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 Moment.

by 솔라담




"거대 운석이 지구를 향하고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긴급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본 방송은 실제 상황입니다. 현재 지구를 향해 접근 중인 대형 천체가 확인됐습니다. 충돌까지 남은 시간은 단 24시간입니다. 조금 전 발표된 미 항공우주국 NASA 대변인의 긴급 브리핑을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현재 관측된 해당 천체는 지금까지 우리의 심우주 관측망과 조기 경보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3년 전 발생한 대규모 태양폭풍으로 일부 관측 장비에 오류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신 궤도 분석 결과, 지구 대기권 진입 및 표면 충돌 가능성이 매우 높은 궤도로 확인되었습니다. 국제 우주 기관들과 공조하여 궤도 변경 가능성을 포함한 대응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나, 대응에 필요한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TV 속에서 흘러나오는, 현실적이지 않은 뉴스. 결국 오는구나. 전문가의 말로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의 운석이라고 한다. 이대로 충돌하면 공룡 대멸종을 일으킨 운석보다도 강한 충격이 예상된다고. 아마도 지구 전역에 핵폭발이 터진 만큼의 충격일 것이라는 분석.

아, 숏을 칠 걸... 나도 참, 이 와중에도. 한심하다.


혹시 싶어 주식 어플을 열어본다. 아직 변동은 없다. 창밖으로 보이는, 평소같이 출근하는 인간들처럼. 도무지 믿기지 않는 뉴스니까 그렇겠지. 화면 속 파란색 잔고가 눈에 걸려 얼른 어플을 꺼버린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회사는 연락도 없고, 돈은 떨어져 가고. 기댈 곳 하나 없는 이역만리 타향인데. 아니, 이억만리는 되지 않을까... 모아뒀던 돈은 코인이랑 주식에 이미 다 날려버렸다. 하아, 한 건만 터지길 바랐는데, 딱 한 건만... 이럴 거면 대출이라도 받아서 펑펑 쓸걸 그랬다. 갚을 필요도 없어졌으니.


나는 특파원이다. 아니, '이었다'라고 해야 하나. 본청에서 연락이 끊어진 지 3년째이기 때문이다. 잠수이별도 아니고, 잠수해고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구멍가게도 아니고, '본청에서 뭔가 연락을 주겠지.' 하면서 기다린 게 이미 3년. 체중만 늘어나서 아픈 관절에는 괜히 중력 탓만 하고 있다. 줄어드는 돈을 어떻게든 불려보려 시작했던 코인. 처음 대박이 났을 땐 얼마나 짜릿했던지. 하지만 돈을 손에 쥐어보기도 전에 찾아온 대폭락. 열받아서 코인은 때려치우고 시작한 주식도 온통 파란색으로 난리다. 나한테 이걸 알려준 인간을 정말 죽이고 싶다. 빌어먹을 놈들.


스마트폰을 들어 SNS를 살핀다. 아직은 아무도 믿지 않는 분위기다. AI 아니냐, 미군이 뭐라도 해주겠지, 맨날 나오는 종말론 아니냐, UFO인데 왜 다들 오바냐. 등등의 반응. 보다 보면 의외로 눈치가 빠른 인간들도 있다. 그들이 미친놈 취급받는 것도 참 재밌다.




혼란 속에서 겨우 유지되던 일상은 미국 대통령의 침통한 목소리가 전파를 탄 직후 부서져 버렸다.


"Stand together! Love each other! Until our last moment."


이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아마 명언으로 남지 않았을까. 다만 꽤 멋져 보였던 그 말은 사실상, 세계에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SNS에는 "#사실#널#좋아했어" 같은 게시물이 폭주했다. 종말을 앞두고 겨우 SNS로 고백이라니. 인간들은 참 재밌다는 생각에 한동안 피드를 넘기고 있었다. 복수와 범죄 인증샷으로 유행이 넘어가기 전까지는.


종말이 예고된 후 몇 시간이 지나자, 거리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고 자부하던 곳임에도, 불길이 곳곳에서 올라왔고 상점들은 약탈당했다. 광장의 수많은 인파에 돌진을 한 것이 다름 아닌 경찰차였다는 뉴스에는 나조차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뉴스 속보는 멈추지 않았고 난리 속에서도 응급의와 소방관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꽤 감동적이다. 이래서 인간을 좋아할 수밖에.


오후 무렵, 이렇게 많은 인간이 종교를 믿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회개를 외치는 자들이 늘어났다. 다만 그중 적잖은 수는 성서 대신 주먹을 쥐고 있었고, 범죄자를 처단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어느 사이비 목사의 말에 빠져 범죄자 사냥이 시작되고 있었다. 폭도들은 자경단을 자처하는 광신도들에게 밀려 줄어들었지만, '#범죄자#두마리#잡았다#천국#가자' 같은 인증글을 보면 뭐, 무슨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온갖 음모론도 쏟아졌다. 신의 심판이다, 외계인의 침략이다, 구조선이다. 별별 추측이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 뭐, 사실 나도 그중 하나지만.




밤이 깊어지자 뉴스 스태프도 하나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고, 결국 화면에는 의자 하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정지된 화면에서 움직이는 것은 하단의 자막뿐. 그래도 누군가는 아직 거기 앉아서 글자를 치고 있다는 뜻이겠지.


SNS 피드는 어느새 기괴해졌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로 구조를 요청하는 이, 반도체의 기밀을 유출하는 이, 미제로 남은 범죄를 고백하는 이. 가장 보기 힘들었던 것은 자살 인증 영상들이었다. 타인을 향하던 파괴가 자신을 향하게 된 것일까. 하아... 한숨을 내쉬며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창에 스며든 사이렌과 인간들의 고함이 끈적하게 귀에 달라붙는다. 환호인지 비명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소리들. 아마 당사자들도 모르지 않을까.




새벽 무렵. 라이브 방송을 틀어보니 광장에 모여 집회를 하는 자들이 보인다. 모두에게 욕을 먹던 사이비 목사가 진행하고 있다. 가장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 다른 방송을 틀어보니 외계인 구조대를 부르는 무리도 잔뜩 모여 있다. 무슨 산꼭대기에 올라갔다는데, 왜 우주선이 산에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나저나 이 와중에도 인터넷이 잘 된다는 사실은 놀랍다. 전기도, 수도도.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소수 집단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갔는지 거리는 텅 비어 있다. 마지막은 가족들과 보내고 싶겠지. 나도 가족이 보고 싶다. 건강하시겠지.




지구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보낼까. 영화나 한 편 봐야겠다. '지구를 지켜라'. 좋아하는 영화는 많지만, 여러모로 지금은 이게 당긴다. 영화를 틀기 전, 보고 싶었던 것들을 다운로드 걸어둔다. 완료까지 4시간이라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결제한다. 내 사과나무는 이건가 보구나.


어느새 이곳에서의 마지막 영화 시청이 끝났다. 창밖으로 여명이 밝아온다. 스마트폰을 들어 SNS를 살핀다. 아마 인구의 절반은 극단적인 선택을 택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마지막을 남기는 글들이 쏟아져 있다. 종말을 앞두고, 대체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SNS에 남기는 걸까. 어떤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 본능인 걸까.


우주선이, 혹은 신의 심판이 어디까지 왔나 밖을 내다본다. 아직 보이지 않는다. 우연히 창 아래로 시선이 향한다. 거대한 홍시라도 잔뜩 떨어진 것 같은 모습. 악취가 나지 않아서 몰랐다. 이 정도일 줄은. 급하게 창문을 닫는다. 이래서 인간은 술을 마시는구나. 미안해서. 잊고 싶어서.




23시간 후. 모두가 서로를 안고만 있다.


24시간 후. 거대한 빛이 다가온다.


쾅!





쾅! 쾅!


누군가가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고 있다.


하긴, 우리 고향 행성에는 초인종이 없구나. 문을 열고 구조대를 반긴다. 건강해서 다행이라는 인사를 나누고, 숨겨뒀던 촉완을 꺼내 서로를 꼭 끌어안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는 질문에 순식간에 도착한 거라며 어리둥절한 눈빛의 구조대원. 맞다. 어느새 인간들의 시간에 익숙해져 있었구나.


구조대의 설명으로는 태양폭풍의 영향으로 고향 행성과 지구 간의 전파가 유실되었다고 한다. 본청은 즉시 구조대를 보냈고, 오는 데 걸린 시간이 3년이었던 것. 구조대원은 이 말을 하며 '눈 깜짝할 새였죠?'라고 웃었다. 아무튼 지금은 여러모로 불안한 상태이니 일단 복귀하고, 전파가 복구된 후 뒷일을 논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체 왜 이렇게 유난스럽게 온 거냐고 묻는다. 덕분에 여긴 난리가 났다고. 대수롭지 않게, 단순한 사고였다는 구조대원. 목성을 지나는 순간 태양폭풍 여파인지 투명모드가 고장 나서 위장모드로 전환했다고 한다. 대기권 진입 직전에야 겨우 고쳐서 다시 투명모드로 돌아간 것이라고.


왜 굳이 이렇게 큰걸 끌고 왔냐고 물으니, 급하게 출발하다 보니 정비가 된 함선이 저것뿐이었단다. 함선 사용을 결재받기 위해 고생했던 무용담이 이어졌다. 감사하긴 하지만...


오랜 기간 관찰하며 정들었던 인간 사회인데, 많이 망가진 것 같아서 적잖이 미안하다. 아주 오래전엔 실수로 아예 부딪힌 적도 있다고 하니까, 그것보단 낫지 뭐.


짐을 챙기고, 영화를 담아둔 USB를 주머니에 넣는다. 시간에 맞춰 다운로드가 다 되어서 다행이다. 가족들에게 보여주면 좋아하겠지. 생각만 해도 설레서 입술이 실룩거린다.




마지막으로 TV를 튼다. 빈 의자. 여전히 자막만 흐른다.

[속보] 운석 소멸 확인... 원인 불명...

스마트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켠다. 광장에 모여 있는 인간들. 어리둥절한 표정. 멍한 눈. 채 마르지 않은 눈물자국. 웃을지 울지 모르는 입. 여러 방송을 돌려봐도 살았다는 안도보다는 통곡하는 인간들만 눈에 들어온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입이 씁쓸해서 주스를 들이켠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는데 알람이 울린다.

[Web발신] 즉시 입금해 드립니다! 무심사! 무서류!

참. 열심히 사는구나. 이래서 인간이 재밌다.
아마 구조가 좀 더 늦었다면 여기 전화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식도 전부 말아먹고 있었으니. 그나저나. 진짜 숏이라도 쳐둘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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