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속선의 삶

마지막 작별인사는 꿈결에서

by 속선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얼마 전, 수년을 키워 왔던 고양이 한 마리 보내고 묻어 주었다.

아이가 요사이 급작스럽게 건강이 악화되었고, 결국 긴 투병 끝에 보내 주게 되었다.

그 것도 벌써 열흘인지 보름인지가 되어 간다.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 가지만, 또 그럴 수 밖에도 없지만.


그냥 그렇게, 평생 가슴에 녀석을 묻고 살아 가려는 삶의 어느 하루.

낮더위가 아직 내 몸에 가시지 않아, 쉬이 잠이 들지 않는 오늘 새벽이었다.

침대에서 쇼파로, 쇼파에서 다시 침대로, 이리저리 들락하면서 잠에 들려고 안달이 났다.

날도 선선해 졌겠다, 이럴 바에 다른 활동을 하면서 새벽을 보내기로 하였다.

다음 삶의 구상도 하고, 인터넷 쇼핑도 하고 하면서 동이 터 올 무렵에 잠이 와서 잠이 들었다.

그 잠결이 아이와 작별인사를 하는 꿈으로 들어 가는 잠이 될 줄 모른 채.


배경은 내가 모르는 집이었다.

단독인지, 다세대주택인지의 집 밖이었는데, 대리석으로 된 장식물의 계단이랄까, 전형적인 양옥주택이었다.

그 계단 부근에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모습은 정상 체중일 때의 약간 살이 오른 통통한 모습이었으나, 누가 봐도 많이 아픈 상태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외관 상 안 좋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아이는 반갑다고 울음소리를 내면서 나에게 다가와서 내 곁을 맴돌았다.

나 역시도 너무 반가웠고, 그동안 곁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 한 게 너무 미안해서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쓰다듬어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냐, 얼마든지 너를 만져 주마."하는 식으로.


꿈은 아주 잠깐이었다.

반가운 심정도 잠시, 이내 꿈은 흐릿해 지면서 이 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 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정신이 들면서 잠이 깼다.


꿈이다.

아이는 내가 진즉에 산에 묻어 주었고, 그렇게 자연의 품에 안겼음을 나는 안다.

너무 감사하다.

이렇게라도 작별인사를 하게 해 줘서.

비록 아픈 모습이지만, 그래도 나를 웃는 낯으로 맞이하게 해 줘서.

내가 그토록 무관심하고, 때로는 모질게 굴었어도 나를 용서해 줘서.

아이 마지막 임종의 순간은 곁을 지키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작별인사를 하게 되네.


그냥 새삼스럽게 불쑥 꾸어지는 꿈이 아니다.

분명, 못 다한 작별인사를 시켜 주는 것이다.


나는 안다.

이 것이 '용서'라는 걸.

이 것이 '안배'라는 걸.

그리고, 이 것이 '축복'이라는 걸.


아이를 처음 만날 때부터, 마지막 작별의 순간까지 나는 자연의 축복을 받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이를 만날 수도 없거니와, 꿈결에서까지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겠나.

여지껏 그 걸 모르고 산 나만 바보였고, 그 것을 하찮게 여긴 나는 죄인이었음을.

이 깨달음이 아이가 남겨 주고 간 마지막 선물이었다.


당분간 비소식이 있단다.

또, 이제는 어느 정도 뒷정리도 마무리되고, 비로소 안정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비가 그치면, 조만간 다시 산을 갈 요량이다.

자연에 대한 감사의 인사와, 아울러 내 자신의 못남을 고하는 용서를 구하고자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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