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인사
안녕하신가. 더욱 정답게 인사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아버지는 지금 무얼 하고 지내시나?
어린 날의 기억 저편, 어두운 색감 속에 아버지가 있다. 나는 어리고 천진난만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흑백 필름처럼 남아 있다. 아버지는 난폭했고 어느 시점에서 폭력성이 튀어나올지 모르겠는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무서운 아버지가 상냥해질 때면 내 손을 잡고 집 근처 슈퍼를 가곤했다. 나는 또 그게 좋아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아버지가 사는 건 꽁치였다.
꽁치는 저렴해서 만만하게 먹을 만한 별미였다. 통으로 산 꽁치는 등을 비스듬하게 칼집을 내고 소금을 살살 뿌려가며 프라이팬에서 구웠다. 뚜껑을 닫고 굽다가 뚜껑을 열고 꽁치를 뒤집은 후에 다시 닫았다. 꽁치 몸에서 굴러 떨어진 소금 몇 알이 프라이팬 열기에 타닥타닥 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꽁치를 뒤집을 다음 타이밍을 기다렸다. 두세 번을 뒤적이며 굽다가 마지막엔 꽁치 배가 프라이팬에 닿도록 세워서 굽는다. 넘어지지 말라고 젓가락으로 꽁치를 꼭 붙잡아서 배의 내장들이 고루 익기를 기다렸다. 꽁치 배가 지글지글 끓으면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러니까 꽁치는 아버지가 사고 꽁치를 굽는 건 내 몫이었다. 난 제법 노릇노릇하고 맛있게 구워냈다. 그러고 나서 꽁치를 먹었던가? 참 희한한건 꽁치를 굽던 장면과 기막히게 고소했던 향은 기억에 또렷한데, 그것이 무슨 맛이었는지 선명하지가 않다. 꽁치를 굽던 장면에서 다음 장면으로 기억이 매끄럽지 못하다.
꽁치는 횟집이나 음식점에서 심심치 않게 곁다리 메뉴로 나온다. 그만큼 저렴하고 보편적이며 서민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어릴 때 내가 구웠던 꽁치 맛은 기억에 없지만, 밖에서 먹은 꽁치 맛과는 분명 다르다고 여겼다. 음식점에서 꽁치가 나오면 어린 시절이 기억나서 ‘그 맛일까’ 싶어 먹어보지만 난 기억에도 없는 그 맛과 역시나 다르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날의 기억이 고집스러운 면모를 갖고 왜곡된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아버지는 무엇이기에, 자신이 꾸린 가정을 향해 난폭했는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때는 정말 천진난만해서 모든 것이 견딜만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내가 견딘 것들은 나이든 지금의 나는 견디지 못할 일이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은 선생님이 내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며 우유를 왜 먹지 않느냐고 했다. 무상으로 주는 데도 먹질 않으니, 학교에서 헛일을 한다며 큰소리쳤던 기억이 너무 또렷하다. 나는 그때도 천진난만해서 신이 나, 앞으로 나가 우유를 한 번에 들이켰었다. 선생님은 내가 무상우유급식 대상자라는 것을 알려준 기억이 없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 그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작은 아이들도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다. 뒤늦게 그때 기억이 올라와서 속상한 의미가 퍼즐처럼 맞춰진다. 어렸던 내가 무엇이든 잘 몰라서 용감했으니 감사한 일이다.
소득 수준이 낮은 집안 아이들과 자신들의 아이가 같은 반에서 공부할 수 없다며 소리소리 지르러 온 아줌마들을 비집고 꽁치를 구우러 뛰어가곤 했었다. 꽁치 내장이 부글부글 끓을 때 복도에서 소리 지른 아줌마들의 부글거리던 얼굴색이 떠올랐었다. 어른들은 왜 다들 화가 많고 폭력적인지 넌더리가 난다는 회의감을 천진난만했던 그때 처음으로 가졌었다. 물론 이렇게나 정돈된 회의감은 아니었을 거다. 그냥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상황이 왜 주눅 들게 만드는 건지 의아해했겠지.
이제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는다. 함께 살지 않은 이후부터 내 삶은 흑백에서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꽁치도 더 이상 굽지 않게 되었다. 이따금 가게에서 나오는 꽁치를 보면 반갑고 웃겨서, 맛있게 먹는다. 꽁치 등에서 떨어져 내린 소금이 타닥, 튀는 소리를 낼 때 나는 신기해서 발을 들고 투명한 프라이팬 뚜껑 안을 들여다봤었다. 이 아이를 언제 뒤집으면 될까 싶어서 꽁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프라이팬 속에서 꽁치가 노릇노릇 익어가던 시간은 대개 오후 다섯 시쯤이었다. 밖에서 뛰어노는 친구들의 재잘대는 소리와 기우는 해가 쏟아내는 밝은 빛이 베란다로 늘어지던 시간. 나른하고도 허전했던 그 시간을 지나 어른이 된 건 내게 큰 위로가 된다. 어른이 되어 살고 있다는 게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아버지 소식이 궁금하지 않다. 아직도 살아있을까, 그렇다면 왜일까. 의구심을 품을 뿐인데, 내가 너무 못되었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자면 미운 아버지는 딱 한 번 꿈에 나온 적이 있다. 특이한 꿈이라 기억하는 이야기다. 꿈에서 나는 먹음직한 떡을 들고 서 있었는데, 난데없이 초라한 아버지가 나타나 나에게 떡을 좀 달라고 통 사정을 했다. 나는 아버지가 미우니까, 싫다고 했다. 한 쪽도 떼어주지 않고 돌아섰다. 시간이 흐르고 꿈에서 만났을 때 나는 아버지에게 자비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또 시간이 흐르고서야 꿈 속의 일이 후회로 조금, 남았다.
꽁치를 볼 때마다 이상하고 신비했던 어린 날이 떠오른다. 시간의 건너편 어딘가에서 꽁치를 바글바글 튀기는 아이에게 조금만 견디면 다 좋아진다고 말해주고 싶다.
누구에게나 힘들었던 시절의 나에게 가서, 건네고픈 위로의 말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들의 잊혀진 기억 저편에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장치 하나쯤 있었기에 그때를 버티고 오늘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버지, 잘 지내. 이 이상 정답지 못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