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를 읽고
“마법이 빠진 삶에 주문을 더하면 삶은 그 자체로 현실과 환상의 ‘혼연일체’가 될 것이다.”
“나의 명제들은 사다리와 같다. 올라간 뒤에는 버려도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그의 『논리-철학 논고』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자신이 쓴 철학을 포함해 문장을 인용하는 것, 나아가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정리한 말이다. 즉, ‘말’(혹은 문장)이란 그 자체에 목적이 있기보다 그것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진리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라는 뜻으로, ‘우리는 왜 어떤 말을 인용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답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괴테 연구의 일인자인 주인공 ‘히로바 도이치’가 괴테의 한 인용구의 출처를 찾아 나가는 것이 주된 줄거리로, 그 안에서의 핵심은 과연 ‘도이치’는 어떻게 그 인용구를 자신의 삶 안에 녹여내는가를 그리는 과정이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자면 “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 말 자체에 삶으로서 도달하는 이야기”라고 요약되는 책이다.
‘도이치’가 출처를 찾는 문장은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Gothe로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라는 문장이다. 괴테 연구자임에도 이 말을 정말 괴테가 한 것인지 진위 여부를 확신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그를 둘러싼 주변의 관계 속에서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주된 관계인 그의 가족, 아내 ‘히로바 아키코’와 딸 ‘히로바 노리카’ 그리고 평소 ‘도이치’가 굉장히 신임하고 좋아하던 동료 연구자 ‘시카리 노리후미’와 ‘시카리’의 제자이자 자신의 제자가 된 ‘가미야 쓰즈키’와의 관계는 ‘도이치’를 이른바 계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작중 등장하는 ‘샐러드적 세계’와 ‘잼적 세계’는 ‘도이치’가 자신의 연구에서 주장하던 세계관으로 ‘샐러드적 세계’란 사물이 개별적 구체성을 유지한 채 하나의 유기체를 이루는 상태를, ‘잼적 세계’란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든 상태를 가리킨다. 그는 ‘샐러드’를 주장하던 사람으로 이러한 주장은 그와 가족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평소 자신의 아내와 딸을 그런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도이치’이지만 정작 그는 그들이 좋아하는 것과 관심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그저 아내와 딸이 각각 무엇을 좋아한다 정도의 피상적인 정보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실제 그는 아내가 좋아하는 정원 가꾸기와 유튜버, 그리고 영문학 대학원생인 딸의 연구분야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으며,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문제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라는 문장의 출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내와 딸이 관심있어 하는 것들을 거쳐가며 실은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며, 히로바家 또한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부분은 가족관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마음에 울림이 있던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가족에 대해 ‘물론 사랑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 인간 개인으로서 고독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의 이 이야기는 각자 개성이 뚜렷한 개별적 구성원이 모여 가족이라는 하나의 유기체, 즉 ‘샐러드적 세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당장 옆에 있는 부모님과 자식에 대해, 그리고 형제들에 대해 얼마큼 이해하고 있는지를 물으며 ‘마음의 나태’를 분명히 꼬집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오해되기 싫은 마음과 설명하는 것에 대한 막막함으로 ‘어차피 얘기해도 완전히 이해하긴 힘들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가족들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반대로 나는 나의 가족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봤을 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도이치’의 경우처럼 우리는 가족 간 전혀 다른 관심사가 실은 나의 관심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그걸 깨닫는 과정에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세세하게 알게 되는 일을, 코 앞에 두고도 나와 관계없는 일로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관한 명언을 찾다 그 명언에 담긴 사랑으로 모든 것이 하나로 녹아든 ‘잼적 세계’에 도달한 주인공의 이야기는 ‘사랑’ 그리고 ‘말의 실천’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맞닿아 하나의 세계로 통합되는 순간, 그 순간에 우리는 사랑으로써 ‘혼동’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는 굉장히 많은 인용과 주석들이 나오는데 이 때문에 책을 읽는 난도가 올라가기도 했지만 그러한 문장들을 문학적 장치삼아 인용에 대한 작가의 철학을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인용(引用)이란 남의 말이나 글을 자신의 말이나 글 속에 끌어 쓰는 것으로 사람들은 주로 명언을 활용하는데, 책에서는 이 명언들을 ‘도이치’의 동료 학자인 ‘시카리’가 ‘요약형’, ‘위작형’, ‘전승형’으로 분류해 설명한다.
‘요약형’은 전체 문장을 다 쓰지 않고 요약된 명언, ‘위작형’은 실제 특정 인물이 하지 않은 말이지만 그 인물의 말로 알려진 명언, ‘전승형’은 그저 전해져 내려오던 말이 특정 인물의 말처럼 굳어진 명언을 가리킨다.
이러한 명언에 대한 분류는 ‘언어 전달의 한계’에 의해 우리가 인용을 할 때 그 문장이 실제 사용된 ‘맥락’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어려우며, 당초 인용을 하는 취지는 명언 자체가 만들어진 맥락보다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말의 설득력을 높이고 상대에게 맥락을 이해시키는 것을 돕는 데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책은 한 발 더 나아가 반대로 인용을 하던 말을 계속 읊다 보면 그 맥락 자체가 우리에게 경험되는 순간을 ‘도이치’를 통해 보여주며 모든 인용은 결국 삶에서 실천될 때 가장 큰 맥락 즉,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전달한다.
앞서 글의 첫머리에 인용한 비트겐슈타인의 말 “나의 명제들은 사다리와 같다. 올라간 뒤에는 버려도 된다.” 또한 이 글의 설득력을 높이고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이해시키는 데 활용된 문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사다리’라는 것은 지붕에 도달하기 위해서 쓰는 것으로, 우리가 인용을 할 때는 문장 그 자체와 그것에 담긴 사유, 그리고 생각들을 현실이라는 지붕에 실현시키기 위해 써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 지붕은 내가 실제 살고자 하는 삶 혹은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만약 내가 인용하는 사다리가 올라가려는 지붕에 맞지 않게 너무 짧거나 혹은 너무 길어 불안정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사다리 그 자체의 길이가 아니다. 게다가 특정 지붕에 올라가는 사다리가 하나의 사다리만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작중 등장하는 또 하나의 문장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말처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말들은 이미 존재하는 세상에 대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무슨 사다리를 사용하던지 간에 그것을 지붕에 올라가기 위해 최적화된 사다리로 자신이 직접 다듬는 일이며, 옮긴이의 말을 빌리자면 “영원히 되풀이되는” 이야기들 속에서, “그렇게 인용만 하지 말고 자신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이치’는 사랑에 관한 괴테의 문장을 마치 주문처럼 수없이 되뇌다 진짜 ‘사랑’이라는 마법을 보았다. 문장 속에 갇혀 사는 삶이 아닌 문장 그 너머에 있는 현실에 닿기 위해 우리는 수없이 반복되는 온갖 문장 속 나만의 문장을 품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마법이 빠진 삶에 주문을 더하면
삶은 그 자체로 현실과 환상의
‘혼연일체’가 될 것이다.”
-솔래 Sol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