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방에 살기로 해버렸다.
" 너 왜 서울 안 살아?"
지방으로 이사를 오고 난 후 종종 듣는 질문이다.
부산에서 유년기를 보낸 후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흔한 대도시에서 곱게 자란 케이스인 나.
10년이 넘는 학창 시절을 서울에서 함께 보낸 친구들은 나의 뜬금없는 지방행을 신기해했다. 잠깐 사는 줄음 알았지만 진짜 눌러앉을 줄은 친구들도 그때의 나도 몰랐다.
20대 중반 끝 무렵, 지금 사는 지역에 전입신고를 하며 완전히 서울을 떠났다. 직장 때문도 아니었고 학교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지방에서 살기로 스스로 결정한 것뿐이었다.
이렇게 말하니 꽤 비장해 보이는데 나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고 남들 사는 듯이 그냥 그렇게 사는 모양이었다.
21살, 재수 대실패로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지 못했고 서울권 여대와 지방의 분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했던 시기.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불교육장 서울 목동에서
재수를 끝낸 나이만 성인인 재수생에게 이런 상황은 흡사 재앙과도 같았다.
나의 성적을 들은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삼수를 해야겠다며,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누구나 그렇다는 듯 아는 언니, 오빠의 삼수 성공 후기를 들려주는,
우리 동네는 그런 흔한 서울의 동네였다.
하지만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던 나는 더이상의 공부를 하고싶지 않았다. " 현역보다 망칠 줄 알았으면 재수나 하지 말걸.." 망한 재수생이라면 다 하는 후회를 하며
민망한 서울 잔류와 비겁한 지방행 사이에서 고민하고 선택해야 했다.
수능을 망친 게 창피해서? 삼수를 하기 싫어서? 부모님의 실망을 보고 싶지 않아서?
무슨 이유였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별 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린 그 시절,
나는 무슨 생각으로 지방행을 선택했을까,
그리 유쾌한 이유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지방으로 가기로 했고 결국에 서울을 잠시 떠났다.
꽤 덤덤하게 지방행을 선택했지만 자취방을 구하러 처음으로 지방을 내려가는 기차에서는 살짝 울었던 것 같다. 그뒤로 대학 생활 내내 지겹게 탔던 기차지만 목동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는 내내 기차 한 번 탈 일이 없을 만큼 학교와 학원과 인간관계에 시달리며 부모님의 무한한 투자와 선생님들의 케어 속에 격정의 십 대를 보낸 사람에게 낡디 낡은 무궁화호는 좌석에 앉기도 전에 눈물 두 방울을 흘리게 하기 충분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데, 그냥 그때는 꽤 심각했네.
처음 내려가는 그 날은 하필 날씨도 좋지 않았다.
우중충한 와중에 기차 내부는 너무 낡았고 바깥 풍경도 너무 시골스러웠다. 여행지로 선택된 섬마을 같은 시골이 아니라 삶의 현장들인 육지의 시골 풍경은 " 아 ,, 이제 나 시골 가서 살아야 하네 "라는 생각이 절로 들며 울컥하게 했다. 하하
그리고 부모님의 걱정 속에 결국 입학을 했다. 1학년은 암묵적으로 기숙사에 살아야 한다는 학교 분위기는 가볍게 무시하고 학과 1학년 중 유일하게 자취를 했다. 그때는 내가 다니는 학교, 내가 사는 지역 전부 애정도 관심도 없었고 그냥 더 이상 학창 시절처럼 규제를 받고 싶지 않은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선택한 자취의 삶은 아주 편했다. 혼자 사는 게 이렇게나 편하고 좋구나를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갑자기 혼자 사는 게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지만, ' 어린 애도 아니고 뭐, ' 라고 하고 말았다. 21살이면 어린 애 맞는데 (?)
그리고 학기가 시작되고 여름이 올 때 쯤,
어릴 적 꽤 소중했으나 공부를 하느라 지키지 못했던 취미를 시작했고 이후 이것은 나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주었다.
계기에 대한 자세한 스토리들은 차차 적어 나가겠지만, 이 것을 시작으로 점점 서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갔다.
이후 이곳에서의 나의 삶이 너무나 만족스럽다고 느낄 때 쯤,어디에 살든 내가 행복한 것이 중요한 것을 깨달았고 그런 의미에서 '지방에서의 나' 는 '서울에서의 나' 보다 더 행복했다.
서울에서는 내가 왜 지금 지방에 있는지 설명해야 했고 언젠가 서울로 돌아올 계획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했지만 지방에서는 내가 왜 서울에서 이곳에 온건지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 그런 부분이 서울의 집 보다 지방의 집을 더욱 편하게 느끼게 했다.
그리고 4학년이 되고 먹고살길을 찾아야 할 만큼 어른이 되었을 때, 예상대로 지방에 살기로 결정했다.
정확히는 " 서울에 살지 않기로 했다 "
혹시나 서울에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 더 생기기 전에 떠나야 했고 취준생이었던 26살 여름, 나는 완벽하게 지방에 귀속되었다. 내가 살던 서울 집은 더 이상 나의 집이 아닌 부모님의 집이 되었고 내가 살고자 하는 곳에 나의 집이 생겼다.
유난스러울 수 있지만 해방의 느낌이랄까,
서울에서 내가 가졌던 꿈, 계획, 목표 그리고 물건들까지 전부 버렸다. 이곳에 남기로 결정한 후로는 그전에 하던 공부 모두를 접었다. 비단 주거지의 이유만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랬다.
남들만큼 살고 싶어서 선택했던 공인노무사 공부와
혹시 노무사를 하지 못할 경우 부모님이 걱정하실 테니 병행하던 근로감독관 공부도 접었고 더 이상 재테크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 주식 차트도 보지 않았고 서울에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취미들도 끊었고 서울 친구들과의 만남도 자연스레 줄여나갔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어른으로 살기 위해 응당 해야 하는 것들과 응당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들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 시절 내내 하고 싶었던 도시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고 관련 현장에서 일도 하며 그 언제보다 바쁘게 살고 있다. 어떤 어려운 공부도 행정쟁송법이나 노동법보다는 재밌을 테니 지금 당장은 무서운 게 없는 20대이다.
이제 서울은 언젠가 살았던 곳이자 가끔 놀러 가는 곳 또는 나에게 공부를 위해서 가는 도시가 되었고 그래서 너무 좋다. 더 이상 서울로 가는 길이 답답하지 않다. 좋다.
원래 브런치에 가입을 하고 도시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문득 내가 도시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된 계기나 지방에 살게 된 이유를 먼저 말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선 제목은 비워둔 채 여기까지 적었는데 이제 제목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나 조차도 잊고 있던 미숙하고 여리고 상처 받았던 그 시절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만들어줬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고 감회가 새롭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재수를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거나 결국 서울로 돌아가 살 거라는 지키지 못할 계획과 다짐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의 나는 언제든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나만의 에피소드와 전환점이 있고 그 덕에 지금 지방에서도 치열하게 열심히 인생을 꾸려나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서울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서울을 떠날 수 있게 된' 나는 이제 그때의 실패가 부끄럽지 않다.
그리고 결국 정한 나의 첫 글의 제목은,
너 왜 서울 안 살아?
재수를 망했거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