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0 14:49:53
아까, 기성 정치인들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했었는데, 이는, 정치인들만이 비판의 대상은 못 된다.
그 정치인들을 투표로 뽑아서 앉혀 놓은 이들은 누구인가?
국가 수반인 대통령과 입법부의 국회 의원, 각 지방 자치 단체장을 국민의 손으로 투표한다.
썩은 토양에서 병든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우리 국민들의 의식 또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립의 관점에서, 내가 속한 정당과 이념을 지키기 위해, 대립하고 있는 이념의 정당과 세력을 무너 트리기 위해 투표하는 것은, 우리가 계속 내분하는 형국으로 몰아 가고 있는 것이다.
혹은, 지역 연고가 같거나, 사적으로 친하다고 해서, 내가 투기하는 부동산, 주식 등의 이해타산과 부합한다고 해서, 후보자의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이유로, 혹은, 어떤 후보자는 고생을 많이 했으니까, 마치 국민이 포상이나 위로의 개념으로 앉혀서, 남은 여생을 감투와 특혜로 보상받으라는 식으로 뽑기도 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정신 상태들인가.
싸우라고 뽑아 놨으니, 왜 국회의원들이 안 싸우겠으며, 특정 지역 후보가 왜 자신이 당선된 지역만 챙기지 않겠으며, 이해타산을 빌미로 당선된 자는 코 앞의 이해득실만 바라 보지, 어찌 진정성있게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는가.
고생에 대한 보답으로 고위 자리에 앉혀 놔서 온갖 특혜와 비리를 누렸는데, 어찌 이 것이 그들 잘못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정치는 정치가들을 통해서, 국민이 하는 것이지,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위정자들의 전유물이라면, 투표는 할 필요가 뭐가 있으며, 정당과 여론은 무엇 때문에 필요하겠는가 말이다.
우리 국민들이 깨어 나서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 보고, 바르게 투표를 행사하고, 바르게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의 근본은 국민이지, 대통령과 위정자가 아니다.
우리 국민이 바르게 세상을 바라 보고, 올바른 국가관 시민 의식이 형성될 적에 위정자가 됐든, 어떤 이익 집단이 됐던, 특정 이념 세력이 됐던, 거기에 휘둘려서 놀아 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그런 데에 밝지 못 해, 특정 세력들이 교묘한 논리를 주장할 때에 거기에 동조가 되서 다툼에 합류하고, 또는 특정 이득 집단의 논리에 미혹되어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성실하게 이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데의 일선에 서고 말았다.
옳지 않은 논리를 펼치는 자, 진정성 있게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자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과거처럼 계속 혹세무민으로 민중들을 미혹시켜서 득세하고 영화를 누리려는 자를 엄단하고,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공적으로 국민을 섬기는 자를 적극 도와야 한다.
우리 국민이라는 토양이 이토록 병들었는데, 어찌 건강한 정신의 정치인이 배출되기를 바라는가.
우리는 이러한 오류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다 배우면서도, 우리의 주권은 과연 올바르게 행사하였는가, 내 안위만 챙기다가 나라와 지역은 외면한 채, 어찌 되던 관계없이 방치하고 살지는 않았는 지를 돌이켜 봐야 하는 반성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우리의 의무를 다 했는 지를 먼저 자문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 우리 국민이 합심해서 바르게 투표하고 참정했다면, 어찌 엉터리 정치인들이 활개쳐서 나라를 엉망으로 망쳐 놓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국민의 머슴이고 일꾼이라고 하는 자들이, 왜 선거철에만 아첨을 하고, 그 후에는 국민을 벌레 보듯 하며, 권위적으로 돌변하면서 지역과 나라를 자기 멋대로 좌우지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멀뚱하게 그 것을 지켜만 보면서 한탄만 하고 있는 형국인가.
그들만 탓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모습들이고, 우리 국민 중에서 선출된 자들이며, 우리가 뽑아 놓은 자들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치인들이라는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우리 고장과 우리 나라는, 우리가 가꾸고 돌본다는 책임감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우리 지역과 우리 나라를 맡기려는 데에 도둑놈, 협잡꾼을 맡기겠는가, 충직한 자를 맡기겠는가.
당연한 것이다.
우리 국민이 바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질 적에, 거기서 좋은 후보들이 많이 나오고, 우리가 바르게 사리분별을 하고 후보자들의 면면과 속을 낱낱히 파악할 적에, 거기서도 또 좋은 후보를 선출할 수 있는 것이다.
잘난 정치인 뽑아 놓고 나 자신은 무관심한 채, 막연히 알아서 하겠지, 하는 나태한 생각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좌와 우는 없다.
우리 국가와 사회가 하나의 인체라고 한다면, 좌와 우는 우리 인간 스스로가 멋대로 나누어 구분짓는 것이다.
저마다의 역량과 할 수 있는 소질들이 다 다르고, 성격, 계층, 지역, 역할이 다 다르다.
이러한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할 적에, 좌와 우는 구분지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역할과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고, 각자가 사회를 위해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싸울 수 밖에 없다.
내가 왼 편에 서면, 자연히 반대 편에 선 자는 오른 편에 있는 자가 된다.
하지만, 내가 편이 없다면, 상대 또한 편이 없다.
아군, 적군의 구별이 없는 것이다.
정확히는 아군이라고도 하지 못 한다.
적군의 상대적 개념이 아군이기 때문이다.
그럼 무엇일까.
총체적인 사회의 일부이다.
서로의 위치와 역할만 다를 뿐, 우리는 한 나라 안에서의 다른 개체일 뿐이다.
내가 못 하는 역할을 그가 할 수 있고, 그가 못 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다.
상호 보완적이고, 꼭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된다.
그가 재벌이든, 사회 고위층인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 사회에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하고, 그가 적임자이기 때문에 그가 하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내가 사회적 지위가 높다 해서 그렇지 않은 서민을 멸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역할의 차이일 뿐, 고위 공직자도, 기업 재벌도, 전부 서민들의 뒷받침으로 형성된 자리이며, 국민을 위해 일하는 자리라는 것을 상기할 때, 국민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된다.
세대 간의 이념 차이도 마찬가지이다.
젊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라고 한다면, 젊은 이들이 다음 세상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잘 이끌어야 하고, 젊은 이들도 어른 세대를 존중하면서 따르게 된다.
이 때, 대립할 필요가 뭐가 있겠으며, 이념으로 갈라설 이유도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