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씨 출소와 세상 불안

2020-12-29 19:20:53

by 속선

조두순 씨의 범행과 출소와 관련해서 오래 전부터 세간은 분노와 불안을 표명했다.

나 역시도 그의 구체적인 범행 내용에 많이 놀라고, 파격을 느꼈다.

덩달아, 그의 범행에 비해 형이 다소 가볍다는 논란도 있었고, 출소 후에 저런 자를 활개치게 둬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많았다.


어린 여아를 불구로 만들어 놓은 것에 비해 형이 가볍다는 점은 나 역시 갸우뚱스럽다.

판사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정확한 판결을 할 수 없는 점도 있겠고, 대중 정서와 다른 법의 기준이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으리라 본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범죄자를 잡아 들이는 제도와 조직은 갖춰 있으면서도, 범죄자를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교화하는 제도나 컨텐츠는 거의 지리멸렬하다는 것이다.


법으로 세상의 질서를 잡는 것은 필요하다.

법은 잘 했다고 상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법이 정한 하한선을 넘었을 적에, 법전에 명시된 조항으로 처벌한다는 것 뿐이다.

그래서 '최소한'이라고 하는 것이다.

법은 이 사회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못 하게 하는 거름망일 뿐, 범죄자가 생성되지 못 하도록 막지는 못 한다.

일어 난 범죄에 대해서 단죄하고, 범죄자가 범죄를 행하는 데에 위압감을 주면서 억누를 뿐, 범죄의 씨앗, 범죄 행위자의 생각, 근본을 건드리진 못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 조항대로 조두순 씨를 검거해서 감옥에 가둬 놓을 순 있어도, 출소하자 우리 사회가 다시 불안해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전혀 달라 진 게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조두순 씨는 자신의 근본 잘못이 무엇인 지를 아예 모르고 있다.

자신의 범행에 대한 죄의식이 없다.

출소 당시의 태도, 왜 뒷짐을 지었는가 하면, "나도 형 다 살고 나왔고, 다른 범죄자처럼 처벌 받을 걸 다 받았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는 뜻으로 해석되어 진다.

그저 욕구가 일어 났고, 대상이 눈에 들어 와서 해소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즉, 우리 대중들의 상식 밖을 벗어 난 자다.

정상적인 상식 범주의 범죄자라면, 아무리 자신이 범죄자여도 피해자의 입장을 조금은 생각하게 마련이다. 그 걸 우리가 양심이라고 하지 않나.

"너무 좀 심한가?",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어떻게 애를... 내가 나쁜 놈이지만, 그 건 아니야."

일반적인 범죄자라도 범행 대상에 아이를, 그 것도 그리 참혹하도록 저지른다는 발상 자체가 일어 나지 않는다.


따라서, 조두순 씨를 일반적인 범주의 기준으로 봐서는 매우 위험하다.

정상이 아닌 자에게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크나큰 오류이기 때문이다.

나는 조두순 씨 속을 모르지만, 조두순 씨가 왜 저런 자가 되었는 지는 큰 틀에서 예측할 수 있다.

정상적인 사회 생활 속에 어울리지 못 하는 갭이 점점 벌어 지면서, 혼자 독자적인 진로를 가게 되고, 그러면서 대중들과 점점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고립되어 가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인들은 대인 관계 속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가까운 이들에게 털어 놓고 의사소통을 하면서 해소하지만, 대중들과 멀어 진 이들은 자신 주변에 마찬가지로 대중들과 동떨어진 이들과 교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대중들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풀어 나가려고 한다.


그 정도로 가치관이 뒤틀려 있다는 것은, 대중들로부터 고립된 채 아주 오래 살아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의 한 가운데 중심에 들어 와서 대중들과 잘 교류를 하면, 그런 발상할 정도로 어려움은 생길 수가 없다.

주변에 커넥트된 지인들이 많을 수록, 자신의 어려움을 해소함과 동시에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풍요롭기 때문이다.

단, 그 커넥팅이 많아도 대인관계를 원만히 할 수 있는 공감 능력과 처신이 되지 않으면, 상대방은 불쾌해서 멀어 지거나, 내가 그 상대를 멀리 하게 되고, 그 것이 반복될 수록 커넥팅은 점점 끊여 져서 세상의 중심과 점점 멀어 지는 것이다.

커넥팅이 적다고 해서 꼭 어려워 지는 것도 아니다.

단촐한 커넥팅이라도 그 안에서 자신이 어려움을 해결하거나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소수의 지인이라도 존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그런 존재는 우리는 은사라던가, 인생의 멘토, 반려자, 선배, 여러 가지로 존재한다.


조두순 씨가 처음 태어 날 때부터 저러지 않았다.

애초부터 범죄자가 될 인간은 정해 져 있지 않다.

성장하면서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느냐가 관건에 있는 것이다.

조두순 씨 주변에는 그런 후견인적 존재가 전무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 범주 안으로 길을 들이지 못 하고 이상한 곳으로 새어 나가게 된 것이다.


내가 욕먹을 얘기를 하는 것이겠지만, 어느 누구도 범죄를 원해서 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하면, 돈이 많지 않아도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살 수가 있다.

그런 우선순위의 인생 길을 놔 두고, 혼자 고립된 채로 살다 보면, 정상적인 사고 방식으로 사는 것이 멀고 요원해 보이고, 범죄가 가깝고 달게 느껴 진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정상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그 길을 놔두고 왜 법의 처벌까지 감수하면서 범죄를 저지르나.

조두순 씨는 이미 제 정신이 아니다.

제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제 정신 아닌 채로 제 정신 아닌 짓을 벌인 것이다.


이를 두고 제 아무리 사회에서 조두순을 질타한 들, 조두순 씨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와중에 반감만 더욱 키우는 꼴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정상이 아닌 자한테 더 자극하고 건드리면, 그 안에 있는 응어리는 더욱 괴이한 형태로 폭발하게 될 것이다.

출소 당시 어느 유명 격투기 선수가 공개적으로 위협을 하거나, 이에 편승해서 유명세를 얻어 보려는 유튜브 활동가들이 조두순 씨가 탑승한 관용 차량에 대 놓고 발길질을 하거나, 욕을 하는 것을 다들 보았을 것이다.

이상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그래서는 안 되고, 조용히 놔 둬야 한다.

조두순 씨가 안정감을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자꾸 주변에서 자극하면 또 엉뚱한 곳으로 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조두순 씨는 정상이 아닌, 환자이다.

환자에게는 처방과 약이 필요로 하지, 자꾸 표면만 보고 질타를 하는 것은, 환자 상태를 더 꼬이게 한다.

그 약이란 바로 교화 프로그램, 조두순 씨와 편하게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조두순 씨의 내면을 파악하고, 그가 왜 그런 생각과 결정을 하게 되었는 지의 그 씨앗을 파고 들어야 한다.

왜 조두순 씨가 반성을 못 하는 줄 아나.

여태까지 조두순 씨를 대면한 많은 이들이, 애초부터 너는 범법자고, 그 것은 파렴치 범죄라는 답을 미리 정해 놓고 나서 접근을 하니까 더욱 반발감만 키운 것이 된다.

그 게 왜 잘못인 지에 대한 답을 주려면, 그 게 왜 잘못이 되느냐는 반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반문의 답은 조두순 씨의 깊은 내면을 파고 들어야 가능한데, 아무도 이런 과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적어 본다.


인간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그 당시 그 자가 몰린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 범죄이기 때문이다.

범죄를 안 저지를 수 있으면서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놔 두고, 차선책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말그대로 내가 풀어 나갈 내 앞길에 범죄를 안 저지르고도 풀어 나갈 수 있다면, 왜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내 자신은 처벌을 받아 가면서까지 범죄를 저지르겠는가.

범죄를 안 저지를 수 밖에 없는, 범죄가 최선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범죄 당사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 봐야 풀리는 것이지, 우리가 외부에서 정해 놓은 법의 기준과 정서로만 바라 보면, 처벌과 질타 밖에는 할 게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의 역사는 계속 되고, 범죄자는 계속 생성돼서 출소하고 또 범죄의 샛길로 빠진다.

포괄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 범죄자가 범죄를 벌일 수 밖에 없는 환경 조성, 그가 범죄를 택할 수 밖에 없는 사고 방식 조성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범죄환경 형성 문제이지, 그 당사자만 죄인 딱지를 붙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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