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사는 나와 셰프에게 닥친 시련
2023년 어느 여름날. 오전 5시 19분 하트, 5시 20분 바리를 낳았다.
순산이었느냐고? 절대 아니었다.
이미 제왕절개로 출산을 한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7겹의 근육과 살을 찢는 고통을 어느 정도 가늠하고 있었다. 마취가 풀리고 안정실에서 나와 입원실로 이동하는데 정말 난 저 세상 고통을 느꼈다. 정말 말 그대로 미칠 것 같은 고통을 소리 지르며 참아내고, 기절했던 건지 잠들었던 건지를 반복했다. 내 기억 속에 그날은 아파 죽겠다는데 간호사는 내 혈압을 재며 "어, 맥박이 전혀 안 잡히는데. 예전에도 그랬어요?"라는 말만 해댔다. 소변줄이 너무 아파서 고래고래 소변줄을 빼라고 온몸을 비틀며 소리치자 마지못해 소변줄을 빼줬다. 그리고 얼마 후 느껴지는 뜨거운 액체가 내 다리를 적실 때쯤 난 기절을 해 버렸다. 이후 그날의 기억은 현재까지도 없으며, 내 자궁 속에 출혈부위를 잡아주는 기구를 넣는 고통에 잠시 깼다가 중환자실에서 눈을 뜬..........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이 내가 사랑하는 쌍둥이를 낳은 날이다.
정확히 5월 어느 날에 출산을 하고 싶다고 의사에게 말했었다. 의사는 그때 낳으면 아가들이 너무 작기 때문에 엄마가 힘들더라도 좀 더 참아내라고 이야기했다. 출산 일주일 전인지 이주일 전에는 예진실에서 소변스틱을 본 간호사가 '단백뇨가 조금 나왔어요.'라고 말했었다. 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각한 문제라면 의사가 분명히 날 대학병원으로 보냈을 거라는 의사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는 medical 부주의(neglect)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들을 기록해 놓지 않았다. 그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모조리 빼버린 서류를 읽은 변호사의 의학파트너는 서류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정말 의사는 의사 편이란 말인가. 끔찍이 사랑하는 아내를 잃을 뻔한 셰프는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 위에 판치는 법과 법조인들의 시장 속에서 셰프는 진정 '정의'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