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클로즈

by 솔라담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클로즈가 마을에 찾아올 거야~"


눈이 오면 마을의 모두가 부르는 흥겨운 노래. 어느새 어른들이 이 노래를 불러주는 시기가 돌아왔다.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 외진 산속 마을.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서 어딜 보든 재미없는 이 시기. 우리 같은 아이들에겐 항상 지루함을 해소해 줄 무언가가 간절한 법이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우리의 심심함을 달래주는 이야깃거리는 단연코 산타클로즈 아닐까? 우는 아이가 있으면 빨간 자루를 매고 굴뚝으로 들어간다니. 그리고 한 번씩 선물을 주기도 한다니까. 생각만 해도 너무나 흥미롭고 신비스러운 존재인 것 같다.


마을의 겨울은 밤에 가장 아름답다. 창밖을 보면 집집마다 켜진 등불들. 평소 같으면 어둠 속에 잠겨있을 시간이지만 이 시기엔 송진이나 양초로 집 앞마다 등불을 켜곤 한다. 비록 악취는 좀 난다지만 양초의 빛은 어찌나 예쁜지. 밤늦게 아이들끼리 몰래 모여 불빛을 구경하다가 혼나는 일도 예사가 아니다. 사실 내가 오늘 모자를 못쓰고 벌벌 떤 것도 어제 맞은 꿀밤 때문이다. 혹이 얼마나 크게 났는지...


오늘 밤도 옆집 아줌마는 늦게까지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노래를 부르신다. 자장가처럼 부드럽게. 저 집은 올봄에 태어난 아기가 있는 집. '아기는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텐데'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이 마을의 겨울과 저 노래를 떼 놓는 건 상상도 안 간다. 어릴 때부터 겨울마다 들은 노래라서 그럴까. 멀찍이서 듣다 보면 나도 스르르 기분 좋게 잠이 들곤 한다.


겨울이 되면 산은 고요해진다. 여름 내내 시끄럽게 울어대던 새들도, 덤불 사이 바스락거리던 작은 짐승들도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른들 말로는 따뜻한 남쪽으로 도망갔다가 봄이 되면 돌아온다던데, 그게 진짜일까? 누가 따라가 본 적도 없을 텐데 어찌 아는 건지 모르겠다. 동물들이 없어서 그럴까. 겨울은 고요하다. 굴뚝마다 피어오르는 연기도, 하늘의 구름도 고요한 걸 보면, 겨울이 아니고 하얀색이 고요한 걸까? 그것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면 다 알 수 있을까?




겨울만 되면 어른들은 양초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일 년 내내 모아둔 짐승 기름들을 사용하는데,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마을에서 가장 떨어진 무두장이 아저씨 집에서 작업을 하는데도, 마을 한가운데에서 놀던 우리가 깜짝 놀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루는 온몸에 악취를 묻히고 돌아온 아버지께 왜 겨울밤에만 그렇게 초를 켜냐고 여쭤봤었다. 아버지께선 곰 같은 게 내려올까 봐, 특히 겨울엔 산짐승이 없다 보니 인간을 공격할 수 있어서 그렇다고 하셨다. 그런데 가끔 궁금하다. 곰은 겨울잠을 잔다고 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 잠자는 곰을 본 사람들도 있던데 말이다.


양초 만들기는 우리가 도움이 안 되지만, 나무에 줄을 매달고 장식하는 건 엄마들과 우리 어린이들 몫이다. 나무 사이를 긴 줄로 연결하고 거기에 나무조각이나 뼛조각, 솔방울 같은 걸 장식한다. 어쩌다 바람이 불면 따각따각 소리가 나는데 난 그게 참 듣기 좋다. 한 번씩 말썽 부리는 아이들이 줄을 세차게 흔들면 온 마을이 따각따각 울린다. 물론 걸리면 엄청 혼나지만... 겨울의 지루함 속에서 그걸 참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따금은 밤에도 소리가 나는데, 아마 어른들이 재미 삼아 흔드는 게 아닐까 싶다. 어른들은 겨울밤엔 삼삼오오 농기구를 들고 모여서 밤늦게까지 놀러 다니니까.


겨울 동안 우리의 지루함을 가장 달래주는 건 역시 산타클로즈 이야기다. 마을의 모두가 매일같이 노래하는 그 산타클로즈. 사실 지금 마을 애들 중에 산타클로즈를 실제로 본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어른들 말로는 하얀 수염이 풍성하고, 빨간 옷을 입고, 빨간 자루를 매고 다닌다던데. 난 빨간 옷이 어떻게 생겼을지가 가장 궁금하다. 빨간색 천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엄청 귀하다던데. 영주님이나 입을 수 있으려나...




며칠 전, 수확제를 기념하기 위해 대장간집 형이 마을로 돌아왔다. 솜씨가 좋아서 영주님 성에 불려 가 일을 하는 마을의 자랑이다. 우리들에게 장난감들도 잔뜩 사다 줘서 어찌나 고맙던지. 사실 얼마 전까지 우리들의 대장이었는데. 성인이 되자마자 성에 가더니, 어느새 멋진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며칠 동안 마을 어른들에게 불려 다니느라 바쁘던 형이 오늘은 우리에게 시간을 내줬다.


난 가장 궁금했던 빨간 옷에 대해 물어봤다. 영주님은 빨간 옷을 입느냐고. 놀랍게도 영주님조차도 특별한 날만 겨우 입는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면 대체 산타클로즈는 어찌 빨간 옷을 입는 거지? 진짜로 산타클로즈는 빨간 옷을 입는 게 맞냐고 형에게 다시 물어봤다. 대장간집 형은 산타클로즈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 아이들 사이에서 산타클로즈를 실제로 봤단 건, 그것만으로 대장자리를 차지할 만큼 엄청난 일이다. 형은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자기가 본 건 영주의 빨간 옷과는 좀 달랐다고. 마치 붉은여우의 털 같은 색이었다고. 옆에 있던 방앗간집 녀석은 루돌프에 대해 묻는다. 루돌프는 산타클로즈를 따라다닌다는 짐승이다. 형 말로는 뭔가 안광 같은 게 번쩍였는데, 빛이 하나뿐이었으니 어른들 말대로 코가 번쩍이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산타클로즈 얘기들을 묻고 듣는다. 덩치가 크다던데 굴뚝에 어찌 들어가는지, 손은 어떻게 생겼는지... 사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다 외우고 있다. 백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니까. 그래도 들을 때마다 어찌나 재밌는지 다들 눈이 반짝반짝하다.


우리가 산타클로즈에게 관심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른들 말로는 산타클로즈가 왔다 가면 무언가 마을에 선물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시골마을임에도 한 번씩 영주님의 성에 불려 가는 아이들이 나오는 것도 아마 산타클로즈의 선물 때문이 아닐까? 대장간 형에게 성에서 마을 애들은 가끔 만나냐고,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봤는데 형은 급한 일이 생각났다며 자리를 떴다. 친구들은 아쉬워했지만 난 이해한다. 이미 어른이 된 형이 애들이랑 놀아줄 필요는 없으니까. 심지어 걔들은 몸도 안 좋아서 재미도 없을 테니까.





새해를 며칠 앞둔 날. 대사건이 벌어졌다! 유독 눈보라가 세차던 어젯밤 산타클로즈가 왔었다는 것! 동갑내기인 방앗간집 아들이 아이들을 소집했다. 자신이 산타클로즈를 봤다는 말에 마을 아이들이 순식간에 방앗간으로 모였다. 녀석 말로는 산타클로즈는 진짜 빨간 자루를 들고 있었다고 한다. 사슴이라도 잡았는지 속에서 작은 짐승이 버둥대고 있었다고. 수염은 하얀색이 아니고 굴뚝의 재와 눈이 잔뜩 묻은 것 같았고, 옷과 자루는 빨간색보다는 얼룩덜룩 검붉은 색이었다고 한다. 같이 다니는 동물은 루돌프란 이름답게 멋진 늑대였다고. 다만 눈이 애꾸라서, 얼핏 보면 코가 번쩍이는 걸로 착각할만하다고도 했다. 산타클로즈의 손도 봤는데, 그 이름대로 엄청난 길이의 손톱이 있었다고 한다. 마치 독수리의 발톱 같은. 다들 놀란 눈으로 궁금한 걸 물어보려는데 어른들이 찾아와서 금방 해산당했다. 어찌나 아쉽던지. 그리고 산타클로즈를 본 게 내가 아니라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어느새 새해가 되었다. 마을 어린이들에게 내려졌던 외출금지도 드디어 풀렸다. 며칠간 얼마나 답답했는지... 며칠 전 눈보라가 친 다음 날인가, 마을 어귀에 살던 무두장이집 딸아이가 성에 사는 친척 집으로 불려 갔다고 한다. 다리가 아프고 잘 걷지 못해서 우리랑 어울리지 못하던 아이인데. 좀 더 친하게 지낼걸 하는 후회가 스치기도 한다. 뭐 그랬다면 괜히 더 서운하기만 했겠지만. 어젯밤에는 잠깐 잠에서 깨서 우연히 부모님 대화하시는 걸 들었다. '무두장이 부부 한 해 동안 그렇게 배곯더니, 올해는 그래도 입 줄었네. 그것도 선물이라면 선물이지 뭐.' 라던 말씀. 선물이라니. 아마도 성으로 불려 간 걸 말하는 것이겠지? 정말 부럽다. 나도 산타클로즈의 선물이 받고 싶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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