 뿐이지.

그래도 대중들은 그를 승려라고 여겨 왔는데, 얼마 전 방송에 보여 준 모습은, 영 가관도 못 된 것이다.


"저러니, 고요하면 어쩌구, 마음을 비우세요, 한가한 소리나 해 대지."

대중들의 분노는, 배신감이라는 데에 핵심이 있다.

그래도, 뭔가 불교라는 어렵고 심오한 공부를 해서 중이 되었을 테고, 약간 날라리 같기는 하지만 봉석 씨를 승려라고 생각했던 대중들이었다.

연예인과 노는 모습을 보여 주기는 했어도, 대중들이 갖고 있는 불교나 명상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활동과 발언을 많이 하기도 했었다.

그 양면성 때문에 봉석 씨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면서도 외줄에 떨어 지진 않았었다.

가끔, 휘청거리긴 했어도 말이다.


자 보자.

우리 대중들의 어려움을 대중들이란 울타리 안에서 자체적으로 풀 수 있다면, 우린 저런 종교인을 찾거나 의지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대중들 스스로 풀지 못 하는 어려움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데, 종교 자체의 가르침보다는, 대중들의 어려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그들 손에 쥐어 져 있을 것이란 환상의 힘이 굉장히 크다.

그 것이 오늘 날 종교 조직들의 거대한 기득권으로 우리 사회를 눌러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럼 대중들이 종교에 갖고 있는 환상, 그 본질이 무얼까?

한 가지를 꼽자면, 자신들만의 언어이다.

종교에는 교주를 중심으로 한 경전이 있게 마련인데, 성직자들이 평생을 가도 어려워 할 것이 경전이다.

일반 대중 중에 불경, 성경, 코란, 탈무드의 몇 구절이나 알고 있으며, 그 참뜻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 뜻을 알지 못 하니, 자연적으로 기성 종교의 성직자를 찾아 묻고, 따를 수 밖에 없다.

기성 종교의 교주를 우리가 만날 수 있나?

수쳔 년 전에 전부 고인이 된 분들이다.

현 종교의 성직자들이 실질적인 교주의 대리인 격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교주의 권위인 경전을 높이 치켜 들고 신도들을 장악한다.

그리고, 온갖 자신들만의 어려운 용어와 형이상적인 표현으로 경전과 교리를 난해하게 풀어 준다.

당연히 이에 대해 신도들은 속뜻을 알 리가 없고, 성직자들을 경외롭게 바라 보는 것이다.

실상은, 성직자 스스로도 그 참뜻을 모르며, 성인이 당시에 말했던 뜻은 난해한 표현없이 참으로 심플한데 말이다.


우리가 봉석 씨를 바라 봤던 것도 그와 같다.

불교, 명상은 어렵고 심오한 것, 승복입고 머리 밀고 나와서 이런저런 그럴 듯 한 용어화 표현을 쓰니, 그 속을 모르고 정말 그런 줄 알아 버린다.

이해하면 참으로 별 거 아니고, 우리도 기존에 다 하고 있던 것들인데, 어렵게 꼬고 양념을 쳐 버리니까, 이해가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니까, 그 안에 내가 찾는 뭐가 있을 거라고 경외심과 환상을 갖는 것이다.

그 게 그렇게 위대하고 좋으면, 왜 정작 본인은 그렇게 지향하며 살지를 못 하는 지.

물질보다 정신적 가치가 대단하다던데, 당신에게 그런 전망 좋은 비싼 집과 물질적 활동이 뭐 그리 필요한가.

당신 말대로 눈감고 있으면 평온하기만 할 텐데.

그냥 직업 위선자일 뿐이다.


돈은 나도 좋다.

돈은 인류가 만들어 놓은 최고의 걸작 중에 하나이다.

누가 돈을 나쁘다고 하며, 왜 돈버는 것을 탐욕스럽다고 하는가.

돈을 탐내면서 인간적 참된 가치를 망각하는 것을 문제삼아야 하는 것이다.

돈이 아닌, 우리의 정신적 문제인 것이다.

봉석 씨도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본인이 말한 것과 상반되게 많이 가졌다.

대중들한테는 행복에 있어, 돈은 중요치 않다고 해 놓고선 왜 당신은 우리보다 더 물질적인 것에 탐을 내는가.

내가 한 말을 내가 행동으로 보여 주지 못 한 대중 기만이다.


그가 다시 참회하고 무슨 뭐, 은거인 지, 아무튼 수행하겠다고 선언하고 활동을 중단했는데, 이 또한 기만이다.

그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이유는?

당신은 승려가 아니고, 승적이 있는 일반 대중인데, 자신이 아직도 승적이 있으면 승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려라면, 적어도 은사 스님을 만나서 화두를 받아 정진을 하고, 불경을 탐독하면서 공부하는 것을 기본으로 깔고 있어야 한다.

그 정도는 돼야 직업 승려라고 치부해 줄 수 있다.

나는 아니지만.

그런데, 당신이 도대체 하는 게 뭐 있나?

당신이 여태껏 하는 활동은 대중들 앞에 잘 난 척 떨면서 돈 버는 것이지, 그 건 정진, 공부가 아니다.

즉, 당신은 공부 안 하는 자다.

가르치기만 하고 공부를 안 한다는 것은, 당신 스스로 공부 내 팽개 쳤다는 것이다.

그럼 승려라고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공부 끝낸 자가 스스로를 아직도 승려라고 인식하고 공언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에 이 또한 기만이라고 한 것이다.


더군다나, 사과 표명한 내용에서도 여러 소유 의혹에 대해서도 단 한 가지도 직접 언급하면서 정면 돌파 한 것도 없다.

그냥 "죄송하다." 뿐이다.

그냥 이 번에는 운이 없었을 뿐이고, 그동안 대중들 상대로 적절한 수위 조절을 해야 했는데, 이 번에 실수로 그 선이 넘었을 뿐이고, 다음부터 그보다 절제된 모습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죄송하다는 뜻이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대중들 분노는 순화가 될 것이고, 다들 그런 식으로 방송 복귀했는데, 자기라고 안 될 이유가 없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통렬하게 자신의 오점을 들여 다 볼 수 있는 그런 인간이 이미 못 된다.

글러 먹었단 뜻이다.


그는 다시 돌아 올 것이다.

달라 진 것이 없는 채로.

그냥, 대중들 기억 속에 흐릿해 져서 대중들 분노가 삭을 때 즈음에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의 근본 생각 자체가 유명세로 돈벌고 인기 누리는 것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에, 그 메리트를 생으로 포기할 이유는 하등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진정성있게 수행을 하기에는, 세상 단 맛을 너무 봐 버렸다.

참선한다고 앉아 있으면, 노는 생각, 맛있는 음식이 찬란한데, 화두가 잡히겠나?

독경을 하고 있으면, 여태껏 어울렸던 연예인과 좋은 집, 자기 회사 앱 수익이 떠 오르는데, 되겠느냔 말이다.

안 된다.

정진을 하고자 하는 근본 정신 상태가 이미 진즉부터 박살이 나 버렸다.


차라리 대중들에게 정직해 져라.

"나, 주봉석, 중 때려 치우겠습니다. 중이 아닌데, 중인 척 해서 죄송합니다. 저는 세속 물질을 좋아 하는 여러 분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그냥 일반 대중으로 살겠습니다. 헤아려 주시고, 저를 받아 주십시오."

승적이 있다고 중이 아니다.

불교에 대한 진정성있는 배움을 탐구하고, 석가모니께서 대중들을 위해 깨달음의 빛을 선사하고 가신 그 거룩한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진정한 승려의 정체성이다.


뭐, 나 역시도 그가 이 번 사태를 계기로 용맹정진해서 고승으로 거듭나, 이 시대의 등불이 되십사, 하는 글로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현 꼬락서니를 보아 하니, 도저히 그렇게 쓸 수가 없다.

봉석 씨는 혼자 제 갈 길 가라고 하고, 우리라도 땡중하고 그동안 쎄쎄쎄하고 잘 놀았으니, 이제는 우리의 참다운 길을 찾도록 하자.

땡중, 사이비는 우리가 속아 주기 때문에 존립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꼭 봉석 씨만을 탓할 문제는 아니란 것이다.

우리의 안목을 갖추고, 다시는 저런 요사스런 땡중을 우리 방송에 얼굴 들이지 못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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