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을 내재한 이 겨울
요즘 날씨가 부쩍 춥다. 겨울이 막 시작되었을 땐 ‘이제 겨울이 없어지나 보다’ 싶을 만큼 춥지 않아 걱정했는데, 이젠 너무 추워서 걱정이다. 추위 예보는 연일 갱신되면서 동장군의 기세가 등등해지고 있다. 1월 24일, 서울의 기온이 영하 18도였다는데, 2001년 이후 15년 만에 가장 낮은 기온이란다. 게다가 제주도에선 7년 만에 한파특보와 함께 눈이 거세게 내리기까지 했다. 삼한사온이 무색할 정도로 이번 추위는 영하 10도로 떨어진 날이 8일이나 연달아 이어지고 있단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혹한에 시달리는 겨울을 지나고 있다. 북미 지역도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을 맞으며 스노마겟돈(스노우와 아마겟돈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난여름 참 무더웠다. 흡사 동남아 날씨처럼 변하는 것 같다는 누군가의 말에 난 가본 적 없는 따뜻한 나라를 떠올려봤었다. 푹푹 찌는 더위에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있는데, 직장 동료가 내게 이런 말을 건넸었다.
“올 해, 전 세계적으로 온도가 1도나 올랐대요.”
1도가 별 건가 싶어, 기사를 찾아보니 미지의 영역에 진입하는 수치라는 것 아닌가. 산업화는 1750년대에 시작됐지만 당시엔 실제 기온에 대한 혼란이 존재해 지금까지 지구의 온도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파악하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문제를 고려해서 영국 기상청은 1850~1900년 평균치를 기준 시점으로 지구 온도를 삼았는데, 이 평균 기온에서 처음으로 지구 온도가 1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재앙의 관문으로 여기는 척도가 ‘지구 기온 2도 상승’이라고 하니… 1도 상승, 별거 아닌 게 아니었다. 그리하여 본 적 없는 미지의 생명체들이 출현할 수도 있다는 동료의 덧붙이는 말에 잠시 등골이 오싹했으나 더위는 가실 줄을 몰랐었다.
기상전문가들은 일시적으로 찾아온 한파가 강력하긴 해도, 온난화로 인해 겨울의 길이는 전반적으로 짧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한파는 지구온난화로 그 힘이 강해졌다. 북극 인근을 빠르게 도는 바람을 ‘제트기류’라고 부른다는데, 지구 온도가 상승하면서 제트기류의 속도가 느려졌다고 한다. 느려진 제트기류는 북극의 찬 공기를 막지 못하게 됐고,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는 것. 난 전문가가 아니기에 이 현상을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토록 추운 겨울을 겪으며 무럭무럭 더워지고 있는 지구의 상태가 염려된다는 걸 나누고 싶은 것이다. 지구를 향한 거시적인 걱정을 하다 보면 어디선가 나에게 위선자라며 혀를 차는 지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누리고 싶은 건 모조리 다 누리려 욕심을 부리면서 지구를 생각하는 척 할뿐이지 않은가. 나는 종종 연인에게 좋아하는 마음은 표현해야 아는 거라고 말하지 않았었나? 지구는 그동안 인류를 향한 짝사랑만 하면서 얼마나 속앓이를 했을까!
거창한 계획보다는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겠다 싶어서 나름대로 정한 규칙은 우선 두 가지다. 4층 이하는 계단으로 걸어 다니기, 안 쓰는 콘센트는 꼬박꼬박 빼놓기. 미비해보일 테지만 ‘이 두 가지만큼은 꼭 지킨다!’하는 각오로 정해봤다. 그리고 옵션으로 한 가지, 아이디어 나누기. ‘지구온난화 막는 방법’의 키워드로 검색을 하니 친구들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잘 몰라서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것. 사람들과 만나 캐쥬얼한 대화 속에서 지구온난화를 막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을 테니까.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이토록 추운 겨울, 더 강력하게 더워질 지구를 걱정해보면 참 좋지 않을까?
또 몇 년 후, 오늘을 기점으로 몇 년 만의 추위라고 쓰이는 기사가 나오겠지. 시간이 흘러, 이 날을 지목하며 회자될 겨울의 온도만큼이나 나의 오늘은 추억할만한 기록이 있을까 더듬어보았다. 뚜렷한 사계절이 자랑이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이상기온으로 계절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힘들어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야.’ 위로하던 것도 이제는 ‘꽃피는 봄’이 쉽사리 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쉬이 건넬 수가 없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방법을 간구하면서 우리에게 꽃 피는 봄이 빠르게 돌아오는 방법도 간구하고 싶은 겨울이다. 아니면 겨울에도 예쁘게 피어나는 꽃이 되도록 연구하는 쪽이 빠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