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르신. 와 유명한 분이셨네요!”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거세게 걷어내는 목소리. 새로 온 자원봉사자일까. 눈을 덮은 암막 커튼을 힘겹게 밀어낸다.
“우와 이걸 어르신께서 찍으셨어요? 이건 전 국민이 다 본 사진이잖아요!”
자식뻘쯤 되었을까. 희끗희끗한 긴 머리의 봉사자가 놀란 눈으로 창틀을 바라보고 있다.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운이 좋았지요.”
누운 채 힘겹게 말을 받으며, 고개를 돌려 창틀을 본다. 오래된 카메라와 액자, 그리고 몇 개의 트로피들.
“어머, 어르신. 카메라가 엄청 크네요. 이 상도 어르신이 받으신 거예요? 보도사진 대상이라니. 그것도 두 개나 있으시네요. 저 여기 앨범 좀 봐도 될까요?”
내키진 않지만, 잠시라도 조용하지 않을까 싶어서 고개를 끄덕여준다.
“어머, 아드님이 정말 귀여우셨네요. 사모님도 참 예쁘시고.”
조용하긴 글렀구나. 그래. 약 기운이 가셔서 오랜만에 정신도 있으니, 언제 또 이렇게 대화를 해볼까 싶어서 침대를 살짝 일으켜 달라고 요청한다.
“어르신. 아드님이 어르신 닮았네요. 군복 입은 모습도 얼마나 멋진지 몰라요. 전역 후 사진은 다른 앨범에 있나 보죠? 그런데 운동회도 그렇고, 여기 군대 입소식도 그렇고.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드님은 카메라를 아주 정확히 보고 계시네요? 진짜 신기한데요?”
내 눈을 마주 보며 계속 말을 잇는 봉사자. 다시 눕혀달라고 할까. 살짝 고민이 된다. 참 말이 많구나. 그래도 뭐. 이런 산송장에 관심을 가져주는 게 고맙단 생각도 든다. 대화라니. 오랜만에 사람대접받는구나.
“맞아요. 우리 아들은 항상 날 금방 찾았어요. 신기하죠.”
“어르신 참 좋으시겠어요. 우리 아들놈도 좀 배워야 할 텐데 말이에요. 사진기만 꺼내면 도망만 가서요.”
끊임없이 뭔가를 조잘거리던 자원봉사자. 앨범을 끝까지 넘기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어르신. 그런데 여기 보도사진 대상을 탄 두 번째 사진은 없네요? 좀 전에 검색해 보니까 그 에어쇼 사고 사진으로 받으셨던데.”
“그렇군요. 그 사진은 없군요. 그건 없나 봐요. 미안한데 직원 좀 불러주시겠어요?”
스멀스멀 통증이 뱀처럼 어깨를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흐른 걸까. 아니면 심적으로 부담이 쌓인 걸까. 직원에게 진통제를 부탁하고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어딘지 알 수 없는 혼미한 곳으로. 그곳의 시간은 분명 존재하지만 기억에는 남지 않는다. 마치 인화되지 않은 필름처럼.
“어르신 또 올게요. 다음엔 오늘 못 본 다른 사진도 보여주세요. 꼭이요.”
밝은 웃음으로 남기는 인사. 저 약속이 지켜지는 건 본 적이 없다. 나도 젊을 때 그랬겠지. 당연하다. 누가 다시 오고 싶을까. 여기 누운 이들의 남은 삶을 다 합쳐도 1년도 채 안 되는, 인생의 암실 같은 곳이거늘. 하긴 혹시 모르지. 다시 올지도. 그때 내가 살아있을진 모르지만. 그게 아니면 살아있더라도 제정신이 아닐…. 어지럽다. 눈을 감고 떠난다. 그 어딘가의 암실 속으로.
“어르신! 바깥의 꽃향기를 못 전해드려서 아쉬웠는데, 이 방엔 향기가 아주 좋네요!”
며칠 만일까? 설마 몇 시간은 아니겠지.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또 소란이다. 그때 그이구나. 꽤 성실한 사람이란 생각에 애써 웃음 지으며 침대를 일으켜달라고 한다. 방안에 이게 무슨 향이냐며 부산 떠는 봉사자. 내 오감을 믿지 못한 지는 오래이나, 그래도 지금은 꽤 정신이 있는데도 도통 무슨 냄새를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가요. 난 잘 모르겠지만, 다행이네요. 사실 난 냄새를 별로 안 좋아해서요. 우리 집도 항상 아무 냄새도 안 났었거든요.”
“어머 어르신, 왜 그러셨을까. 혹시 사고 현장을 많이 돌아다녀서 그럴까요? 하긴 제가 어르신께서 찍은 보도 사진들 찾아봤거든요. 사진에도 연기가 자욱한 게, 얼마나 매캐했을지. 그런 곳에선 숨도 쉬기 힘드셨죠?”
“맞아요. 그땐 참 매캐했….”
그랬던가…. 뷰파인더 속 자욱했던 연기. 사고 현장의 불타는 잔해와 피를 흘리던 사람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일단 뛰고 보는 사람들과 그 뒤를 따르던 불길들. 그래. 분명 매캐했다. 내가 찍은 그 모습은 매캐하단 말이 어울린다. 분명 매캐했을 것이다.
“어르신 저 보라고 새 앨범도 준비하신 거예요? 어머 너무 감사해라.”
맞다. 지난 방문 이후, 집사람에게 다른 앨범도 가져다 달라고 요청했었다.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음에도. 집사람은 앨범 말고도 해준 게 있었다. TV로 사진들을 볼 수 있게 해 준 것. 봉사자에게 그 사실을 전하고 TV 속 앨범을 재생해 달라고 부탁한다. 집사람의 취향으로 고른 가족사진이 한 장 한 장 슬라이드 되기 시작한다.
“어머 아버님. 탯줄을 직접 잘라주셨네요? 그런데 저 사진은 누가 찍었죠?”
“내가 직접 찍었죠. 한 손으로 카메라를 들고 탯줄을 자른다고 어찌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아주 고무호스 같더라고요. 간호사가 어찌나 뭐라고 하던지.”
“맞아요. 우리 애 아빠도 그러는데 보통 질긴 게 아니라더라고요. 아니 그런데 간호사분 표정이 진짜 궁금하네요. 얼마나 어처구니없었을까요. 호호.”
그러게 말이다. 참 어리석었구나. 간호사의 표정은 기억나진 않는다. 뷰파인더 밖에 있었으니까. 아마도 한심하게 봤겠지. 그렇구나. 지금에서야 궁금해진다. 간호사는 정말 어떤 표정이었을까.
“영상 앨범에 아드님 어린 시절 사진이 참 많네요. 어휴, 참 부럽네요. 저도 우리 아들 사진을 저렇게 찍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어머 저건 처음 걷는 거예요? 어쩜 저걸 어찌 찍으셨대.”
아이의 첫걸음. 첫 유치원. 첫 재롱잔치. 모든 첫 순간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내가 남긴 아들의 흔적들. 운동회 날 결승선을 통과하는 사진. 무르팍의 빨간 약. 일 등으로 통과하고 날 바라보는 얼굴. 하얀 티에 파란 반바지. 숨이 가득 차서 벌게진 볼. 빠진 앞니 사이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 같다. 저 사진에서도 날 보고 있구나. 어떻게 날 찾았는지.
“아드님이랑 이렇게 항상 눈을 마주치시고. 부러워요. 우리 아들이랑은 눈을 마주 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네요.”
“맞아요. 우리 아들 눈이 참 예뻤어요.”
정말이다. 엄마를 닮은 검고 깊은 눈. 뷰파인더 속에서 날 바라보던 아들. 항상 날 금방 찾아서 눈을 마주치던 눈동자. 아니, 날 바라보던 눈동자. 오늘도 어김없이 어깨부터 통증이 찾아온다. 항상 매고 다니던 카메라가 너무 커서 그랬을까. 평생을 짊어지고 온 지긋지긋한 통증. 약을 요청하니 머잖아 어지럽기 시작한다. 그 혼미한 암실이 날 또 부르는 것 같다. 봉사자는 한 번 더 다음을 기약한다.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가만히 마주치며….
인화가 실패한 것 같다. 노출 조절 실패인지, 필름에 빛이 들어간 건지. 아닌가. 그냥 착각인가. 귀에선 누군가 인화지를 구기는 것처럼 부스럭거린다. 눈을 아무리 감았다 떠보아도 그대로다. 아직 혼미의 암실 속인 건가. 아니다. 손이 축축하다. 내 손을 부여잡는 작고 마른 손. 따뜻하다. 아내의 손이구나. 아내의 손은 참 귀여웠다. 본인은 작은 손이 콤플렉스였다던데. 그래서일까 이 사람은 사진마다 뒷짐을 진 자세였다. 벚꽃이 지던 공원에서 부끄러워하던 첫 번째 뒷짐 진 사진. 그 발갛던 볼을 뷰파인더에 잡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내는 항상 뒷짐을 지고 몸을 살짝 기울인 채 한쪽 다리를 들고 있었다. 에펠탑 앞에서도, 밀라노 두오모 앞에서도. 그 포즈가 이제 지겹다는 내 말에 입술을 앙다물고 찍혔던 사진. 어찌나 귀여운 표정이었는지. 몇 년간 지갑에 넣어져 있던 그 사진이 그립다. 구겨진 흔적의 촉감까지도.
“항상 고마웠어. 여보. 당신 렌즈가 날 봐줄 때, 항상 날 예쁘게 남겨주려던 당신 마음이 느껴졌었어. 정말 고마워. 그 찰칵 소리가 또 듣고 싶다.”
부스럭거리던 소리가 한 글자씩 서서히 아내의 목소리로 바뀐다.
“그 봉사자는 오늘도 왔었어. 그러고 보니 당신이 사진 못 찍어준 거의 유일한 사람이네. 집에서 가져온 이 디퓨저 향을 좋아하더라. 우리 아들이 참 좋아했던 향인데.”
“세….”
아내를 부르려고 했으나 입 밖으로 나온 건 겨우 아들의 이름 한 글자뿐이었다.
“당신 듣고 있구나. 그래. 우리 아들. 맞아. 참 예뻤어. 당신 기억나? 안 그래도 지금 영상 앨범에 우리 첫 가족여행 사진 나온다. 당신 저거 별로 안 좋아했는데. 그렇지?”
그건 여행이라고 할 수도 없었으니까. 세 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계곡가의 캠핑장. 차에서 짐을 꺼내는 사이 이제 갓 돌 지난 녀석이 믿기지 않는 속도로 계곡물에 뛰어들었었다. 성인 무릎높이였지만 아이는 머리까지 빠졌고 아이 엄마가 미친 듯이 달려가 아이를 겨우 꺼냈던 그날. 아내는 불같이 화를 냈고 우린 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몇 년 치 욕을 다 먹은 느낌이라 그 일화를 딱히 좋아하진 않는다. 아내가 아이를 물에서 꺼내는 사진은 내겐 슈퍼우먼 같아서 참 멋졌는데도.
“우리가 처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던 순간 기억나? 밥 먹다가 갑자기 ‘엄마 아빠 사랑해’ 해서 우리가 얼마나 놀랐던지 말이야.”
그런 적도 있었구나. 사진으로 찍진 못했던 순간이다.
“늠름했는데. 그래도 공군이 된 걸 후회하진 않을 거야. 그렇지? 멋진 파일럿이 되었으니까. 당신이 만나면 조금만 기다리라고 전해줘. 엄마도 곧 갈 거니까.”
손등이 더욱 젖어간다. 아들이 처음으로 에어쇼를 한다고 우릴 초청했던 날. 내가 마지막으로 찍은 녀석의 모습. 녀석은 그때도 날 보고 있었을까. 내 눈을 마주치고 있었을까. 뷰파인더 너머 자욱한 연기. 그 번져가던 불길. 철컥철컥. 눈을 뜨기 힘든 매캐함 속에서 눌러대던 셔터.
눈앞이 더욱 밝게 어두워진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아내의 얼굴. 뒷짐 진 그 포즈. 아들의 얼굴. 나를 바라봐 주던 그 검고 깊은 눈동자.
겨우 떠오른다. 그 검고, 깊은, 뷰파인더. 아…….