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퇴근 이후 산부인과를 찾았다. 애초에 병원을 방문한 목적은 평소와 달리 생리 주기가 불규칙해져서 언제쯤 생리를 할지, 할 기미가 보이기는 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는 친한 지인과 새로운 경험을 해 보고자 프리 다이빙 체험 수업을 예약해 놓았는데, 물속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할 때 생리를 하게 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는데다 운전이라는 도전적인 과업이 내 일상에 추가되었으니, 스트레스 때문에 생리 주기가 충분히 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래서 큰 걱정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초음파를 보아야 할 때가 되어서 겸사겸사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난소에도 물혹이 생겼고 자궁근종도 생겼다고 했다. 작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사실 나는 이번 학년도에 담임을 맡은 반이 유독 쉽지 않아서,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이러다 화병이 생기겠다고 종종 이야기해 왔었다. 그런데 화병보다 다른 문제가 먼저 생긴 것이다. 아마도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던 나는, 일말의 고민 없이 그 화살을 학교 탓으로 돌렸다.
쉬운 학년도가, 쉬운 반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항상 그해에 맡았던 학급이, 그해에 담임한 아이들이, 그해에 담당한 업무가 가장 힘들었다. 그저 지나고 나서야, '아, 그때가 호시절이었구나.' 하고 때늦은 후회를 습관처럼 해 댈 뿐이었다. 다만 올해에는 거기에 더하여, '나와 가장 상극일 수 있는 학생이 이런 유형일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이 더해졌달까.
요즘의 나는 몇몇 학생이 너무 힘드니, 나머지 대다수 학생의 예쁨이 잘 보이지 않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지만, 올해는 유독 그렇다. 그 몇몇 학생을 보는 게 힘들어 학급에도 자주 올라가지 못한다. 아침 조회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진 지 오래이다. 종례는 최대한 짧게 끝내고 있다.
그러다 서글픈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아, 그때 그 선생님들도 그래서 그러셨던 거구나.
출판사를 그만둘 무렵, 나는 출근길마다 타고 있던 버스가 사고가 나기를 바랐다. 그러면 출근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퇴사해야겠다, 일단 살고 보아야겠다 싶었다.
지난달인가, 점심을 먹고 동료 선생님들과 학교 운동장을 잠시 거닐다가 저속으로 옆을 지나가는 트럭을 보고 문득, '저기 부딪히면 병가를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일이다 싶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이런저런 시험 문제집을 실제로 구매했다. 몇 장 들추어 보기까지 했다. 크게 후회한 적 없었던 지난날의 내 삶에 대해서도, 가끔 '그때 교육대학원을 가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어땠을까?'라고 궁금해 했다. 물론 알고 있다. 어떤 선택을 했든 지금의 내 삶이 녹록지 않았을 것임을. 그렇지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로 나는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게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좋게 말해 세심하고 나쁘게 말해 예민한 나의 성격도, 좋게 말해 정이 많고 나쁘게 말해 상처를 잘 받는 나의 성향도, 교사가 되었을 때는 장점으로 쓰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성인 대 성인도 아니고, 아직 성장 중인 중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화가 나고 때로는 밉고 때로는 너무나 싫은 감정이 들 때 소위 '현타'를 느낀다. 조금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나를 간 보는 듯한 표정, 어디 한 번 건드려 보라는 듯 툭툭 시비를 거는 듯한 발언, 이런 것들에 초연하지 못하고 거기에 영향을 받는 내 모습이 너무나 답답하다.
선배 교사들에게 자문을 구하면 내려놓아야 한다고, 그래야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다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시는데, 나는 아직 그것이 너무 어렵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거의 없는) 학교 현장에서, 어디까지 하는 것이 요즘의 교사로서 적절한 선인지 모르겠다. 앞으로 내가 힘들어 하는 아이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고, 나와 상극이라고 느낀 아이는 2~3년에 몇 명씩 나오는 아주 흔한 유형이라고도 하셨다. 도대체 어떡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고작 다섯 번째 봄을 학교에서 보냈을 뿐인데.
나는 오늘도 퇴근하고 집에서 엉엉 울었다. 너무 죄송스럽지만, 엄마에게 이렇게 우는 모습을 (또) 통화로 들려드렸다. 엄마에게 잘 지내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는 딸로서도 별로다.
그래도 내일 출근을 해야 하니 일찍 자려고 누웠지만, 또 눈물이 계속 흘러서 그냥 방에 불을 켜고 일어나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이제는 어제가 되어 버린 근로자의 날에, 내가 학교에서 학생들과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구구절절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괜찮지 않다는 것만은 사실인 듯싶어 이런 글이나마 남기고 싶었다. 아침이 되어 후회해도 별 수 없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그러다 보면 내 몸에 생겨 버린 물혹이나 근종의 크기가 자연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고 조금 지켜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다. 그런데 이 야밤에 잠들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니, 학교 안에서 내가 나아질 수 있을까 두렵다. 아마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일단 살고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이번에도 해도 될까.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