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대작 사건 무죄 판결 1

2020-12-30 14:57:26

by 속선

조수를 대동하여 대작하게 만들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조영남 씨가 결국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구체적으로 기소가 된 혐의는 이와 같다.

조수에게 그림을 대작하게 하여 완성된 그림에 약간의 덧칠과 서명만 한 후에 고가에 판매하여 구매자들을 기만했다는 것이다.

그림에는 별 관심은 없지만, 음악과 같은 예술의 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관심있게 지켜 봤다.

기사로 나온 내용을 토대로 하면, 언뜻 판단이 서질 않는다.

고작 10만 원의 수고비만 주고 완성된 작품을 사인을 하고 덧칠만 한 후에 천만 원이나 받았다는 것을 보면 심해도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하지만, 조영남 씨가 주장하는 업계 관행이라는 점에서 보면, 한 편으로는 조금 억울할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 사건을 바라 보고 판단해야 할까.


조영남 씨는 애초에 조수를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쓰기는 했지만 본질적으로 자신의 아이디어이므로, 자신의 작품이라고 번복한 적이 있다.

또, 언론에 비춰 지는 모습은 영락없는 전업 화가의 모습이었다.

“앤디 워홀은 조수를 고용했지만,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시간 내서 그림을 그린다.”, 등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였다.

그의 작품을 고가에 구매한 구매자들은, 조영남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여기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조영남 씨의 작품을 구매했는데, 전부 직접 그린 그림이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면 그 것은 명백한 범죄 행위에 해당된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알려진 구매자 중에는 그렇게 물은 구매자는 없는 것으로 보여 진다.

이 점도 법률적으로 쟁점이 되는데, 해외에는 몰라도, 국내에서는 아직 법률적으로 미술품에 대한 고지 의무에 대한 조항이 없기 때문인 듯 하다.

관행이 파다하다 하더라도, 법률적으로 작품에 대한 대작 여부를 고지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이 존재했다면, 명백한 사기죄가 적용될 텐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세부적인 조항이 없어서 법적 다툼이 심화되었다.

조영남 씨가 대작 여부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또 고의적으로 숨겼다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조영남 씨가 대작 여부를 감출 의도가 있었는 지를 파악하는 핵심적인 인물이, 구매자와 중개인 간의 대작 여부를 묻는 대화 내용인데, 이 점에 대한 진술이 없는 고로, 조영남 씨의 기망 의도를 파악할 수는 없다.


대법원은 조영남 씨의 구매자 기망 의도가 이 사건의 핵심으로 세우고, 여러 증언과 정황을 종합한 결과, 기망 의도가 없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조영남 씨의 이러한 배경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으로 보였다.

나 역시도 조영남 씨가 다재다능한 인재이기는 하지만, 예술에 대한 철학이 있거나, 전업 예술가로 보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가 프로페셔널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듯 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조금은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대작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조영남 씨는 예술적인 장사꾼임으로 판명하게 되었다.

관행이 그런 지 어떤 지는 그 업계를 나는 모른다.

하지만, 조수를 쓰는 것이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보다 회화적 기법이 뛰어난 인재가 있다면, 자신의 아이디어를 던져 주고, 대신 그리게 하는 것이 더욱 좋다고 생각을 한다.


나는 미국의 밥 딜런의 앨범을 들으면서, 너무 형편없는 목소리에, 가창력도 보잘 것 없다고 느꼈다.

목소리야 그렇다 쳐도, 어떻게 이런 가창력을 가수라고 할 수 있지, 하는 어이없는 의문이 들었다.

그의 몇몇 곡은 좋다고는 생각해도, 그의 음반은 전혀 듣지 않는다.

만일, 밥 딜런이 가창력이 뛰어난 다른 가수를 고용했다면, 나는 그를 매우 극찬하면서 앨범을 애청했을 지도 모를 일인 것이다.

우리가 구매하는 음반에는 작곡과 연주, 노래에 대한 인물 정보가 나와 있으므로, 지금의 조영남 씨 사태와 같은 문제는 전혀 일어 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무대에서 타인을 쓰는 것이 불가능하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림의 특성 상, 이처럼 조수를 고용해서 대신 그리게 한 후에 사인만 해서 판매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앞으로의 미술 계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가 더 표면화가 될 것이라 보고, 향후에 회화나 다른 조각, 예술품에 대한 작가와 조수 참여 여부도 밝히는 법이 입법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당분간은 지속될 것으로도 보고 있다.

미술계가 대중적인 영역은 아닌 지라, 이 번 사건이 대중들의 관심도가 다소 덜 하기 때문이며, 더군다나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려 줬기 때문에, 향후 얼마 간은 이러한 업계의 관행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구매자 입장에서는 불신스런 의혹은 존재하기에, 언젠가 유사한 사건이 몇 차례 사회를 흔들 정도로 심화가 돼서야 입법 추진이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조영남 씨의 이 번 사건의 영향력은, 미술 업계에서 조수 고용 문제에 대한 환기를 시키는 것에 그칠 뿐이며, 지금까지 암묵적인 관행으로 일관했던 미술 업계에서 조금 더 조수 참여 여부에 대해 투명해 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단 번에 미술 업계가 완전히 투명해 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 번 사건의 본질은, 작가의 무성의한 참여도로 인한 작품의 가치 척도, 작품의 상업적 거래에 대한 윤리적 시각이다.

조수에게 대략적인 아이디어를 던져 준 후, 나머지는 임의대로 그리게 한 것에 대한 것으로 재판을 받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 난 문제였다.

검찰 측에서는 이 관점에 대해 저작권 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았지만, 이 또한 대법원에서 무관한 사안이라며 반려하였다.

기소가 된 쟁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판결과는 무관하게 조영남 씨의 창작에 대한 인식, 저작권 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조영남 씨는 속된 표현으로, “돌린다.” 할 정도로 창작에 대한 수고와 열정, 참여도가 무척 결여된 모습을 보인다.

이는, 공장에서 찍어 내듯 양산하는 식이다.

구매자가 이런 점을 알았더라면, 천만 원에 달하는 값을 선뜻 지불할 수 있었을까?

자신의 집을 십만 원 안팎의 프린트된 작품을 걸 수도 있다.

프린트가 정 꺼려 진다면, 유명 작품을 그대로 카피해서 직접 그리는 작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이 역시도 비싸 봐야 100만 원 이하 선이다.


전업 작가가 직접 창작한 작품이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구매자가 지불하는 가격 안에는 복합적인 요소들로 책정되어 있다.

가장 원초적인 캔버스, 물감 값부터 시작해서 작가의 노동에 대한 시간적 가치, 작품의 예술적 가치, 작가의 명성과 인기도, 희소성에 따라 천차만별로 가격은 달라 지게 된다.

그러한 점들이 납득이 되기 때문에 고가를 주고서라도 작품을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조영남 씨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는 점은 이런 점이다.


조영남 씨가 여태까지 작가로써 보여 준 외적인 모습, 그리고 고가로 책정된 부분들이, 그 동안의 구매자들이 보수적으로 갖고 있던 유명 작가에 대한 이러한 전형적인 이미지로 포장한 것에 대한 의구심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구매자들은 조영남 씨의 내막을 알지 못 한 채, 고가와 조영남 씨의 외적인 이미지만 보고서 자연스레 직접 그런 친작이라 치부하기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쟁점으로 기소가 된 것이나, 결정적인 증언이나 증거가 불충분하여 무죄로 판결하게 되었다.

나는 이 판결에 대해 복잡한 생각이지만, 판결 자체는 맞다고 생각한다.

현재 재판으로 다루는 사건의 핵심적인 쟁점이 사기죄이며, 법률적으로 사기 행각에 걸리는 것인 지, 여러 정황을 미뤘을 때 조영남 씨가 사기 의도가 있었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둘러 싼, 아이디어를 조수에게 부여하여 자신이 사인만 한 행위, 10만 원의 일당을 주고 1000만 원의 폭리를 취한 것은 모두 이 번 사건의 쟁점에서 벗어 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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