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와 함께 포장된 불편함
10년 전, 신촌에서 우동 집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그랬다. 2층 짜리 매장을 오르내리며 우동을 서빙하다 뜨거운 국물에 데여도 먼저 혼부터 났었다. 가뜩이나 부족한 일손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핀잔을 뒤로, 부어오른 손등을 부여잡고 서러움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바쁘던 식사 때가 지나서야 손님들이 적어진 매장의 구석진 테이블에서 우동으로 급하게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고군분투 해도 손에 들리는 돈은 한달 생활비로 늘 빠듯했다. 10년이나 지난 이야기인데, 일터의 속상한 처우와 적은 시급은 여전하다. 강산이 변한다는 주기도 이제는 10년이 아니라 5년을 못 미치는 변화의 가속화 시대지만 사람이 사람을 쓰는 곳에선 허용되지 않는 속도인 가 보다.
올해 최저 시급은 6,030원이다. 소정근로시간인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로 한 달을 계산하면 대략 126만원 정도가 된다. 최저임금제도는 국가가 근로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126만원. 한 달을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금액일까? 더 노력해서 고소득을 받는 일자리를 얻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두가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고소득 직장과 최저소득 직장은 사회의 경제 상태를 따라 알맞은 수만큼 생겨나서 유지되거나 혹은 사라진다. 고소득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곳도, 최저 임금을 받는 곳도 정해져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활을 꾸려야 한다. 고임금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최저 임금을 받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는 거다.
올해의 최저 임금이 6,030원으로 책정될 거란 기사엔 이런 리플이 있었다. 연애도 결혼도 하지 않고 부모님 집에 얹혀 산다면 생활할 수 있는 돈은 될 거라고. 가파르게 내리막길 치는 청년 실업을 생각하면 리플을 단 청춘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었다. 요즘은 활발하게 사회 생활을 해야 할 청년들에게 열정페이라며 최저임금 보다 못한 돈을 쥐어주고 젊음을 착취하는 곳도 많지 않은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깊어진 건 5월 말, 피자를 사러 간 날이었다. 피자가 먹고 싶었는데, 프랜차이즈 보단 동네에서 운영하는 피자 가게에서 사면 좋겠다 싶었다. 동네 상권도 프랜차이즈에 집중되어 있기에 개인 가게는 심심치 않게 문을 닫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를 가곤 했었다. 그렇게 들른 피자 가게는 주말이라 밀려드는 주문에 바빠 보였다. 나는 주문을 마치고 매장 의자에 앉아 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되는 주문 전화를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 분이 받고 오더를 내리면 앳된 티가 나는 청년은 피자를 만들었다. 그 사이 몇 번이나 같은 번호로 피자가 언제 오는지를 묻는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었다. 사장이 내내 주문이 밀려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수화기를 내리면 아르바이트생에게 소리를 질렀다.
청년은 혼자 피자를 만들며 까닭 없는 꾸짖음에도 묵묵하게 일했다. 컨베이어 벨트 같은 오븐에서는 청년이 만든 피자가 알맞게 구워져 나오고 있었다. 피자를 떠올리면 으레 기억나는 그 풍만한 향이 괜스레 눈치 없어 보일 만큼 매장에선 민망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곧 있으면 주문한 피자를 재촉한 어떤 이는 피자를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거다. 나를 포함해서, 피자를 받아든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피자 앞의 청년은 홀로 분주했다. 목에서 흐른 땀으로 젖은 그의 앞치마를 보고 나는 그 청년에게 미안했다. 피자집 사장이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닌데 난 얼굴이 붉어져서 어쩔 줄 몰랐다. 내 순서의 피자가 포장되어 나오자 사장은 아르바이트생을 대하던 목소리와는 다른 톤으로 내게 “또 오세요”라고 인사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재빨리 가게를 나왔다. 계속되는 꾸지람에도 한 마디 없이 피자를 굽던 아르바이트생이 떠올라서 속이 상했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던 기억들이 뒤엉켜 눈물이 났다. 다 그만한 이유로 지금의 자리에 있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한 이유로 남들 보다 못한 상황에 놓였을 입장을 생각하면 쉽사리 판단해선 안 될 일이다. 물론 누군가의 생활을 개인적인 판단으로 안타깝다 여기는 것도 주제 넘은 일일 수 있다. 자신의 자리에서 만족하며 생활을 꾸리는 이들도 많으니까. 나는 그저 사람간에 사람다움을 잃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사람을 향해 온기를 품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중간에 동물로 둔갑하는 이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내내 마음에 남아 있는 테레사 수녀의 말이 있다.
'천한 사람은 있어도 천한 직업은 없다.'
사온 피자를 앞에 두고 혼자 앉아 TV를 켰다. 군침 도는 냄새를 맡으며 불쑥 엄마가 보고 싶어져 전화를 걸었다. 괜스레 속상해진 마음을 다잡으며 “엄마, 사는 게 뭐 이래요…” 라는 말로 시작한 통화였다.
그 날은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홀로 점검에 나섰다가 승강장으로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서 안타깝게 숨진 19세 청년의 뉴스가 뜬 날이었다. 구의역 점검을 마치면 신고가 들어온 다른 역으로의 이동이 빠듯하게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의 가방 안에는 저녁 식사로 준비했을 컵라면이 들어있었다는데 그마저도 먹지 못하고 청년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대학에 가고 싶어 적은 월급에서 100만원을 꼬박 저축 했던 19세 청년을 위해 기도했다. 이런 죽음이 반복되지 않기를 연이어 기도했다.
그 날 피자와 함께 포장된 불편함 때문이었는지 나는 된통 체했고, 잠을 설쳤다.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모를 울화통 때문에 가슴께도 먹먹해서 속이 터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