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각, 혜민한테 석지 마! 둘 다 땡중뿐이다.

일체 일체 일체! (2020-12-30 15:10:40)

by 속선

얼마 전 혜민 사태에 대해 처음 수면 위로 격론화시킨 자가 승려 현각이다.

혜민에 대해 연예인이라고 폭로한 것에 대해, 나는 그가 정곡을 제대로 찔렀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그간 혜민이 보여 준 행태에 뭔가 석연치 않게 느끼고 있던 찰나, 그 불편하고 어색한 파장을 깨고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것은 아주 잘 한 일이다.

하지만, 그 후에 현각이 혜민의 전화를 받고 바로 우호적인 태도로 돌변한 것에 대해 실망과 함께 그 속내가 참으로 궁금했다.

서양인이면서도 우리네처럼 원래 우는 모습에, 정에 약한 건 지, 사리분별을 못 하고 또 가면극에 속는 것인 지 말이다.

어제 자 기사를 통해 그 해명을 비로소 듣게 되었는데, 참으로 가관이었다.


부모의 마음이 어쩌구, 부처의 정신이 어쩌구 그랬던 것 같은데.

뭔가 자신이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다.

현각이 본 연예인의 모습은 현각만이 간파한 것이 아니다.

우리 대중들도 이미 벌써부터 혜민을 보며 불편을 느꼈지만, 별 사고 안 치고 조용히 방송 활동하니까 묵과해 준 것이 있었단 말이다.

다만, 현각이 어느 정도 알려 진 승려 정도 되다 보니까, 그런 파격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서 우리 사회에 파장을 준 것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자신이 종교계에 물들다 보니까, 뭔가 대단한 정신 경지를 이룬 것으로 착각한다.

전혀 그렇지 않다.


첫 째, 불교계의 자세한 내막을 모르지만, 그가 명문 출신의 외국인 승려로서, 자신이 간판으로 활용된 데에 불만을 표출하고 떠난 적이 있다.

그가 비판한 불교의 실정, 수행과 참선을 멀리 하고 기복에만 치중한다는 비판도 충분히 옳은 소리를 했다.

문제는, 자신도 거기서 참다운 공부를 한 것인 지 의문이 든다.

현각이 사판승도 아닐 테고, 그렇다면 이판승으로 성장하기 위해 상당히 좋은 여건을 누린 것으로 알고 있다.

정말 공부를 제대로 했다면, 그런 불교 내의 부조리에 대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위상 정도는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든 크든 말이다.

아무리 불합리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내 뜻을 받아 주고 포용한 것은 불교 단체임을 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어떤 유명 고승을 은사로 두기도 했다는데, 아무나 그런 고승을 가까이 두고 공부하지 못 한다.

아무래도, 그가 자신 앞에 놓인 좋은 길을 놔 두고 출가라는 어려운 결심을 할 정도이니, 제법 좋게 본 모양이다.

그 안에서 이토록 수행하기 좋은 조건을 누려 놓고선, 참다운 수행을 하지는 못 할 망정, 집 안 사정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못 하다.

수행을 바르게 했다면, 사찰 내의 문제점에 대해 파악을 넘어,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는 방도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수행이 안 되었기 때문에 그 해결책에 도달할 수 없었고, 자신도 해결 안 되기 때문에 앉아서 집 안 비난만 실컷 하고 떠났다.

불교 계가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 안의 인프라를 누려 놓고서도 내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죄송하게 생각하고 조용히 떠났어야 했다.


그가 정말 참 수행이 제대로 됐다면, 고승 반열 내지는, 입문 승려나 대중, 신도들을 위해 좋은 활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찰 입장에서는 현각이 한 자리 차지하면서 유지비를 축내고 있는데, 어떻게 활용을 하긴 해야겠고, 가장 가치있게 활용하는 방안이, 그나마 현각이 가진 특이한 이력이 쓸 모가 있어서 그리 한 것으로 보인다.

현각이 수행이 많이 됐다면, 어찌 간판 정도로 활용하고 말 것인가.

법륜 스님 못지 않은 스타 승려로서 대중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을 것인데 말이다.

그 것도 모르고, 자기를 받아 준 불교 계를 비난할 정도로 공부가 안 돼 있다.


둘 째는, 혜민과 통화를 통해 혜민이 뉘우쳐서 용서한 것처럼 해명을 했다는데, 가만히 보자.

그는 실체를 모른다.

혜민의 속을 모르고, 혜민의 정체성을 모른다.

눈이 뜨이지 않았다.

흔한 속세 대중보다 더 인간을 모른다는 것이다.


혜민은 이미 수행에 대한 근기가 깨진 자이다.

정신이 살아 있는 제대로 된 사찰이었다면, 혜민은 진즉에 몇 번이고 파계되고도 남았다.

그래서 내가 그를 스님 호칭을 하지도 않는 것이고, 혜민이란 표현도 그나마 우리 대중들한테 익숙하고 잘 알려 져서 하는 것이지, 이미 나는 그를 승려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데, 어찌 법명을 불러 준단 말인가.

엄연히는 주봉석 씨라 해야 맞는 것이다.

그가 초심으로 불가에 입문을 했을 지언정, 그 초심은 이미 속세의 단 맛을 많이 봐서 흐물해 지고 말았다.

수행의 치열함과 즐거움과는 점점 멀어 지고, 자꾸 속세에 노는 생각이 아른 거린다.

자기 몸뚱아리가 사찰 안에 있다고 해서 중이 아니고, 중복을 입었다고 중이 아니며, 불경 몇 자락 외고 참선했다고 중이 아니다.

내가 처음 불가에 입문한 초심을 망각하지 않고 잘 간직하며 살아 간다면, 속세에 사복을 입고 술, 고기를 먹어도 중이다.

그 초심이 없다면, 제 아무리 목탁을 두드리고 독경한다고 해도 중 흉내를 내는 것이지, 그 건 중이 아니다.

그런데, 승려의 기준을 외형적인 모습에만 두다 보니까, 자신은 승적이 있고 승복을 입고, 참선하는 승려랜다.


방송을 통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비난을 받고 내 놓은 해명에, "죄송하다."만 있지, 대중들이 하는 비판에 대해 정통으로 깊이를 다루는 내용의 진정성있는 해명과 사과를 하지 못 했다.

역시 공부가 전혀 안 돼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 것은 대중들 비난에 그냥 불길을 잠재우고자 굴복한 것에 불과하다.

어차피, 적당히 욕먹고 잠적하다 시간 지나면 되고, 방송 활동은 못 하더라도 다른 수익 기반은 아직 여전한데, 아쉬울 게 그다지 없다.

그가 당장의 방송 활동만 중지하지, 지금 그의 SNS와 사이트는 여전하다.

정말 참회한다면, 사이트와 SNS 마저도 활동 정지 처리를 했어야 맞는 것이다.

수행도 제대로 안 된 자가 사회 물을 흐렸고, 그럼 다시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려면, 다시 수행을 해야 하고, 수행에 집중하려면 방송도 모자라 인터넷 활동도 중지 처리를 했어야 한다.

그냥 잘 나간답시고 나도 모르고 악세레다를 너무 밟다가 전봇대 박은 것 뿐이다.

다음 복귀할 때는 스리슬쩍 조심스레 얼굴 내밀다가, 그 때부터는 다시 악세레다 살살 밟으면 된다.


혜민이 현각에게 전화를 한 것은, 그냥 아프다고 징징대는 것이지, 그는 진정한 참회가 무엇인 지도 모른다.

그냥 봐 달라고 전화한 거다.

죄송한 척한 것을, 정말 참회했다고 착각하고, 그 것도 모자라, 자신이 무슨 자비로운 성자라도 된 것 마냥, 부모의 마음, 부처의 자비로 용서를 했댄다.

정말 현각이 수행이 된 자라면, 그 전화마저도 호통일 칠 수 있어야 한다.

누굴 속이려고.

그리고, 진정 그가 바른 길로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소리지만, 참다운 길을 제시해야 한다.

이미 수행 근기는 깨졌으니까, 차라리 연예인할 거면 승복은 벗던가.

아직 초심의 불길이 조금이나마 살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속세와 거리를 두면서 참답게 다시 도전해 보던가.

현각도 그런 참 수행을 못 하다 보니까, 이런 죽비가 안 나오는 것이다.


서로 끼리끼리 참 잘들 놀고 있다.

우리 속세 범부들도 그런 꼴값은 떨기 힘든데, 가히 경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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