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친구를 직원으로 고용했을 때의 문제점

2020-12-30 15:02:09

by 속선

어느 낡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TV에서 어떤 방송이 나오고 있었는가 하면, 친한 친구를 식당에 고용해서 서빙을 시켰는데, 일이 서툴러서 핀잔을 주게 되었는데, 그 걸로 서로 관계가 소원해 지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서로가 돈독한 관계어서 어쩌다가 서로 멀어 지게 되었는 지를 고심하는데, 절교할 거란 예상과 반대로 서로 같이 하기로 한다는 결말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 할 것이며, 방송 상에서의 화해였을 뿐이라고 단언하다.

왜냐하면, 둘 사이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에 접근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둘이 서로 화해했다 하더라도, 불화의 근본을 그대로 둔 채로 봉합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둘이 다시 그 상황 그대로 간다면, 얼마 가지 못 해 또 다시 싸우게 될 것은 자명해 보였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과연, 친구를 직원으로 둔다거나, 원만한 동업 관계는 절대 불가한 것일까?

나는 그 원인이 서로를 잘 모르는 데서 기인했다고 본다.

막연하게 들리겠지만,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둘은 서로를 깊이있게 알지 못 했다.

고용자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고, 서빙을 했던 이는 서빙이 처음인데다,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둘은 시를 짓는 문학을 좋아 한다는 공통점으로 친해 졌는데, 주방에서 일하는 이는 문학도 좋고, 낭만도 좋지만, 일할 때는 잠시 잊고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의였지만, 서빙 일하는 이는 애초에 그런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일하는 거라면 친한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는 게 좋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던 듯 했다.

서빙은 엉망이었고, 끝내 참지 못 한 주방 친구는 해고를 운운하면서 언성을 높이게 되었다.

서빙하는 친구한테는 큰 상처가 되었다.

막역한 친구한테서 이리도 심한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둘 다 문제가 있다.

피상적으로만 보게 된다면 서빙하는 친구의 탓이라고 보기 십상이다.

일하는 곳에서는 자신의 기호는 잊고, 일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정신 상태를 갖추지 못 한 친구를 고용한 것은 주방 친구였다.

만일, 그 친구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 지를 더 깊이있게 파악하고, 이와 같은 사태까지 벌어질 것을 사전에 어느 정도 알았다면, 그런 친구를 고용해서 서빙을 시키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친구가 먼저 자원한다고 하더라도 거절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을 한 친구의 책임이 더 크다.


서빙을 한 친구 또한 고용한 친구만큼은 아니더라도 잘못이 분명히 있다.

스스로가 어떤 유형의 인물인 지를, 고용 제의를 한 친구가 어떤 사고방식인 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일을 할 때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

어물쩡 시간 버티다 돈 받으면 되는 곳이 아닌 곳이란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일터가 어떤 곳인 지를 몰랐다거나,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이니까 어느 정도는 수월하리라 생각한 것은 아닌 지 되짚어 봐야 한다.

만일, 고용을 제의한 친구 또한 설령해도 된다는 주의였다면, 핀잔을 주지는 않았을 텐데, 손님의 불편이나 식당의 운영과는 별개로 보더라도 말이다.

이는 왜 벌어 진 일인가.

서로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서로를 몰랐다.

각자의 보는 관점에서 만사형통이었지, 서로 각자 다른 관념으로 일터를 접근하고 있다. 서로를 파악하는 것도, 서로가 접한 환경에서 보여 지는 서로의 피상적인 모습이었을 뿐, 여러 환경을 같이 겪으면서 서로의 다양한 모습을 파악한 것이 아니었다. 그 단편만 보고서 서로를 안다고 미리 오판했던 것이다. 만일, 서로를 정확하게 알았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친한 정도를 넘어 우정을 나누는 벗에게 해고한다는 으름장까지 놓을 수 있겠으며, 그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능한 상태에서 일을 하겠다고 덥석 덤빌 수 있겠는가. 서로를 파악했다면,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는 제대로 된 각오를 가지고 임하는 일꾼을 고용하지, 일에 대한 관념이 희박한 친구에게 제의하지는 않는다. 그저, 서로 좋은 걸 같이 공유하는 친구 관계의 선까지만 유지할 뿐이다. 서빙을 하는 친구 또한 마찬가지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를 위해 꼭 일을 해서 도움을 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가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 그가 어떻게 하면 더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궁리를 하면서 응원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알지 않을까. 그래서, 친구가 일하자는 제의를 하리라는 상상도 하지 못 하고, 설령 제의를 한다 하더라도 한사코 거절하는 것은 자명하고도 자명하다.


나 역시도 과거에 장사를 할 적에 이런 일을 고스란히 겪은 적이 있었다.

장사가 내리막길 즈음, 나는 고뇌를 했다.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여러 설계를 하고,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 지에 대해 말이다.

이문을 따지기로 한다면, 나는 누군가를 고용해서 월급을 줄 게 아니라, 내가 그 자리에 앉아서 가게를 봐야 타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 가게가 싫어 졌고, 건강을 비롯해서 내 자신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비록, 많은 지출이 나가더라도, 아르바이트처럼 들쑥날쑥하지 않고 믿고 맡길 수 있는 친구에게 비싼 월급을 주고 맡기자는 심산으로 친구에게 가게를 맡겼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방송과 같았다.


격렬하게 싸우게 되었고, 결국 나는 폐업을 몇 달 남기고 그 친구를 내가 자르게 되었다.

내가 한 선택에 후회는 없었고, 그 친구가 어느 정도 일에 대해 서투를 것이라는 것도 감안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서로의 신용이 흔들리는 일에 걸린다던가, 친구라 하더라도 일에 관해서는 각자가 상식적으로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선을 두고, 추하게 싸우게 되는 등의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그 친구의 깊이를 몰랐고, 그 친구를 고용했을 겪게 될 상황의 선을 몰랐던 것이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저런 것이 어떻게 친구일까 싶을 정도로 추하게 굴었지만, 그 친구를 고용하고 제의한 것도 나였기에, 그 친구를 탓할 문제가 없고, 그러기에 편해 질 수 있었다.

반드시 친구 관계라고 해서 한 일터에서 일한다던가, 동업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것은 지금처럼 서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속깊게 파악하고, 서로 맞출 수 있는 부분은 맞추는 노력을 하다가 예정대로 갈라 설 준비까지 완료되었다면 말이다.

안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친구 동업 관계에서의 문제점은, 친한 관계에서 파악한 친구의 모습은, 서로가 이해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격이 없이 지낼 때의 모습이지, 이해 관계로 서로를 엮고 실전에서 부딪히는 모습을 파악한 것이 없는 상태에서 돌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일할 때는 안 그랬는데, 같이 일하고 나서 변했다는 식의 계산 착오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사회에 돌입해야 하고, 그 안에서 많은 타인들을 만나면서 살아 간다.

그 안에는 그냥 가까이서 스쳐 지나 가는 타인도 있고, 직장 동료, 친구, 연인, 부부, 많은 관계를 이루어 나간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인간 관계의 원리를 모르고 살아 간다.

그 것은, 서로를 파악하는 만큼의 거리를 두고서 관계를 해야 하며, 서로를 아는 만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다.

나는 무심히 들어 간 식당에서 무심히 나오는 방송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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