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사람 Feb 01. 2016

매듭 짓기

회사를 그만두는 일에 대하여

 요즘,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이력서를 이곳저곳 뿌리는 일도 다반사다. 이력서를 넣고 나면 걸려오는 전화마다 지원한 회사는 아닐까 싶어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받곤 한다. 하지만 보통은 스팸 전화다. 그럴 때면 그들을 붙잡고 신세한탄이라도 하고 싶어진다. 급한 마음에 이곳저곳 이력서를 욱여넣기도 한다. 어쩌다 그곳에서 연락이 와 면접을 보고 입사를 한다한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오랜 시간 취준생으로 살다가 어렵게 입사한 곳에서 어떻게, 잘, 사직서를 제출할지 고민하는 순간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그런데 퇴사 이것도 만만치가 않아서 몇 날 며칠을 고민하게 된다.


 “나, 사회부적응자인가?”

 마음고생 절절히 하다가 취직을 했는데 대체 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치미는 걸까. 이것도 참지 못하고 그만둔다면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알고 보니 내가 취업이 안 되었던 건 섣부르게 사직서를 내려는 잘못된 판단력에서 비롯된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을 하다가 잠 못 이루는 밤을 맞이하고 다음날 다크써클 진하게 내려온 얼굴로 다시 회사를 향한다. 사직서는 썼느냐고? 마음은 여전히 오리무중,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한다는 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노력하고 있다는 보람을 갖게 한다. 삶을 영위할 수 있게끔 해주는 자본도 노동에서 나온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일을 하지만 이제 직장이라는 건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더 부각되어진다. 그래서 조금은 더 좋은, 더 돈을 많이 주는,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그럴싸한 곳이길 희망하게 된다. 소위 대기업이라고 불리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곳에 가려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많다. 일할 곳이 대기업 말고도 얼마나 많은데… 대기업만을 고집하며 취업할 곳이 없다 말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 같은가? 아니다. 대기업은 돈을 많이 주니까 다들 가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한 거다. 대기업만이 사원들에게 월급을 많이 줄 수 있는 구조를 가진 게 잘못된 거 아닐까? 대기업의 자본 독식은 주변부의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틈새를 도통 주질 않는다. 개인 사업은 중소기업 이상으로 뻗어나가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예전엔 작은 중소기업들도 얼마든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는데, 마치 머나먼 이야기처럼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아무튼,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 여기에서부터 잠재적 빈부격차는 벌어지기 시작하는 거라 생각한다. 더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한 아쉬움은, 직업으로 사람의 계급을 나누는듯한 사회 풍조 때문에 커진다. 영세한 기업의 발전이 도모되지 않기에 대기업에 못 들어간 다수는 일에서 회의감을 느낀다. 이제 사람들은 일하면서 버는 돈에 큰 가치를 두려하지 않는다. 아니, 어디든 돈은 다 비슷하게 주니까 그런 거다. 대신 나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일터에서 자아를 찾는다. 이런 청년들을 노리며 열정페이 운운하는 못된 곳들도 생겨났으니 너무나 안타깝다. 


 사직서를 내야 하는 건지 마음을 잘 모르겠다면 우선은 짧게, 지금 다니는 곳에서 1년 후의 자신을 한 번 그려보자. 회사는 성장의 여지가 있는지, 나는 회사를 통해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맞이할지 등등. 나 같은 경우엔 ‘강단에 서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으로 일자리의 비전을 고민했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강단의 위치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가. 확신에 차서 익힌 업무의 노하우를 삶에 적용하라며 말할 수 있는가. 사직서를 내야 하는 건지 싶을 땐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도저히 여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은 보통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하니까.’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이상보다는 현실을 쫓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니면 나와야 할 곳’에서도 미련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있을 터다.

 사회부적응자는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 걸까. 어렵게 취직하는 상황이 안타까운 것이지, 그렇다고 막상 들어간 회사가 맞지 않아 나오게 되는 걸 자책하지 않으면 좋겠다. 마음 들썩이는 당신은 사회부적응자가 아니라 ‘비현실적 사회 부작용자’다. 


 잘 생각해보자. 당신의 꿈은 무작정 ‘무슨 일이든, 일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건 아니지 않은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 현실과 타협하면서도 보람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직종을 먼저 선택해야 한다. 취업이 어렵다고 해도 무작정 지원은 삼가는 것이 좋다. 시간이 조금은 걸리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곳으로 지원을 먼저 한 후에 조금씩 계획을 조정해나가면 된다. 비록 점차 하향지원이 된다고 해도 내가 고심하여 선택한 자리는 앉아있을수록 편안할 테고 나를 성장시킬 테니까. 다니던 회사를 매듭짓고 나오는 일이 입사만큼이나 골머리를 앓게 한다는 걸 겪고 나면 신중해지는 계기는 또 단단해질 거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우리는 충분히 꿈을 꿀 권리가 있다. 그 꿈을 다 펼치기엔 자갈밭 천지라 해도 어떤가. 평평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기울어진 곳에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꿈을 재조정하고 그 안에서 새롭고 유쾌한 시선들을 포착하면 된다. 자기소개서를 썼다 지웠다 반복한 오늘, 서류광탈에 허망한 마음이 들었던 오늘, 사회부적응자라고 자책하며 사직을 망설인 오늘. 당신이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앞에 놓인 자갈 하나를 옮겼으니 내일도 차근차근 자신의 땅을 고르게 하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을 향한 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