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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사람 Feb 19. 2016

엄마의 된장찌개

조화로운 어른이 된다는 건.


 부엌에서 엄마가 끓는 물에 된장을 풀면 금세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진동한다. 이윽고 ' 탕탕탕' 도마 위의 경쾌한 칼 소리가 들리면 무는 자박하게, 고추는 어슷하게 썰고 호박잎을 손으로 찢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엄마의 된장국이 우르르 끓는 동안 나는 찌개 냄새에 몸이 달아 미리 식탁에 가 앉곤 했다.


 엄마는 된장을 잘 다룬다. 쌈 요리에 어울리는 강된장을 뚝딱 만들기도 하고 된장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리에도 된장을 넣어 기가 막힌 맛을 낸다. 된장 요리 중 화룡정점에 있는 것이 엄마의 된장찌개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가 부엌을 바쁘게 오가며 이것저것 넣어 만든 것이 고작 한데 뒤섞인 물웅덩이 같은 것이라서 실망이 컸었다. 없는 형편에 밥투정을 했던 철없는 나를 앉혀놓고 엄마는 "다 같이 둘러 앉아 기쁘게 먹으면 그것만큼 진수성찬이 없는 거야."하셨다.


 된장 맛을 알고 나서는 어린 마음에 엄마가 만화에서나 보던 마녀처럼 냄비에 요상한 것들을 넣어 요술을 부리는 건 아닌가 싶었다. 식탁 위에 엄마의 맛있는 요술이 올라올 때마다 난 신이 나서 그 많은 국물을 다 비우곤 했다. 내가 처음 엄마의 찌개를 보고 고작 물웅덩이라고 여겼던 것처럼 우리는 특별한 인생이 아니면 의미 없다 말하기도 한다. 마치 내가 반찬 투정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된장찌개의 근원지는 멀리 땅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농부가 공들여 키운 콩이 자라고 수확 되어, 그것이 된장이 되기까지의 시간들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된장이 땅에서 뿌리내리며 자란 콩으로부터 시작됐음을 까마득히 잊는 거다. 땅에 심겼던 콩에서 식탁 위의 된장찌개가 내는 조화로운 맛까지 다다르는 긴 여정을 생략하고 된장찌개 맛에 집중하게 된다.


 작은 콩 한 알이 힘겹게 싹을 움틀 때, 자신이 구수한 된장이 될 거라 생각했을까? 이처럼 특별하지 않다 여겼던 우리 삶 속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차츰 모여서 조화를 이루고 흡족할만한 인생이 되도록 돕는다. 여러 가지의 재료들이 텀벙텀벙 물속에 섞여 조화로운 맛을 내는 것처럼. 인생은 된장처럼 오랜 시간이 흘러야 깊은 맛을 내기 시작한다. 오늘의 차분한 노력은 분명 내일을 바꾸는 힘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학창시절의 난 요리하는 엄마 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며, 미래를 그려보곤 했다. 그 시절 엄마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던 나의 꿈처럼 특별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하물며 얼마 전엔 다니던 회사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월급도 받지 못한 채 나와야 했다. 학창시절 따뜻한 된장찌개를 끓여주며 나의 미래를 격려해준 엄마에게 미안한 것 투성이인 어른이 되었다.


 최근, 마음이 불안할 때면 나는 부엌에서 요리를 했다. 이런저런 음식을 하며 집의 온도를 높였다. 된장찌개를 끓이며, 내가 조화를 이루어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을 거라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 인생은 된장 같아서 섣부르게 그 맛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랜 시간 노력하고 인내해야 한다. 모두는 어딘가에서 각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개인의 인생을 완성하고 있는 거다.


 된장찌개에는 먹이고자 하는 의지로 국물을 우려내는 어머니의 사랑과 미래를 견뎌내고자 하는 자식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을 살아내게 하는 생에 대한 의지가 냄비 속에서 펄떡이는 듯하다. 나는 여전히 된장찌개가 좋다. 따스한 어머니의 사랑과 온기가 나를 살게 하기 때문이다.


 된장처럼 시간이 갈수록 그 맛이 달라지는 게 인생이라 나는 오늘을 쉽게 단정 짓지 않으려고 한다. 파도처럼 휩쓸리기보다는 바다 위에 우뚝 선 바위처럼 고요하고 차분하게 노력하고 싶다. 지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에게 내일은 더 깊은 맛으로 세상에 조화를 이루게 될 당신을 기대하면 좋겠다고,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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