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서울 얘기를 몇 토막 하게 될 것 같다.
기억나는 대로 서울 얘기를 적어 보고자 한다.
그 중에서 '종로'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은, 불현듯 종로의 어느 편의점 생각이 나서이다.
그 편의점의 특이점이라 할 것 같으면, 종로 시내에 있는 CU였는데, 매장 정문 벽에 황동판으로 '4000호점'이란 명패가 기억에 남아서였다.
언제 그 편의점이 사라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종로를 떠난 후에도 지속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편의점을 자주 이용하지 않았고, 나는 멀더라도 큰 GS25가 물건이 다양해서 자주 가긴 했지만서도.
아무튼, 상징적인 4000호점 CU가 사라진 것이 아쉬움이 남는다.
4000호점이란 상징성 때문에, 그리고 자리가 너무 좋아서 오래 지속될 줄 알았는데, 왜 폐점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카카오맵 로드 뷰로는 아직도 2015년에도 그 명패와 함께 CU의 당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종로에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장사를 했었다.
순전히 부모님 돈으로 권리금을 주고 가게를 인수 받았고, 그 대단하다는 시내 상가 건물주와 계약도 하게 되었다.
나는 몰랐다.
나는 내가 이토록 장사속이 아님을.
나는 꼴통 기질이 있었고, 아닌 건 아니라고, 잘못된 건 잘못된 거라고, 부득이 싸울 땐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손님을 잘 해주려 했지만, 손님의 아니다 싶은 요구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해서는 기탄 없이 싸워 버렸다.
손님 뿐이랴.
아르바이트하고도 싸웠고, 관할 공무원하고도 싸웠다.
돈을 대준 부모님하고도 당연히 싸웠고, 이로 인해 부모와 사이가 많이 틀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경찰관도 종종 불렀고, 아르바이트 생과 싸워서 경찰서에 불려가서, 정확히는 임의동행이지만.
아무튼, 조사도 받았다.
당시 연애하던 애인이 날더러 '싸움닭'이라고 하더라.
요새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온 김문수 후보가 젊어서 대학생 데모의 신화적인 분이라고 하던데, 내가 그런 성질머리로 데모에 임하였다면, 어쩌면 나도 차기 대선에서 출마 자격이 충분하고도 남지 않으려나.
그토록 꼴통이었다.
가끔 못 덤빌 사람한테는 굴복하는 비굴한 녀석이긴 했지만, 나중에 언젠가 나도 힘을 키워서 저런 인간들을 만나면 되갚아 주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샜는데.
결국 요는 그 망할 성질머리로, 그 서울 시내 자리 좋은 곳에서 장사를 말아 먹었다는 것이다.
이러면 손님이 떨어질 걸 알면서도 손님과 싸웠으니, 참 꼴통도 보통 꼴통은 아니었나 보다.
돈이 좋긴 해도 속된 말로 정말 배창시까지 다 내주는, 난 그런 짓거리는 절대 못 했다.
종로에서 젊은 나이에 '사장님' 소리도 듣고, 잘 벌 때는 그 나이대 직장인보다 더 잘 벌었다.
카드 결제는 알아서 통장에 쏙쏙 박혀 들어 왔고, 금고에서 현금을 수금해서 가까운 은행에 입금하고, ATM기에 통장이 쭉쭉 프린팅되는 소리는 돈을 버는 즐거움이었다.
통장이 몇 장을 넘겨서 나오고 잔액을 확인하면, 나는 학력이 변변치 않아도 시내에서 장사하는 '사장님'이라는 사실을 통감하며 참 좋을 때였다.
한 달에 카드 사용액이, 장사 밑천과 개인용으로 쓰는 지출이 많을 때는 300만 원이 넘어 갔고, 당시 물가는 지금보다 현저히 쌀 때였으니, 꽤 잘 나가던 젊은 사장이었다.
지금 종로에서 점심 한 끼를 하려면 저렴한 데는 9000 원, 10000 원을 줘야 했는데, 당시에는 5000 원, 6000 원을 하던 시절이었으니, 한 달에 카드를 300만 원을 넘게 썼다는 것은, 현재 물가로는 4~500만 원을 썼다는 얘기가 된다.
거기서 새 애인을 사귀면서 연애도 했고, 연애비는 거의 90%를 내가 냈고, 사고 싶은 선물도 사 줬다.
당시 애인은 중앙대학교 대학생이었고, 내가 돈을 잘 벌었으니, 연애비를 내가 충당하는 것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캐나다로 유학을 간다는 이유로 결별했지만.
모처럼 예전에 종로에 들렀을 때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가장 놀랐던 것은 대로변의 롯데리아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었다.
'세상에, 그렇게 오래 영업하고, 자리 좋은 곳의 롯데리아가 없어지다니.'
대신에 '육전국밥'인가? 하는 식당이 들어섰다.
정말 오래 전 얘기지만, 종각역 4번 출구에 '파파이스'가 있었다.
그러다 안과가 그 건물을 쓰다가 오랫 동안 공실이 되었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지금 올리브영 자리는 예전에 'TTL' 매장이었다.
유리통 매장 전면에 대형으로 출력된 임은경 사진이 장식돼 있었다.
우미관 자리의 대로변에는 맥도날드가 있었다.
그 매장에 꽤 자주 갔었는데, 2층에서 내려보는 종로 시내의 모습이 꽤 괜찮았다.
점심에 손님이 북적일 정도로 장사가 잘 되던 곳이었는데, 매장 바닥부터 유리창까지 찌든 때가 말을 못 해, 청소수준은 형편없었다.
지금 코너에 있는 다이소는 원래 '지오다노'가 오래 있던 자리였고, 사람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항상 그 사거리를 '지오다노 사거리'라고 인식했었다.
또, 그 옆에 약국이 있던 자리는 원래 KFC였다.
없어진지 꽤 오래 되었는데, 그 KFC는 내가 고등학생 시절 무렵, 나한테 기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종로에서 교습소를 하고 있었고, 한 번 와보라는 말씀에 같이 따라갔고, 그 KFC에서 가장 저렴한 '커넬버거'를 사주셨던 추억이 있어서, 늘 그 자리의 KFC를 잊지 못 한다.
골목통에 들어서면 술집, 노래방, 유흥업소들이 즐비하다.
예전에 '인디오'라는 술집이 있었다.
인디오는 애인이 술을 잘 못 하는 나를 데려가, 술을 가르쳐 주던 곳이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나 인근 직장인들이 많았고, 안주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자주 갔다.
화장실은 정말 최악이었지만.
아무튼, 밤이면 밤마다 연애한답시고 이젠 종로가 지겹다며 명동을 건너가서 같이 술을 마시고.
돈을 벌고 잘 나갔지만, 한 편으로는 '이런 삶이 옳은 것은가?'하는 반문도 공존했었다.
이따금 종로가 어떻게 변했나 둘러 보면, 젊을 때의 흥망성쇠가 교차해서 묘한 심경에 젖어든다.
후회되는 것도 많고, 우스운 일도 많고, 즐거웠던 일도 많고, 또 미안한 일도 많다.
만일, 내게 돈이 조금 생긴다면, 종로는 다시 가지 않고 싶다.
뭐, 좋은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더 많고, 알고 지내던 분들을 다시 마주치는 것은 오히려 불편한 것이 큰 이유가 된다.
작은 사무실을 차리게 된다면, 시청이나 남대문 부근에 차리고 싶다.
낡고 작은 평수는 그래도 저렴할 테니.
글쎄, 나는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도회인'인가 보다.
번화한 시내를 보면 꿈에 젖어 들고, 도전해 보고 싶은 희망이 생긴다.
다양각색의 연령과 직업의 많은 사람들, 보기만 해도 웬지 나도 대기업 직원이 된 듯 한 고층빌딩들.
출근길의 만원 지하철과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하는 서울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 활력과 역동을 느낀다.
아, 보는 건 좋아도, 타는 건 당연히 싫다.
그 게 싫어서 시골로 왔으니.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를 정도로 진한 도회인일 지 모른다는 생각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하게 되었다.
내가 시내 쪽에 집을 구하려는 진짜 이유는, 단지 교통이 좋아서가 아니라, 도시의 꿈을 가득 머금은 어린왕자이기 때문이려나.
서울의 월세방을 계약한 다음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