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가장 멀리 떠난 여행

늦게 도착한 여행기_2020 남미

by 솔솔

김영하는 책 '여행의 이유'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엇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지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준다고. 그런 면에서 자신은 제일 먼저 소설가이고, 두 번째로는 여행가라고 말한다.(기억에 의존하는 내용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음) 책을 읽어도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 이 내용이 남아있는 것은 나 역시 김영하의 주장에 따르면 명백하게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뒤로 스스로를 소개할 때 종종 이 부분을 인용하곤 했다.


앞길이 막막해졌을 때도, 준비하던 시험에 똑 떨어졌을 때도, 일을 시작하고 시간이 날 때도 부지런히 여행을 다녔다. 돈이 부족할 때는 베트남, 인도, 태국, 라오스, 말레이시아의 작은 섬 프렌티안 등 동남아시아를 돌아다녔고, 여유가 생겼을 때는 로망이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 체코의 프라하와 독일의 작은 소도시를 여행했다. 그 여행의 시간과 기억을 안고 다음의 시간들을 버텨냈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언제나 마음속에 버킷리스트로 품고 있는 여행지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남미. 라틴 아메리카였다. 딱히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미디어에 종종 나오는 마추픽추나 우유니 사막, 이과수 폭포와 같은 유명 관광지들의 이질적이고 낯선 풍경들에 끌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장소들이 모두 남아메리카 대륙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때부터 '남미'라는 덩어리의 여행지가 나에게 꿈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 꿈은 꽤 오래되어 1n 년 전 대학에서 스페인과 남미를 여행을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스페인어 수업을 듣기도 했다. (물론 남아있는 것은 숫자 우노, 도스, 뜨레스와 인사말인 부에노스 디아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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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남미로 이끈 삼대장_ 우유니 사막 / 마추픽추 / 이과수 폭포


그렇지만 다른 여행들과는 다르게 남미 여행을 생각할 때 마음속에 걸림돌이 몇 가지 있었다.


- 남미는 일단 너무 멀다. 그건 즉,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먼 곳으로 오래 여행을 간다는 것은 곧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 남미는 위험하다.(실제 위험도와는 별개로 내 마음속 인지가 그랬다.) 혼자 가기에는 부담이 따른다.


종합해 보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함께 여행할 파트너를 구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뒤져보니 한 달 정도의 일정이라면 넉넉하게 천만 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해 보였다. 나의 귀여운 월급을 고려해 보았을 때 모을 수 있는 최대치로 월 30만 원을 잡는다고 했을 때 무려 3년이 걸린다. 이 오랜 프로젝트를 생각하니 까마득해져, 결국 마음속 한구석에 버킷리스트로만 남겨두고 있었다.


이 버킷리스트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친구 A와의 대화 때문이었다. A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대학시절 함께 꿈꿨던(그렇다. A는 대학 때 스페인어 수업을 함께 들었던 친구이기도 하다.) 남미에 대한 이야기가 맥락 없이 툭, 튀어나왔다. 오랜 준비 끝에 얻게 된 직장 생활에 그도, 나도 슬슬 익숙해지고 있던 시기였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또 다른 새로움을 찾고 싶어 진다는 것.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여유(금전적, 시간적, 정신적)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미 여러 차례 함께 여행해 왔고, 가까운 시기에 또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을 함께 계획하고 있던 친구였던지라 더 고민할 것은 없었다. 각자의 직장 상황을 고려하여 약 3년 후인 2020년 1-2월 정도를 여행의 시기로 정했다.


오랫동안 꿈꿔온 남미 여행의 첫 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