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길 초입이었다.
나는 무덤덤하게 걷고 있는데, 한 60살 전후의 아저씨가 나무 한 그루에 멈춰 있었고, 무심히 지나 가려던 나에게 말을 건다.
그 아저씨는 처음 볼 때부터 쭈그려 앉아, 나무 밑둥에 시선이 가 있었다.
나는 아저씨가 거기서 뭘 하는지 몰랐고, 밑둥을 골똘히 보길래, 웬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나 싶었다.
"고양이가 여기 안에 들어가 있네."
과연 나무 밑둥에 썩어서 그런 것인지, 다람쥐 등에 의해 파였는지, 작은 동물들이 드나들 수 있는 빈 공간이 있었고, 거기서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꺼내야 되지 않을까요?"
"어미 고양이를 못 찾으면 어떻게 하지?"
"우선 꺼내야 될 것 같은데요. 찾든 못 찾든 우선 나와서 적응부터 해야 하니까요."
그 아저씨는 나무 밑 공간의 고양이 때문에 어찌할까를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고, 마침 지나가던 나에게 말을 건 것이다.
"꺼내 봐요. 난 물릴까봐 못 꺼내겠네."
고양이를 다뤄본 나는 아기고양이가 물어 봤자임을 알기에, 주저없이 나무 밑둥의 구멍에 손을 넣었다.
협소한 공간인 데다 아이가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잠시 애 좀 먹었지만, 새끼 고양이가 워낙 작고 유연한 탓에 꺼낼 수 있었다.
몸집 큰 성인의 한 주먹 가량 되는 새끼 고양이는, 바닥에 내려 놓자, 이내 날쌘 다람쥐 마냥 얼른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야아, 잘 달리네~"
"얘가 사람들 보고 놀라서 들어 갔을 수 있고, 어쨌든 고양이는 숨기를 좋아 하니까요."
다행히 고양이는 딱히 다치거나 아픈 곳 없이 건강해 보였다.
그렇게 몇 마디 주고 받으면서 아저씨를 앞질러 등산길을 재촉했다.
신기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뭇 사람들이 보기에, 아기 고양이 꺼내 준 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하겠지만, 누구나 살면서 고양이나 어떤 동물이든 한 번 쯤은 구조해 주기 마련이라고.
그러나, 나에게는 이 해프닝이 어떤 운명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내가 키우던 고양이를 산에 묻어 주려고 오르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아저씨가, 그 고양이가 구멍에 빠져 있는 나무 앞에 서 있을 줄 몰랐고, 아저씨가 그냥 지나치려는 나에게 말을 걸 줄 몰랐다.
게다가, 그 아저씨는 내가 맨 가방 속에 키우던 고양이의 몸뚱아리가 담겨져 있는 줄 알 리 없다.
나는 그래서 고양이를 꺼내 주면서 참으로 묘하디 묘한 감정에 휩싸인 것이다.
왜 하필 그 시점에, 그 자리에서, 왜 하필 고양이를 묻어 주기 위해 산에 오르려는 나에게 말을 건 것일까?
나는 고양이가 명이 다하기 전, 고양이가 한창 아플 적에 매일같이 하늘에 기도를 하였다.
이렇게 고통을 받을 바에는 제발 편하게 숨을 거두어 달라고.
그 것이 결국 오늘이었고, 참 바보같게도 아이의 임종은 곁에서 지켜 주리라는 다짐 마저도 지키지 못 하였다.
아이가 정확히 언제 숨을 거두리라는 예측까지는 분명 어려운 일이긴 했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참 죄스럽다.
사람들이 믿건 안 믿건, 나는 특정 종교를 신앙하지 않지만, 그래도 기도를 하는 사람이다.
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내가 어찌하지 못 하는 일은 기도를 한다.
나는 요사이 고양이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자주 기도를 했고, 결국 오늘 오전에 고양이의 명이 다한 것을 확인하고, 산에 묻어 주리라는 기도를 올리고 집 밖을 나오던 찰나였다.
집에서 산까지 약 1시간이 안 되었는데, 글쎄, 그 사이 정말 어떤 나의 기도를 듣고 하늘이 감응한 것일까?
내가 등산로 초입에서 그 아저씨를 우연히 만나 새끼 고양이를 꺼내 준 것은, 마치 내가 고양이에게 지은 죄를 회개할 기회를 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마치 나를 용서하려는 것처럼, 내 죄책감을 덜게 해주려는 것처럼, 그 아저씨와 고양이를 만나게 한 것만 같았다.
정말, 그 아저씨와 나무 밑둥에 갇힌 고양이를 만난 것은 하늘의 안배였을까?
정말, 하늘은 내 기도를 들어 주었던 것이었을까?
"한 마리의 고양이를 힘들게 한 죄를, 한 마리의 고양이를 살리면서 갚으라"는 듯이.
눈물로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