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었다면, 왜 그런 상황이 나에게 왔는 지 원인을 찾고 분석해야 한다.
피한다는 것 자체가 싫어서 그런 것이지, 좋아서 피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내가 나도 모르게 그런 상황을 끌어 당기도록 행동한 것은 아닌 지, 그 상황과 사람이 어떤 이유로, 어떤 경과를 거쳐 나에게 왔는 지를 면밀히 연구하고 분석해서 포괄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선책으로 최대한 나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던 지, 아니면, 몸소 그 상황을 수긍하고 한 번 받아 들여 보라.
그래야 그 상황에 대한 자료 거리를 수집해서 내가 만져 볼 수 있는 교재가 된다.
분석하고 이해해야 그 상황이 해결이 되든, 말 그대로 즐기든 지가 가능하다.
내가 이해하지 못 하는 것,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즐길 수는 없는 법이다.
사전에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시간을 거슬러서 올라 가다 보면 얼마든지 다양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충분히 모면할 수 있었다.
악수에 악수, 그 악수에 또 악수를 두다 보니, 내가 도저히 이 상황을 맞지 않으면 안 되게끔 외통길에 몰리는 것이다.
다만, 어떤 갈림길에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는 지, 왜 그 때는 엉뚱한 길로 가게 되면 이렇게 된다는 청사진을 내다 보지 못 했음이라.
욕심에 눈이 멀고, 세상이 보이지 않아서.
자명한 것은 나한테 씨앗이 있음이니.
이 대전제를 이해하고부터 누구 탓을 않게 되고, 나한테 찾기 시작한다.
이유 불문하고 누가 뭐라해도 내가 만든 상황, 내 자업자득, 온전히 다 받아 들인다.
삼켜야 할 쓴 물도, 나에 대한 손가락질도, 올라 오는 후회와 회한도.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외통수 뒷골목에 몰린 자에게 던지는 공허한 한 마디.
그 것은 그저 답을 찾지 못 해 고통받는 이에게 멋드러 져 보이는 말 한 마디로 아픔을 무디게 하는 진통제 한 방일 뿐.
피할 수 없다면 내 안에서 이유와 원인을 찾고, 오답 노트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보지 못 한 그림이 완성되고, 맞추지 못 한 퍼즐이 완성될 때, 비로소 포괄적인 이해가 되고, 다음부터 절대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지 않게 된다.
앞으로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가 아니라, "피할 수 없다면 받아 들이고 다시 시작해라."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