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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속선 Aug 15. 2023

말 목 자른 김유신

방금 '서이초 교사와 체벌 문제'를 쓰면서 잠깐 머리도 식힐 겸,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자주 하는 게임을 열었다.

하도 그 게임을 많이 하다 보니까, 습관적으로 마우스가 간 것이다.

게임이라고 해 봐야, 윈도우에 기본으로 제공하는 '솔리테어' 카드 게임이다.

윈도우 11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자연스레 잔재미로 즐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클릭한 솔리테어 아이콘.

순간, 왠지 이 모습이 옛날 교과서에나 접했던 '말 목 자른 김유신'의 일화가 번뜩 떠 올랐다.


한창 학문과 무예를 수학하던 김유신.

그러다 만난 기생에게 빠져, 학업을 게을리하였고, 어찌나 기생집을 드나 들었던 지, 말이 그 집을 저절로 태워다 주었다던.

기생에 빠져 정신차리지 못 하고 초심을 잃어 버린 자신의 모습에 분을 참지 못 하고 말의 목을 베는데.

사내로써 큰 포부를 가지고 화랑이 되었을 텐데, 얼마나 이렇게 초라하게 자신이 무너지는 지를 깨닫고, 아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단순히 무예를 닦는 몸의 고단함, 학문을 수학해야 지리함 때문에 기생에 빠진 것이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초심을 잃고 정신적으로 무너 지는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수치심이다.


습관적으로 항상 가던 기생집 앞에 멈춰 선 말 한 필.

거기에 비춰 진 자신의 초라한 모습.

사실, 김유신은 말에 화가 나가서가 아니라, 말의 모습을 통해 거울처럼 비춰 진 자신의 목을 친 것이다.

기생도 죄가 없고, 말도 죄가 없다.

단지, 거기에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 하고 빠져 버린 내 자신의 모습을 용서할 수 없었을 뿐.

말은 단지 충직하게 주인의 뜻대로 움직여 줬을 뿐, 말이 뭔 죄가 있겠나.

그 건 김유신 본인도 모를 리 없을 터.


영화나 드라마 속에 종종 나오지 않나.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초라하게 느껴 질 때 큰 소리를 지르며 거울을 깨 버리는.

그런 것과 똑같다.

단지, 그 것이 거울이냐, 말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김유신은 기생에 빠져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 했고, 말의 목을 쳤을 때 조차도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 해 버렸다.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으면, 그 거울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알고 고맙게 여기며 더욱 아낀다.

왜 한결같이 충직한 말의 죽이나.

오히려 주인이 주인 노릇 못 하는 자신의 모습을 탓하며, 짐승일 지라도 말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다시 수학에 정진하면 될 뿐이다.

왜 죄 없는 말을 치나?


기생에 빠졌을 때부터 말의 목을 치는 순간까지 김유신은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 했다.

화랑에 입문한 것도, 나를 즐겁게 해 준 기생도, 한결같이 자신을 발이 되어 준 말도, 다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었고, 단지 내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 해서 내 자업자득이 된 것을, 왜 말에게 화풀이를 하나.


나는 솔리테어를 껐다.

왜냐하면, 오늘은 추가 XP를 주지 않으므로.

나는 솔리테어를 적절히 즐기면서 휴식도 취하고, 게임에 집중하므로써 복잡한 머리도 조금 정리를 시킨다.

이렇게 수학적 사고력을 기르게 해 주고, 어려운 난이도를 깨면 성취감도 느끼게 해 주는 게임이 또 어디있나?

광고가 조금 있긴 하지만.


게임이 됐든, 기생이 됐든, 내가 내 자신을 컨트롤하면서 적절히 즐기다가, 나는 다시 내 위치로 돌아 와서 또 내 길을 가면 된다.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 하는 사람은 한 군데에 빠져 버리고 만다.

비록, 죄없는 말의 머리를 쳤으나, 자신을 다잡고 심기일전하여 명장으로 승화하고 말았으니, 그래도 얼마나 대단한 분인가.


김유신의 일화를 죄 없는 말을 친 해프닝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겉만 보는 것에 그치고 만다.

그 안의 깊은 뜻을 이해해야 한다.

김유신이 흩어 진 자신의 초심을 다잡고 결국은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한 위대한 기상을 보아야 한다.

오늘 날, 역경과 사회의 벽에 좌절하는 숱한 현대인들.

넘어 지고 쓰러 져도 다시 일어 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고 쉽사리 그 자리서 주저 앉고 정신을 놓는 이들이 있다.

이런 이들을 위해 김유신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지리한 생명력으로 우리 곁에 살아 있는 것이다.


김유신은 말의 목을 치지 않았다.

초심을 잃고 방황하는 초라한 모습의 자신,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 하고 겉잡을 수 없이 무너 지는 자신의 목을 친 것이다.

기생집 앞에 당도한 말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비춰 주는 거울이자, 하나의 상징일 뿐.

김유신은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그 놈의 목을 쳤다.

그 것은, 그가 위대한 신라의 명장이자 자신을 극복한 승리자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오늘 날, 김유신처럼 방황하고 주저 앉은 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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