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0 15:04:40
지난 늦봄 즈음에 청와대 앞 길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용건은, 연풍문 안의 농협에서 일을 보기 위해서였다.
당연한 것이지만, 그 거리는 대통령이 집무를 보는 청와대와 바로 인접한 거리이기 때문에, 경비가 아주 엄중하다.
못 지나 가는 것은 아니지만, 경호 근무자들의 따가운 시선과 심문에 응해야 한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그 거리를 종종 다녔다.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걷고 싶은 거리도 아닐 뿐더러, 농협 방문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 말렵부터 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손에 꼽을 정도 밖에 다닌 적이 없다.
최근의 마지막 방문이 문제였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을 거라 생각했으나, 그 때는 달랐다.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초입의 근무자한테 용건을 말하고 지나 갔고, 심문은 그 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원 부근의 횡단보도였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또 묻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을 뿐더러, 이상하다 느꼈다.
왜냐하면, 초입의 근무자한테 용건을 얘기하면, 내가 지나 가는 경로 동안의 근무자에게 내 인상착의와 용건을 공유한다.
경계의 의미가 있겠지만, 그러한 고로 두 번째부터는 묻지를 않았다.
도리어, 간단히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어차피 의심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이렇게 인사를 건네면 참으로 기분이 좋다.
어쨌거나, 대답을 하고 연풍문 앞의 횡단보도 앞에 도착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행선지를 묻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양한 것을 트집으로 캐묻기 시작한 것이었다.
연풍문 농협에 일보러 왔다고 했으나, 왜 이 곳 농협에 일보러 왔느냐는 것이다.
슬슬 언짢아 졌다.
그 곳이 청와대 임직원들이 이용하는 것인데, 왜 꼭 이 곳 농협을 방문해야 하냐는 반문이었다.
내가 되받아 쳤다. “그냥 왔어요. 여기 농협 이용하지 말란 법 있습니까?”, 엄연히 청와대 앞길은 국민 누구나가 걸을 수 있는 길이었고, 춘추관 인근에는 시민 개방 공원까지 있다.
더군다나,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때에 청와대 앞길을 대대적으로 개방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또, 그 안의 농협은 임직원이 주로 이용하는 것이지, 전용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청와대 직원이 아닌 나는 어떻게 그 지점에 계좌를 개설했단 말인가.
내가 연풍문 앞까지 왔다는 것은, 초입부터 여러 경호원들을 통과한 것이다.
그런데도, 당신이 여기에 볼 일이 없지 않느냐는 식이었다.
나는 입을 닫고, 내 가방 속의 통장을 보여 줬다.
그 통장에는 엄연히 계좌 발행점이 ‘청와대 지점’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내가 여기서 계좌 만들고 업무 봤는데, 오면 안 됩니까?”, 그랬더니, 다른 경호원을 시켜서 농협에 확인해 보라고 지시를 했다.
내가 화가 나서 따졌다. “박근헤 정부 때부터 제가 이 길을 지나 다녔는데, 그 때도 저한테 이렇게는 안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청와대 앞길을 개방한다고 하시더나, 어째 더 심하네요.”
“요새 상황이 조금 그렇다 보니…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물론, 그 때가 4.15 총선을 보름인가 앞둔 시기이기도 했다.
행여나, 정치 선동이나 말썽을 부릴 지도 모른다고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스무고개하 듯이 비 과학적으로 따지고 드는 것이 불쾌했다.
그냥, 확실하게 가방 검사를 하거나, 초장부터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걸을 수 있는 거리인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공개해서도 안 되는 거리이다.
나라에 불만 있는 자들이 어디 한 둘인가.
그렇게 개방을 시키다 보면, 청와대 앞길은 데모꾼, 선동자들 천지판이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검문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 것을 불쾌해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거리를 지나 갈 때마다 검문에 불쾌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쩔 때는 가방의 소지품 검사도 하자고 한 적도 있는데, 전혀 기분나쁘지 않았다.
도리어, 의심을 불식시키고 편하게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헌데, 그 때는 통과할 때도 심문을 하더니, 연풍문 앞에서는 아예 잠재적 문제아 취급을 당한 듯 해서 몹시 불쾌했다.
“가방 한 번 보시겠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점들을 설명하면서 불만을 얘기했다.
내가 들어 오면 안 되었다면, 초입부터 제지를 시켜야 되지, 그럼 왜 통과를 시켰는 지에 대해서도 따졌고, 몇 년 전부터 이용하던 농협이라는 점도 설명했다.
대화 중에, 계좌를 개설하던 당시에는 서울 시민이었고, 지금은 내가 지방에서 왔다고 했는데, 심지어, 여기는 왜 왔냐고 되물을 때, 제법 화가 났다.
“지방 사는 이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여기 오면 안 됩니까?”, 무슨 심문이 이런 식인 지.
내가 행여나 정치적 피켓을 들고 소란을 일으키거나, 혹시 모를 폭발물이나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면, 말로 묻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소지품 검사와 신분증 검사를 철저히 해야 맞는 것이다.
무사 통과하는 평범한 시민의 말처럼 작정하고 거짓말을 한다면, 어느 누가 안 들여다 보낼 수 있겠으며, 말로는 그냥 지나 간다고 하면서도, 인상착의나 행동거지가 의심스러울 때는 어찌 물리적인 검사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그 것이 불쾌한 것이다.
나한테 꼬치꼬치 물을 정도면, 상당히 내가 의심스럽다는 것인데, 몇 마디 문답에도 불안하다면, 아예 소지품과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라는 것이다.
내가 먼저 가방을 보여 줬고, 내가 먼저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표면적인 의심에서 그치면서 멀쩡한 국민을 이런 식으로 불쾌감 주는 것이 싫었다.
거기 근무자의 일은, 보내도 될 자들은 통과시키고, 들여 보내서는 안 되는 이들은 거르는 것이 순기능이다.
하지만, 이렇게 검문에 응하였는데도 통과시키지 않고 억울하게 만드는 것은 역기능인 것이다.
이런 저런 실랑이와 신분증 검사가 끝난 후에, 비로소 통과시켜 줬다.
그 때도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그러지 말고, 여기 중 한 분이 저랑 같이 가서 제 옆에 계시죠.”
겨우 농협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자, 그 근무자인 지, 다른 근무자인 지 기억은 안 나는데, 전부 같은 복장에 선 글라스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였다.
어쨌든, 그 당시 상황에 개입했던 근무자 중에 한 사람은 틀림없었다.
그 근무자가 나한테 말을 걸었다.
“어떻게, 일은 잘 보셨습니까.”
“제가 아까도 말씀을 드리지만, 심문은 응당히 응하는 것이 맞지만, 이런 방식은 더 개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여태까지 초입에 통과를 하면, 다른 근무자들은 또 심문을 하는 것이 아닌, 도리어 인사를 가볍게 건넸습니다. 제가 신분증을 제시해 드렸지만, 행여나 제가 데모나 시위한 전과가 있었습니까?”
약간의 큰 소리 좀 쳤다.
그 근무자가 나를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 지, 그래도 혹시 모를 돌발 행동을 할까, 붙어 있었는 지를 모르겠지만, 어쨌든 처음보다는 의심을 거두고 배웅을 했다.
모처럼 서울을 나왔는데, 그 일로 인해 울컥하기도 했고,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빠 졌다.
인근 주민이라고 일방 통보하고 획 지나 가는 이들한테는 무심하니 붙잡지도 않았는데, 심문에 응한 나에 대해서는 대조적이란 생각이 더 울컥하게 만들었다.
물론, 상황은 다르다.
주민은 그냥 그 길을 지나갈 뿐이지만, 나는 애초부터 연풍문을 간다고 했으니까.
오죽 불쾌했으면, 청와대 신문고에 청원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내 작은 생각 때문에 도리어 경호 근무자들에게 불이익이나, 경호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가, 또, 여러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생각을 접었다.
또, 내 청원을 들어 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여러 생각 끝에 정리한 것이, 그 경비원들을 탓할 수 만은 없었다.
나는 여태까지의 검문 수준이 앞으로 계속될 거란 생각을 고정하고 있었고, 그런 기대를 안고서 갔다.
하지만, 근무자의 말이 옳다.
상황에 따라 검문은 강화되고, 완화되기도 하는 것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세상의 큰 흐름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또, 내 행색이 청와대 내 은행을 이용할 것 같은, 정장 차림의 복장과는 거리가 있지 않겠는가.
내가 번듯하게 양장 차림을 하고, 신문사 기자라던가, 청와대 출입을 하는 관계자였다면, 나한테 이러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그 근무자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차림을 하고 간 것 역시 그런 대접을 받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비록, 그 당시의 검문이 다소 과다하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모르고 접근한 내 불찰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업자득이라는 결론이 어렴풋하게나마 들었다.
앞으로, 꼭 중요한 일이 아니면 갈 일은 없겠지만, 내가 치열하게 살아 가는 현대인들의 시대상을 모른 채, 너무 안이한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