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Ⅱ

by 솔라담



https://youtu.be/aCLl6ATX4qI?si=Jk4zIQPBDh0LA8Lz







"최선 이랬나 그냥 선 이랬던가 모른 척을 해왔던 거야"


인파로 가득 찬 겨울 거리를 걷다가, 어느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발길이 멈춘다. 이미 늦어버린 약속 시간, 그리고 유난히 매서운 날씨. 추위를 피해 서두르던 발걸음조차 멈추게 만든, 끈적한 기억 속의 한 장면... 우리가 즐겨 찾던 카페, 그날도 어김없이 늦게 도착했던 너. 불쑥 이어폰을 건네며, 분명 내가 좋아할 곡이라며 초승달 같은 눈으로 웃었었다. 내 기분은 알지도 못하고. 노래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별을 내뱉고 일어났던 나. 그때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남겨졌던 바로 그 노래가 거리에 흐르고 있다.



"난 몸서리치고 나와 같은 표정에 눈 감고 말았네"


그곳에 남겨졌던 노래의 뒷부분을 연말의 거리에서 마주한다. 어느새인가 내 발길은 추억이 아닌 아름다운 선율에 붙잡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재즈풍의 인디 스타일이라서일까.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 꽁꽁 넣어둔 손을 꺼내 턱을 매만진다.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 언제나 그렇듯이. 매서운 겨울바람이 살을 에듯 차다. 다만 이상하게도 손이 아닌 가슴이 에인다.






"난 흐릿한 기억을 불러다 펼쳐놓고 가야 할 곳을 가르쳐주길 너에게 바라지"


지난 여름은 무더웠다. 고맙게도. 덕분에 네게 바다에 가자는 말을 쉽게 건넬 수 있었으니까. 무작정 떠난 바다. 끈적이는 바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청량하던 하늘. 처음 타 본 집라인. 아이처럼 신나게 즐기던 네 얼굴과 잔뜩 겁먹었던, 다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던 나. 불쑥 내 손을 꼭 잡아준 것을 보면 아마 넌 알고 있었겠지. 그날 먹은 조개구이의 달달함은 잊히지 않는다. 무작정 바다로 들어가던 나와 난감한 표정의 네 얼굴도. 그게 우리 둘만의 여름이었다. 이제는 흐릿해져만 가는.



"처음 마주한 낯설지만 익숙한 안을 수 없고 돌아볼 수 없는 너와 나의 시간"


길에서 우연히 다시 접한 노래는 어느덧 내 귀와 입에 끈적하니 들러붙었다. 나르디스. 생경한 이름의 밴드. 너는 어디서 이런 곡을 알게 되었던 걸까. 분명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는 닮은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니까. 차에서는 졸리단 핑계로 내가 즐기던 음악만 고집했었고, 지하철에서 같이 듣자며 건네던 이어폰의 한쪽은 끝까지 끼지 않았었다. 음악을 반만 듣는 건 별로라는 핑계로.


비단 플레이리스트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달랐던 것은. 서로의 모습은 놀랄 만큼 낯설었다. 지하철에서 나란히 앉아 가고 싶던 너와, 굳이 서서 가겠다고 고집했던 나. 밝고 사람 많은 곳을 즐겨 찾던 너와, 사람이 없는 카페 구석 자리를 찾아다니던 나. 우린 많은 면에서 달랐다. 취향도, 성향도, 서로에 대한 마음까지도. 손이 시리다고, 같이 끼자며 사 온 커플 벙어리장갑은 아직 내 차 수납함 구석에 남아있다. 유치하다며 쑤셔 넣은 모습 그대로.




"비밀스럽던 밤들 한 줄의 구슬처럼 나의 앞에 꿰어져"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그 봄은 유달리 화사했었다. 친구의 결혼식 뒤풀이 자리. 신부 측 친구들이 모여있던 옆 테이블에서 들려온 듣기 좋게 시끄럽던 웃음소리. 많은 사람들의 중심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너. 짧은 염색 머리, 초승달 같은 눈에 번지던 환한 미소. 술집의 정신없는 조명보다 나를 놀라게 한 건 무엇보다 반짝이던 네 모습이었다. 그날 밤, 같은 방향이니 함께 택시를 타자고 네게 건넨 말. 너는 별일 아닌 듯 웃으며 승낙했지만 나는 정말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 낯선 설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네게 건넨 첫 거짓말이라서였을까. 사실 우리 집은 정반대 방향이었으니까.


거짓말은 어항 속 이끼처럼 정신없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우리는 집이 가깝다며 퇴근길을 함께 하게 되었다. 내 귀가 시간이 늦어질수록, 서로의 간격은 줄어들었다. 그간 숨겨온 사실을 고백한 날. 우리 집이 멀어서 놀란 건지 널 향한 마음에 놀란 건지, 보름달처럼 커지던 네 눈망울. 그날 이후 나만의 비밀스럽던 밤은, 너라는 실에 꿰어져 추억의 구슬로 엮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마 서로 다른 모습에 끌렸었겠지.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간 내 좁은 인간관계에서 알고 지내던, 무채색의 사람들과 너는 달랐다. 송사리만 머물던 어항 속에 불쑥 들어온 열대어처럼. 단조로운 내 세상에 오색으로 빛나는 널 심어준 그 누군가에게 어찌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너의 색다름은 무엇인지, 나는 왜 그것에 이토록 끌리는지. 매순간 네가 궁금했고 널 알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겹겹이 쌓여버린, 시간이라는 물때 때문이었을까. 궁금함과 설렘으로 투명했던 유리벽이 점차 탁해지자, 그 아름답던 다름은 서서히 이질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물은 네겐 너무 차가워서였을까. 혹은 너무 조용해서였을까. 색이 빠진 색다름은 내게서 설렘과 인내심을 앗아갔다. 서로의 사소한 다름에서 다툼이 시작되고, 근원적인 다름은 내게 다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네가 듣던 음악을 시끄럽다고, 네가 보던 영화는 가볍다며 우습게 보기 시작했다. 네가 자주 찾던 장소와, 즐기던 것들은 외면하고, 네 손목을 움켜쥔 채 내게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그곳에 도착한 순간에는 나 혼자만이었지만...






"난 몸서리치고 너를 미워하다가 나와 같은 표정에 눈 감고 말았네"



사무실에서 무심코 선율을 흥얼거리고 있으니,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묻는다. 그건 무슨 곡이냐고. 완전 내 취향인 재즈 스타일의 감성적인 인디밴드가 나왔다고, 정말 추천한다고 꼭 들어보라며 나답지 않은 열변을 토한다.


"맨날 듣는 것만 듣던 사람이 새로운 노래를 흥얼거리니 신기하네. 나이 드니 새로운 걸 좋아하기 힘들다면서, 그건 또 어디서 찾은 거래?"


동료의 질문에 그냥 어쩌다 보니... 라며 말끝을 흐린다. 내가 항상 하던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취향을 갖기 힘들다던 말. 그 핑계로 난 너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노력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넌, 어떻게 이 노래를 찾았던 걸까. 나조차도 모르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의 노래를...



네가 즐겨 마시던 맥주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수납함에 구겨져 있던 벙어리장갑도 함께. 칙칙해진 어항에 사료를 뿌려준 후, 너와 같이 영화를 보던 소파에 홀로 앉아 맥주캔을 딴다. 넌 여기서 본 영화들을 크게 즐기진 않는다고만 생각했었다. 다만, 돌이켜보니 몇몇 영화의 OST는 네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갔던 것이 기억난다. 오래된 영화 속, 치직거리는 노이즈가 매력적인 재즈풍의 노래들. 내 품에 안겨 내가 좋아하던 비프 저키를 씹으며 맥주를 마시던 네 모습이 떠오른다. 그 비프저키. 그것도 넌 처음에 짜다고 싫어했었는데...


그동안 넌 어떻게 지냈을까. 친구의 SNS에 들어간다. 우리가 함께 찍혔던 결혼사진을 건너, 친구 아내의 계정에서 네 사진을 찾아본다. 여전히 반짝이는구나. 저 색다름에 반했었는데. 어느새 다름을 틀림으로 착각하여 너를 미워하게 되었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본 사진 속 네 표정은 이상하게도 나와 닮아있다. 내 표정은 예전 그대로인데...


난방을 너무 세게 튼 걸까. 끈적한 땀이 이마에 흘러서, 옆에 있는 것으로 닦는다. 물고기 무늬의 벙어리장갑. 술 기운에 땀이 늘어난 걸까. 두터운 장갑이 순식간에 젖어간다.








※ 본 글은 nardis의 ‘소환Ⅱ’ 가사를 모티브로, 일부 인용하여 창작된 글입니다. 가사 사용을 허락해주신 nardis에게 감사드립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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